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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기억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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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전생은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삶은 몇번 째 삶이 되는 것일까? 나는 전생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 나의 전생은 지금 나의 현생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나의 현생은 나의 다음생에 영향을 줄게 될까? 전생의 나와 만날 수 있을까?
사실 전생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저 윤회사상이라는 불교의 종교적의미로만 이해할 뿐이다. 혹은 드라마 소재로 삼기 좋은 재료라고 생각되었을 뿐이다.
<기억>은 주인공 르네 톨레다노가 자신의 전생을 체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베르나르 베르베르 특유의 기가막힌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기억>은 단순히 주인공 르네가 전생을 체험하는 전생이야기가 아니다. 전생은 그저 이야기를 다루는 소재일 뿐 베르베르는 <기억>이라는 소설을 통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기억>속에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베르베르 특유의 상상력이 펼쳐진다. 또한 베르베르의 소설에서 빠지지않는 베르베르만의 사회비판이 가미되어 있다. 하지만 베르베르의 소설은 결코 어둡지 않다. 읽으면서 불쾌하게 만드는 과한 폭력장면이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표현들이 없다. 그리고 사랑이야기는 베르베르 소설의 기본 베이스이다.
<기억>소설의 시작은 르네가 동료교사 엘로디 테스케와 함께 유람선 공연장인 '판도라의 상자'에 가서 공연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공연은 오팔이라는 최면사가 관객들에게 체험을 통해 잊혀진 기억을 찾게 해준다는 주제로 관객을 지목해 전생을 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그 첫번째 체험자는 주인공 르네가 되었다. 최면사 오팔은 최면을 통해 피험자를 전생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최면을 건다. 르네는 최면사 오팔의 최면으로 그의 전생 중 109번 째 전생으로 들어가 전쟁중 사병이었던 전생의 그를 보게 된다. 그런데 최면을 통해 전생 체험을 안내하는 오팔도 사실은 르네를 상대로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때문에 전생 체험 후 어떤 후유증이 있을 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르네는 109번째 전생속 그 자신인 이폴리트 펠리시에가 전쟁중 살인을 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아 현생으로 돌아오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공연장을 뛰쳐나온다. 르네는 전생 속 자신인 이폴리트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현생에 돌아온 르네는 살인을 하게 된다. 이후 한낱 고등학교의 역사교사로서 평범한 인생을 살던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과연 역사교사 르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기억>은 1권, 2권이 모두 400페이지가 조금 안되는 두꺼운 책이다. 그러나 책을 펼친 후 소설속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스토리는 두꺼운 책 두권을 읽는 것이 결코 버겁지 않다. 또한 장마다 길지 않고 짧막하게 구성이 되어 있어 스토리의 흐름을 더 잘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게 한다.
<기억>의 주인공 르네가 역사교사인 것은 베르베르가 왜곡된 역사를 꼬집어내기 위한 의도된 직업이다. 르네는 역사교사이지만 학생들에게 책 속에 적혀있는 역사이야기를 그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닌 승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버려진 역사들을 가르친다. 베르베르는 르네를 통해 독자들의 왜곡된 역사의 기억들을 바로잡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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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소설에 나오는 역사는 대부분이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조금 아쉬운 부분은 있으나 역
사의 왜곡은 프랑스뿐이 아닌 모든 인류역사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사실이기 때문에 충분히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베르베르는 역사교사 르네를 통해 학생들이 바칼로레아를 위해 역사의 진실을 외면하고 높은 시험점수만을 바라며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단순히 달달 외우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며 살짝 비꼰다. 이는 우리나라 역사교육의 현실과 오버랩되며 결코 프랑스나 우리나라나 교육의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교육이라는 단어가 가진 문자 그대로의 뜻을 현장에서 조금도 실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 교양 없고 무식한 다음 세대가 도래할 일만 남았어. 교과서 내용을 앵무새처럼 읊어 댈 줄만 알고, 뉴스와 부모의 말을 여과 없이 자기 생각으로 삼고, 광고와 인터넷에 휘둘리는 세대 말이야. 그들은 자기 생각도 없고 그걸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없어. 이미 만들어진 생각에 그저 동조할 뿐이지. (중략)
시험에 붙기 위해 그저 수업에서 들은 얘기를 외워서 말할 뿐이야. 애들 머릿속에는 바칼로레아 생각밖에 없어. p77~78 (기억1권)
<기억>은 단순히 전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전생은 베르베르가 펼치고자 하는 판타지의 이동 장치일 뿐이다. 전생을 통해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게 하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거의 잊혀져가는 아틀란티스의 신화적 역사를 소환한다. 주인공 르네의 첫번째 전생속 그는 아틀란티스인 게브이다. 르네는 게브와의 영적교감을 통해 사라진 신비의 나라 아틀란티스의 역사적 존재를 남기고 인류의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쓴다.
비록 소설속의 이야기이지만 베르베르는 현존하는 기존의 역사적 증거와 사실을 토대로 아름다운 판타지 소설을 만들어냈다.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최초로 언급한 사람은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다. 그는 기원전 547년 이집트 멤피스 신전에서 수학할 당시 헤라클레스의 기둥들(현재의 지브롤터해협) 건너편 한 섬에 높은 정신적 수준을 지닌 문명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황금 시편>에 적고 있다. p196 (기억1권)
피타고라스에 이어 두 번째로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언급한 사람은 (피타고라스의 제자의 제자인) 플라톤이다. 그는 기원전 360~350년에 집필한 두 권의 저서 <크리티아스>와 <티마이오스>에서 아틀란티스를 언급한다. p197 (기억1권)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모든 것이 과연 모두 진실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베르베르는 <기억>속에서 기억의 오류 혹은 기억의 왜곡에 대해 꼬집는다. 이것은 결국 왜곡된 역사 기록의 주입으로 인류전체의 집단 기억이 왜곡되고 있는 현실도 함께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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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전에 읽은 베르베르의 희곡작품 <심판>을 읽으며 다소 실망하였던 마음은 <기억>을 읽으며 베르베르작품에 대한 신뢰를 재 회복하였다. 처음 <개미>를 읽었던 때의 신선한 충격만큼은 아니지만 베르베르의 소설은 여전히 신선한 소재를 바탕으로 어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무한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베르베르는 <기억>속에서 다음생을 선택할 수 있고 원하는 삶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음생의 선택 기준은 현생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바람이 다음 생에 반영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처럼 베르베르의 소설도 윤회를 하는 듯한 느낌이다. 각각의 작품들이 모두 다른 듯하지만 전의 작품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고 어딘가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다. 베르베르의 작품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는 듯하기도 하다. 나에게는 그런 베르베르의 소설이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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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베르베르의 작품을 안 읽었다. 매번 나오는 작품이 비슷한 듯하여 조금 식상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읽은 <기억>은 오히려 베르베르의 소설이라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도록 하는 점이 좋았다. 종교관, 윤회사상, 유머(사실 프랑스식 유머라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지만), 로맨스와 사랑등 베르베르가 항상 기본적으로 넣는 베이스 재료에 그의 무한한 상상력을 가미하여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읽고 난 후 감탄하게 하고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과연 다음번에는 또 어떤 소재를 갖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지 기대가 된다. 그러나 그 전에 그 동안 패스하고 넘겼던 베르베르의 작품들을 찾아 하나하나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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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