놈의 기억 1
윤이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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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기억의 일부분을 삭제할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을 삭제할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 고통스럽거나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기억들을 지우고자 할 것이다. 원치 않는 기억들을 삭제한다면 과연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놈의 기억>은 인간의 기억을 삭제하고 또한 타인의 기억을 이식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설정하에 전개되는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소설이다.

 

<놈의 기억>이야기는 주인공 한정우 교수의 아내 지수가 살해당하는 사건으로 시작된다. 한정우는 사랑하는 아내 지수와 결혼기념일을 함께 보내기 위해 꽃과 값비싼 귀걸이를 사서 귀가한다. 집안에 들어선 한정우는 괴한이 내리친 야구방망이에 머리를 맞아 쓰러지고 아내 지수는 19층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사고 이후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범인은 전혀 알 수가 없다.

한정우는 3년 전 기억 삭제와 기억 이식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3년 후 한정우는 그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여 유일한 목격자인 딸 수아의 기억을 삭제하는데 성공한다. 딸 수아는 3년 전 엄마의 살해 사건 충격으로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였다. 한정우는 딸을 위해 기억 삭제라는 수술을 감행했고 성공하였다.

한정우는 아내가 죽은 후 교수직을 내려놓고 동네에 작은 정신의학과 병원을 개업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기억 삭제술'을 시행하였다.

인욱은 아내 지수가 친동생처럼 여겼기에 한정우에게도 동생과 다름없었다. 인욱 또한 지수를 죽인 범인을 잡으려는 의지가 한정우 못지않았다.

두려움이 없는 인욱이지만 그런 그도 산천파 행동대장에게 칼에 찔린 후 트라우마가 생겼다. 인욱은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한정우에게 기억 삭제 수술을 부탁하였고 한정우는 인욱의 기억을 자신의 뇌에 이식한다.

인욱의 기억을 이식한 정우는 인욱의 기억 속에서 자신이 아내 지수에게 선물했던 값비싼 귀걸이를 보았다. 그 단서로 한정우와 인욱은 지수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3년간 작은 단서 하나 없이 오리무중이었던 범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기억을 삭제하고 타인의 기억을 이식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비슷한 종류의 소설, 연극, 영화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 과연 기억을 삭제한다면 더 이상 불행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놈의 기억>속 정우의 아내 지수는 기억 삭제에 관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p55~56

정우야, 과거를 지우는 건 눈속임이야. 그렇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바보가 되는 거라고.(중략)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고도 하지. 근데 말이야 그 말은 망각이 신의 영역이라는 뜻도 되지 않을까? (중략)

만약에 네가 누군가의 기억을 지운다면 그건 기회를 뺏는 걸지도 몰라 (중략)

스스로 그 기억을 떠나보낼 기회.

 

정말 기억하고 싶은 않은 과거, 트라우마를 없애기 위해 기억을 삭제한다면 그 기억과 연관된 다른 기억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이야기 속엔 대학 선배에게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 여자가 기억사가 제 술을 받는다. 그녀는 성폭행에 대한 끔찍한 기억은 사라졌지만 미혼모로 키워왔던 자신의 딸조차 기억 속에서 사라져서 딸을 못 알아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기억의 한 조각이 사라져도 문제가 없을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기억의 한 조각으로 인해 완성하지 못하는 퍼즐 조각처럼 불완전한 삶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놈의 기억>은 기억 삭제와 이식이라는 설정 아래 연쇄살인범을 잡아가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소설이다. 두 권에 걸친 장편소설인데도 불구하고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스토리는 그 어느 책보다도 빨리 읽었다.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범인의 반전뿐만 아니라 주인공 한정우에 대한 반전도 놀랍다. 그러나 이야기를 배배 꼬아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스토리는 아니다. 중간중간 각 인물의 시점에서 설명을 해주는 친절함 때문에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결코 어렵지 않다. 그런 친절함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좀 떨어뜨리기는 하지만 책장을 술술 넘어가게 만들어주기에 그리 문제 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연쇄살인범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묻지 마 연쇄살인의 이야기는 정말 끔찍하다. 소설 속의 이야기로만 그치면 좋은데 현실에서도 존재하기에 더욱 꺼려질 수밖에 없다.

 

<놈의 기억>이 몰입감 최고에 긴장감 넘치는 재미있는 스릴러 소설임은 인정하나 묻지 마 연쇄살인이라는 설정이 읽으면서도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작가는 이런 소설 속에서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연쇄살인마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기억 삭제와 이식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작가의 말을 통해 좀 알 수 있을 듯하다.

 

p271

누구나 지우고 싶은 기억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왜 없겠어요. 어떤 삶이라고 녹록하기만 할까요.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나쁜 기억이 평범한 일상을 헤집을 틈을 주지 않는 것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하품을 하고, 인사를 하고,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서 담담히 하루를 살아내는 것.

이 책은 매일 그 위대한 일을 해내며 살고 있는 보통 사람들에게 바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매일 기억을 쌓아간다. 시간이 흘러가며 기억들은 점차 흐려지고 잊어버린다. 그러나 어떤 기억들은 더욱 또렷해지기도 한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지날수록 왜곡이 되어 진실과 다는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기억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과거를 떠올릴 수도 기억으로 인해 즐거운 추억을 간직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것들이기도 하다. 나에게도 잊고 싶은 기억들이 있다. 때로는 그 기억들을 말끔히 지워버리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때로는 그 기억을 교훈으로 삼을 때도 있다. 만일 소설 속의 기억 삭제와 이식이라는 수술이 가능하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아마 각자의 기억이 주는 고통과 무게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생각된다.

 

곧 여름 휴가철이 다가온다. 여러 가지 피서 방법이 있겠지만 오싹하고 스릴 만점인 <놈의 기억>을 읽으며 피서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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