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승엘 왔나 보다.
아무래도 여기가 저승인가 보다.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끊어져
아무도 나를 찾아주는 이 없구나.
그들은 확실히 딴 세상에 산다.
시 <저승인가 보다> 146p
옥중에서 쓴 글을 보면 노천명시인의 억울해하는 듯한 감정도 엿보인다. 살기위한 어쩔 수없는 선택에 대한 형벌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었던 듯하다. 노천명 시인은 그러한 마음을 동료기자였던 김광섭 시인에게 전하여 도와달라고 한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 비서실에 근무를 하던 김광섭시인은 노천명 시인이 석방되도록 도와준다.
노천명 시인은 친일과 반민족행위로 낙인 찍힌 시인이다. 좀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화상>이라는 시에 보면 '대처럼 꺾어는 질망정 구리처럼 휘어지며 구부러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라고 노천명 시인 자신의 성격을 표현하였다. 그런 대쪽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친일을 하고 공산군에 협력을 하였다고 하니 노천명 시인의 당시 생각이 궁금해진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우선은 살고 보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겠다. 나라를 빼앗기고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시하라도 모든 이가 독립투사가 되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 반대로 친일하고 공산주의에 협력한 이도 많았으리라. 어쩌면 노천명 시인은 그 많은 이들 중 본인이 지목되어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을 억울해 한 것은 아닐까. <유명하다는 것>,<이름없는 여인이 되어>라는 시를 읽으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천명 시인의 씻을 수 없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노천명 시인의 빼어난 문학작품들은 점점 더 그 빛을 발하는 듯하다.


노천명 작가의 소설집, 수필집, 시집을 차례로 읽어보았다. 그 중에서 역시 시집이 노천명 문학전집의 끝판왕이라 하겠다. 왜 노천명 작가를 노천명 시인이라 칭하는지 시집을 읽어보니 알 것도 같다. 노천명 시인에게는 모든 사물이 소재가 되어 아름다운 한 편의 시로 탄생한다. 참으로 부러운 재능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소설과 수필까지 모든 장르를 골고루 넘나든다. 시인은 시를 쓰고, 소설가는 소설을 쓰고, 수필가는 수필을 쓴다는 선입관도 노천명 작가가 없애주었다. 이렇듯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여류문학가의 짧은 생이 더욱 가슴아파지는 이유이다.
시에 대해 잘 모른다면 시집을 한 권 오롯이 읽어보길 권한다. 처음 부터 끝까지 읽고나면 시를 쓴 시인의 감성이 전해 질 것이다. 굳이 시를 하나하나 정독할 필요는 없다. 읽어내려가다 보면 나의 감정을 대변한 듯한 시를 만나기도 하고 시인의 감정이 나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시를 만나기도 한다. 어떤 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인지 모르는 시도 있다. 그러나 수필을 읽듯, 소설을 읽듯 끝까지 읽고 나면 분명 시인의 감성이 느껴질 것이다. 시에 대해 백치에 가까웠던 내가 이 시집을 읽고 시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노천명이라는 작가에게 빠져버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