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의 왕자 - 노천명 수필집 노천명 전집 종결판 2
노천명 지음, 민윤기 엮음 / 스타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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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의 수필집을 읽으며 드는 생각이 노천명작가를 왜 시인으로만 국한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시의 발표가 많아서이겠지만 수필을 읽으며 노천명 작가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낀다.


표지에 보면 정지용 시인이 노천명 작가의 작품에 대해 평하기를 "연둣빛 수채화 같은 은은한 삶의 향기가 풍긴다"라도 하였는데 노천명 작가의 수필속에서 특히나 진하게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노천명 작가의 수필들을 읽으면 글들이 참 정갈하다는 느낌이 든다. 노천명 작가의 소설들을 읽을 때는 어떤 작품은 뜻이 애매하다는 생각을 하였는데 수필에 와서는 작가의 성격처럼 단아하고 똑부러진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문호의 작품을 이러구 저러구 한다는 것이 건방질 수는 있겠으나 개인적으로 화려하게 미사여구를 사용한 문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다보니 노천명작가의 문체가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노천명 수필집의 제목이 '언덕의 왕자'다.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밭에서 피어난 맨드라미를 말한다.

지금 내 주위를 끄는 것은 한 포기의 맨드라미인데, 이거야말로 흡사 그 언덕 일대의 왕자다.(중략)

어떻게 해서 밭곡식이 나는 곳에 뜰에나 나는 화초가, 그야말로 '다른 밭'에 이렇게 났는지도 궁금하거니와, 그 봄직하고 탐스러운 꽃이 가까이서 지키지도 않는 밭에 가 남아 있느냐는 것과, 또 그 언저리에 낱곡식을 희생시켜 혼자 넓은 자리에서 마음껏 자라게 해 주고 열심으로 가꾸어 주었다는 그 점이다.

언덕의 왕자 28p


작가는 맨드라미를 보고 그 꽃에 반하기도 하지만 그 꽃을 가꾸는 주인의 마음씨에도 반하여 마지막에는 그 꽃을 가꾼 주인에 대한 칭송으로 마무리가 된다


노천명 소설집을 읽었을 때에도 당시의 시대상이 곳곳에 반영되어 나와 있지만, 수필집에는 더욱 자세히 나타난다. 당시의 상황뿐아니라 작가의 생각과 감정이 오롯이 담겨 있어서 노천명작가와 친밀해 지는 느낌이기도 하다.


이 책을 엮은 민윤기 시인은 이 수필집을 주제별로 분류하였는데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역시 '7장 여성의 눈으로' 이다. 제목대로 노천명작가가 여성으로서 느끼는 당시 사회의 모습을 주로 써놓았다. <국회의 싸움>이라는 글을 보면서 그 때나 지금이나 국회의 모습이 전혀 변한 것이 없다라는 생각에 씁쓸해지기도 한다.

국회는 요새 정말 볼 만하다. 허구한 날 여야 양당의 싸움으로 일관하고 있지 않은가.

(중략)

이 양반들이 도대체 어쩌자는 걸까? 전화 요금이 올라, 기차 값이 올라-관영 요금이 이렇게 뛰어오르는 바람에 일반 물가가 모두 지금 뛸 자세를 취하고 있는 판이요, 시중에는 돈이 돌지 않아 몇몇 재주 좋은 사람-비위 좋은 친구들 이외에는 사업하던 사람은 못하고 있고, 회사 문을 닫고 턱턱 나가 동그라지는 판인데, 도탄에 빠진 이 시급한 민생 문제는 하나도 무슨 방안을 세워 주지 않고 그저 자기네들의 싸움으로 날을 보내고 있으니 이런 염치는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국회의 싸움 425p


노천명 작가가 신문사에 취직하여 남자기자들로부터 차갑다는 평을 받았다고 하지만 수필속의 글들을 보면 정이 많고 여린부분이 많은 외로운 작가였음을 느낄 수 있다. <>이라는 글을 보면 유부남과의 사랑때문인지(글속에서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안방 여성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M부인이 있는데 노천명작가와는 매우 친한 사이였던 모양이다. 어쩌면 노천명 작가도 두번이나 유부남을 사랑했던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이 M부인에게 무척 관대하다. 사랑한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며 글 마지막 부분에 마무리한 글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부끄러운 것을 치자면, 사기 협잡이나 중상 모략을 해서 무서운 구렁텅이에다 남을 몰아넣고도 그것이 하늘 무서운 일인지도 모르고 뻔뻔하게 다니는 남녀들이 부끄러울 것이지 남을 사랑했다는 일이야 무엇이 부끄러운 일이냐.

정일레 넘어지는 친구, 사랑일레 저지른 실수에 가혹한 평을 가하고 싶지는 않다.

정 249p

노천명 작가의 수필을 읽다보면 참으로 다양한 소재를 글감으로 삼아 자유롭게 글을 썼다라는 생각이 든다. 요즈음 줄줄이 출간되는 책들이 글쓰기 관련, 책쓰기 관련 서적들이다. 대부분이 무작정 글을 써라, 소재는 주위에 널려있다라며 글쓰기를 권한다. 또한 필사가 글쓰기연습에 좋은 방법이다라며 권한다. 만일 필사를 하기위해 책을 고른다면 노천명 수필집으로 하고 싶다. 물론 근대어들이 섞여 있어서 현대말과 다른 부분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문장흐름에 있어서 그리 큰 장애가 되지는 않는 듯하다.


책의 뒤에는 부록으로 노천명 작가에 대한 에피소드와 생애 연대기가 나온다. 부록을 읽은 후 드는 생각이 글을 연도별로 분류하여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연도별로 분류해 보았다. 연도별로 분류해서 보니 웬지 글의 느낌이 또 달라졌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분류는 일제강점기 이전의 글, 일제강점기의 글, 6.25 전쟁시의 글, 6.25 전쟁후의 글로 나누어 보았다. 일제강점기 이전의 글은 밝고 열정적인 느낌이 들고, 6.25 이후의 글들은 사회비판적인 내용이 많이 엿보였다. 작가의 심경의 변화들도 느껴졌다.


노천명 수필집이 재출간된다고 하면 이번에는 연도별로 분류하여 작가의 인생사를 좇아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 보는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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