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의 노래 - 노천명 전 시집 노천명 전집 종결판 1
노천명 지음, 민윤기 엮음 / 스타북스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쁜 노트하나 마련하여 시를 필사하고 그림을 그려꾸미고 필사한 시를 한 구절씩 외우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자의라기보다는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순수어린 열정에 이끌린 감성수업의 일종이었다.대학 졸업후 갓 부임한 담임선생님은 문학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신 분이셨다. 국어선생님으로서의 책임감보다는 아직도 대학생티를 벗어나지 못한 문학도로서의 분위기가 더 강했다. 덕분에 우리는 국어시간에 지루한 국어수업보다 담임선생님의 교과서외 문학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다. 요즈음 그런 수업을 하는 선생님이 계시다고 하면 학부모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중2시절 초보 담임선생님덕분에 사춘기소녀로서의 감성을 조금이나마 노트에 끄적여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문학소녀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이후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중2시절 잠깐 시라는 것을 맛보았지만 내 감성을 뒤 흔들지는 못 하였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가슴으로 시를 접하기보다는 입시를 위해 머리로 받아들여서인지 시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깝다. 문학의 대부분 장르는 골고루 접하면서 유독 시에 관해서는 잘 읽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온전하게 시집 한 권을 제대로 읽어 본 기억이 없다.


시를 읽으며 제일 어려운 것은 은유적 표현인 듯하다. 시를 지은 배경이나, 시인의 생각을 알고 읽는다면 모르지만 아무런 정보없이 시를 읽을 때는 잘 와 닿지가 않는다. 아마도 학창시절 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보다 시험을 위해 시를 쪼개고 나누어 분석하는 연습이 먼저여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시집 한 권을 오롯이 읽어냈다. 이래서 시를 읽는가 보다. <작별>을 읽으며 시인의 마음이 내게도 와 닿았다.

상여가 동리를 보고 하직하는 마지막 절하는 걸 봐도 나는 도무지 어머니가 아주 가시는 것 같지 않았다.

시 <작별>중에서 82p

시인은 어머니를 애도하였지만 나는 올 초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시인과 같은 마음이 되어 시를 읽었다. 이래서 시를 읽는가 보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시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뭔가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낀다. 짧은 생이지만 롤러코스터를 타듯 곡절많은 생을 살다간 시인의 애환이 전해지는 듯하다. 특히 옥중에서 쓴 시는 시인의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 아무래도 옥중이다보니 은유적인 표현보다는 직설적 표현으로 더 잘 와 닿는 느낌이다.

내가 저승엘 왔나 보다.

아무래도 여기가 저승인가 보다.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끊어져

아무도 나를 찾아주는 이 없구나.

그들은 확실히 딴 세상에 산다.

시 <저승인가 보다> 146p





옥중에서 쓴 글을 보면 노천명시인의 억울해하는 듯한 감정도 엿보인다. 살기위한 어쩔 수없는 선택에 대한 형벌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었던 듯하다. 노천명 시인은 그러한 마음을 동료기자였던 김광섭 시인에게 전하여 도와달라고 한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 비서실에 근무를 하던 김광섭시인은 노천명 시인이 석방되도록 도와준다.


노천명 시인은 친일과 반민족행위로 낙인 찍힌 시인이다. 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화상>이라는 시에 보면 '대처럼 꺾어는 질망정 구리처럼 휘어지며 구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라고 노천명 시인 자신의 성격을 표현하였다. 그런 대쪽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친일을 하고 공산군에 협력을 하였다고 하니 노천명 시인의 당시 생각이 궁금해진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우선은 살고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겠다. 나라를 빼앗기고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시하라도 모든 이가 독립투사가 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 반대로 친일하고 공산주의에 협력한 이도 많았으리라. 어쩌면 노천명 시인은 그 많은 이들 중 본인이 지목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을 억울해 한 것은 아닐까. <유명하다는 것>,<이름없는 여인이 되어>라는 시를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천명 시인의 씻을 수 없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노천명 시인의 빼어난 문학작품들은 점점 더 그 빛을 발하는 듯하다.




노천명 작가의 소설집, 수필집, 시집을 차례로 읽어보았다. 그 중에서 역시 시집이 노천명 문학전집의 끝판왕이라 하겠다. 왜 노천명 작가를 노천명 시인이라 칭하는지 시집을 읽어보니 알 것도 같다. 노천명 시인에게는 모든 사물이 소재가 되어 아름다운 한 편의 시로 탄생한다. 참으로 부러운 재능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소설과 수필까지 모든 장르를 골고루 넘나든다. 시인은 시를 쓰고,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수필가는 수필을 쓴다는 선입관도 노천명 작가가 없애주었다. 이렇듯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여류문학가의 짧은 생이 더욱 가슴아파지는 이유이다.


시에 대해 잘 모른다면 시집을 한 권 오롯이 읽어보길 권한다. 처음 부터 끝까지 읽고나면 시를 쓴 시인의 감성이 전해 질 것이다. 굳이 시를 하나하나 정독할 필요는 없다. 읽어내려가다 보면 나의 감정을 대변한 듯한 시를 만나기도 하고 시인의 감정이 나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시를 만나기도 한다. 어떤 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모르는 시도 있다. 그러나 수필을 읽듯, 소설을 읽듯 끝까지 읽고 나면 분명 시인의 감성이 느껴질 것이다. 시에 대해 백치에 가까웠던 내가 이 시집을 읽고 시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노천명이라는 작가에게 빠져버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