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하현 지음 / 비에이블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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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온갖 나물들이 나오지만 그중 제일 좋아하는 나물은 냉이와 달래 나물이다. 그러나 자주 먹지 못하는 나물들이기도 하다. 냉이나 달래를 다듬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한 끼 반찬으로 먹으려고 한 시간 이상 손질을 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 또한 공들인 수고가 너무 커 먹기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손질한 시간, 손질한 수고에 비해 차려진 냉이나물 반찬 혹은 달래 나물 반찬은 너무나 소박하다. 결코 두 나물을 직접 다듬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반찬들의 가치를 알 수가 없다.

 

냉이 손질하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를 읽는 순간 급 공감되는 이야기에 책 속으로 바로 빠져들고 만다.

 

p7

3월이 제철인 달래는 맛있고 영양도 풍부하지만 여러모로 성가신 채소입니다. 뿌리가 가늘고 흙이 많아 손질이 까다롭거든요. 알뿌리를 감싸고 있는 껍질도 일일이 벗겨내야 하고, 딱지처럼 뭉쳐 있는 끝부분의 흙뭉텅이도 손톱으로 꼼꼼히 제거해야 합니다. 이렇게 글로 설명하면 한 문장일 뿐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아이고 허리야 소리가 저절로 나오죠.

 

달래를 다듬어 본 사람들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수고한 보람도 없이 밥상 위에 놓인 달래 양념장은 존재감이 없다. 저자는 독립해 살면서 잘 먹고 지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엄마에게 정성껏 차린 밥상의 사진을 보내지만 엄마는 밥과 계란후라이 그리고 달래 양념장 만 놓인 썰렁한 밥상을 보며 겨우 계란 후라이 하나 놓고 밥을 먹느냐며 오히려 걱정을 하신다.

 

이렇게 저자는 달래 양념장 이야기를 하면서 평범한 삶의 이야기를 말한다.

 

p9

제 삶은 밑반찬처럼 평범합니다. (중략)

메인 요리 없이 밑반찬만 가득한 밥상을 떠올려봅니다. 멸치볶음, 깻잎조림, 양파장아찌, 오이무침, 시금치나물, 콩자반, 김부각, 열무김치... 역시 이런 밥상은 시시한가요? 하지만 저는 시시한 밥상을 좋아합니다.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으니까요. 모든 반찬이 고만고만해서 아무것도 주인공이 되지 않는 밥상은 정겹고 애틋합니다. 그리고 의외로 맛있습니다.

평범함 뒤에 숨겨진 노력에 조명을 비춰주는 마음으로, 여기 모인 이야기들은 모두 그렇게 쓰였습니다.

 

첫 이야기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야기들은 책을 놓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이야기 하나하나 모두 나의 이야기이고 언젠가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들이다. 마치 내가 쓴 듯한 착각마저 든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미용실 출입이 뜸해졌다. 원래도 잘 안 가던 미용실인데 그나마도 핑계가 생겨서 더욱 안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미용실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된다.

 

p53

우리 동네에는 머리를 잘 자르기로 유명한 미용실이 있다. (중략) 소문대로 커트 실력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단순히 머리를 잘 자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손님이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센스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는 그곳에 가지 않는다. 번거로운 예약 절차보다 곤란한 문제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끝없이 이어지는 미용사의 스몰토크였다.

 

미용사의 입장에서는 머리 손질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을 편안하게 하는 것도 서비스 측면에서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 서비스라는 것이 저자나 나 같은 손님에게는 매우 불편한 서비스가 될 수도 있다. 그냥 조용히 머리만 만져주면 좋은데 쉴 새 없이 스몰토크를 한다. 스몰토크라는 것이 강의처럼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서 가끔은 대꾸도 해야 하기에 무척 성가시다. 그래서 때로는 책을 보는 척 스마트폰 속 영화를 보는 척해 보기도 하지만 눈치 없는 미용사들은 쉴 새 없이 떠들어 댄다. 결국은 머리 손질 기술이 조금 떨어져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 미용실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나름 안식을 찾는다. 이는 바로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의 하현 저자의 마음이자 나의 마음이다.

 

이 책은 매우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읽다 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매일매일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 속에 일어나는 일들이지만 순간순간 느끼는 느낌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매 순간 때로는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상심하기도 하며, 때로는 심한 절망감에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러나 때로는 기쁨과 행복으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사랑스러울 때도 있다. 그 평범한 듯 특별한 순간들을 저자는 매우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들이 마치 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 책의 제목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가 누군가에게는 의아하게 느껴질 것이다. 보통은 약속이 취소가 되면 기분이 상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리라. 그런데 저자는 약속이 취소가 되면 기쁘다고 한다. 그 느낌을 나도 이해하니 나도 일반적인 사람은 아닌가 보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약속을 해놓고도 왠지 만나기가 껄끄러울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약속이 취소가 되면 안도의 한숨까지 내쉬며 오히려 콧노래가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웬만하면 내 쪽에서 약속을 잡지 않는다. 갈수록 혼자만의 시간이 더 편해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를 써 내려가는 저자의 어조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물처럼 부드러운 듯하나 강하게 주장할 것은 분명하게 주장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결코 강압적이지 않다.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지만 한 마디 한 마디 힘을 주어 강조하는 듯하다. 정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바로 저자는 낮은 듯 강하게 강조한다.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는 하루하루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상들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인생을 깨달으며 하루하루 성숙해져갈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모든 사람이 다 빛나고 특별한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대중 속에 속해서 누군가와 비교하기 때문이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 스스로 나만을 바란 본다면 나의 존재는 빛나고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평범한 나의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를 읽으며 마치 저자와 마주하며 수다를 떠는 듯한 착각을 한다. 이야기마다 모두 공감속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고 있는 나자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난 듯하다. 저자의 다른 책들도 궁긍해진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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