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 - 15인의 여성 작가들이 말하는 특별한 마흔의 이야기
리 우드러프 외 지음, 린지 미드 엮음, 김현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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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

이 년 전, 마흔이 됐을 때 나는 사십대를 '인생이라는 대장정의 가장 뜨겁고 꽉 찬 심장부'라고 표현했는데 지금은 더더욱 그렇게 느낀다. -프롤로그 중에서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는 마흔이라는 나이를 넘긴 15인의 여성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왜 특별히 마흔이라는 나이일까 생각해 보았을 때 어중간한 나이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20대는 누구나 인정하는 청춘이고, 30대는 한창 젊은 나이이다. 50대 이후는 중년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마흔이라는 나이는 젊다고 보기에는 좀 나이 들어 보이고 그렇다고 중년 취급하기에는 좀 젊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젊음과 중년의 중간인 마흔이라는 나이가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속 15인의 저자들은 이력도 제 각각이고 마흔이 되어 느끼는 감정들도 모두 다르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인생의 기점을 마흔 이전과 이후로 나누고 있다는 것이다.

p31~32

나는 이십 년도 더 이전에 내가 다녔던 대학원 과정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마도 육십대로 접어든 동료 교수님들 중에는 나의 학생 시절에 교수님이었던 분들도 몇 분 계신다. (중략)

내가 학생이었을 당시엔 그 교수님들이 늙어 보였다.

만약 누군가 내게 그분들의 나이를 물었다면 아마도 육십 대쯤 되셨을 거라 생각했을 것 같다.(당시의 내겐 엄청 늙은 나이). 그분들이 당시에 지금 내 나이셨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제자들도 나를 육십 대라고 생각할까? 이십대의 사고 체계를 감안한다면, 충격적이기는 하나 전혀 일리 없는 얘기는 아니다.

-사는 건 똑같은데 집세만 올랐지_메건다움 -

이 글을 읽으며 나의 이십대가 생각났다. 대 1신입생 시절 과전체 모임 혹은 동아리 전체 모임 이후 2차 모임이 시작되면 졸업생들도 참석을 한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우리들에게는 대 4 선배들도 엄청 나이 들어 보였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는 선배들은 꼰대나 다름없어 보였다. (실제로 꼰대라고 불렀다. ) 그 당시 20대 때는 나도 꼰대로 불리는 시절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못 했다.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에 나오는 15인의 40대의 이야기들은 참으로 다양하다.

혼자만의 삶을 즐기는 메건 다움, 옷의 이야기를 통해 마흔에 도달한 삶을 이야기하는 캐서린 뉴먼, 마흔이 된 것을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 말하는 베로니카 체임버스, 얼굴에 하나씩 늘어가는 주름을 통해 마흔이라는 나이를 실감하는 슬론 크로슬리, 마흔일곱이 되어 이제는 일보다 가족이 더 먼저임을 깨닫게 되는 KJ 델 안토니아, 이십대에 배우가 되었으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서른아홉에 배우가 된 것을 만족해하는 질 카그멘, 시를 통해 마흔을 이야기하는 제나 슈워츠, 글쓰기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케이트 볼릭, 마흔에 닥친 사건을 통해 공감하고 함께하는 삶을 느끼게 된 앨리슨 윈 스코치, 마흔이 넘어 진정한 교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 제시카 레이히,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줄리 클램, 멋진 그림으로 엣지 있게 마흔을 표현한 일러스트레이터 수진 림, 인형 탈 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리얼리티 쇼 단골 출연자이자 부동산 사업가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비통해 할 시간은 없다며 여전히 자신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소르로니아 스콧, 남편이 이라크 전쟁에서 겪은 큰 부상으로 마흔이라는 나이가 안정을 보장해 주는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리 우드러프, 시간의 흐름 속에 시간에 순응하며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해주는 태피 브로데서애크너.

그리고 이 글을 엮은 린지 미드의 프롤로그까지 포함하면 모두 16인의 마흔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들의 이야기 중 앨리슨 윈 스코치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완벽한 엄마이고 아내였다. 한국의 엄마이자 아내와 비슷해서 더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완벽하게 아이들을 케어하고 남편을 내조하며 자신의 일까지 해내는 퍼펙트 커리어 우먼! 그런 그녀에게 날벼락 같은 일이 일어났다. 스키장에서 넘어지면서 다리뼈가 부서져 몇 주 동안 움직일 수 없는 커다란 부상을 입은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부상보다 그녀 자신의 일상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더 걱정이었다. 아이들은 누가 케어하며 집안일은 누가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더 앞섰다. 그러나 그녀가 sns에 그녀의 상태를 올린 이후 도움의 물결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언제나 믿음직하지 못했던 남편, 부모님, 친구들, 이웃들까지 모두 그녀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일일이 그녀의 손이 닿지 않으면 안 되었던 딸과 아들들도 그녀의 도움 없이 자율적으로 생활하는 법과 아픔에 공감하는 법을 배워나갔다. 앨리슨 윈 스코치는 마흔 시점에서 다리가 박살 났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고 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고 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좀 더 배려하고 공감하는 너그러운 사람이 되었다.


앨리슨 윈 스코치의 글 중에서 내가 인상 깊었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이웃들의 도움이었다. 이웃들이 집 밥을 만들어주고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기분전환을 위해 페디큐어 숍에 데려가 준다. 순번을 정해 번갈아가며 그녀의 집에 들러 냉장고를 채워주고 몇 시간씩같이 있어준다고 한다. 이 부분들이 한국에 사는 나로서는 매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그녀처럼 많은 이웃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해볼 건 다 해봤고, 이제 나로 삽니다>를 읽으며 나의 마흔 시절을 되새겨 보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와 비슷한 부분도 있고 또 나와는 다른 이야기도 있으며 한국적 정서와 다른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물리적인 시간은 같지만 느끼는 느낌은 모두가 다르다는 것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들이 지금은 마흔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지만 10년이 지나면 쉰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10년이 지나면 예순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중간중간 점검하며 바로잡아가는 것이 아닐까.

20대에 이 책을 읽는 이도 있을 것이고 30대에 읽는 이도 있을 것이다. 또 나처럼 마흔이 훌쩍 넘어 읽는 이도 있을 것이다. 2,30대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마흔을 그려보거나 간접 체험을 해 볼 수 있을 것이고, 마흔이 지나서 읽는 이들은 지나간 마흔을 되돌아볼 기회가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나간 시절이든 다가올 시절이든 모두 나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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