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 - 노천명 소설집 노천명 전집 종결판 3
노천명 지음, 민윤기 엮음 / 스타북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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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의 여류문학가 노천명은 시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보면 노천명 시인은 평생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고 한다.

올해 소설을 하나 써보려고 했던 것이 은근히 내가 벼르고 있던 계획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 이 하고 싶은 일은 날마다 쫓기는 일에 무참히도 고개조차 들어보지 못한 채 이 해를 보내게 되었다. (중략) 아직 손도 대지 못한 광우리 속의 숱한 일감 중에서 일감을 잡을 여유가 생긴다면 제일 먼저 집어 들고 싶은 일거리가 소설을 쓰는 일이다.

들어가는말 5~6p (1956년 12월 31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노천명 시인의 수필<올해 못한 일>의 일부라고 한다.)

이 책에는 표지 제목인 <우장>외에 7편의 단편소설들이 실려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우장>을 제외한 7편의 소설속에는 노천명작가자신의 모습 혹은 생활이 투영되어 있는 느낌이다. 특히 <오산이었다>라는 소설은 노천명 작가의 실명과 그의 친구인 김수임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나와 자전적 소설과 같은 느낌을 준다. 들어가는 말의 설명에서도 <오산이었다>는 노천명작가가 6.25 한국 전쟁 기간 중 피난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았다가 공산당에 부역할 수 밖에 없었던 개인적 사정을 변호하는 신상 발언 같은 소설이라고 하였다.


오랜만에 근현대 소설을 읽어본다. 학창시절 대입시험을 보기 위해 국어시간에 줄기차게 읽어대고 외워대던 그 시절 이후 근현대 소설을 읽을 기회도 없었을 뿐더러 일부러 찾아 읽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노천명시인의 작품으로는 그 유명한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는 <사슴>외에는 잘 알지 못한다. 문학소녀와는 거리가 멀었기에 학창시절 시험을 보기위해 급조하여 외운 문학작품들은 시험을 본 이후 바로 기억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며 근현대사 작가들의 작품들이 궁금해지기도 한다. 시만 쓴 줄 알았던 노천명 시인의 소설이라고 하니 웬지 더 궁금하고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읽어 보게 되었다


■사월이

소설속 '나'는 서울에 올라와 조카들과 생활하며 집안일을 해 줄 계집아이를 구한다. 어느 날 동네 언년어멈을 통해 열세살 먹은 '사월이'라는 여자아이를 데려왔고 집안일을 맡게 하였다. 사월이는 얼마되지 않은 나이지만 기구한 환경탓에 도통 곁을 주지 않는 아이다.'나'는 그런 사월이에게 따뜻한 사랑을 주려 하였고, 사월이도 조금씩 변하게 된다.


■우장

박초시네가 사는 작은 마을은 가뭄이 들어 이제나 저제나 비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날이 너무나 가문탓에 가벼운 병도 돌기 시작한다. 박초시네서 일하는 황 서방은 돈이 조금만 모이면 황막에 가서 술한잔 사먹는 것이 낙이었다. 황 서방이 지랄만 버르지면 사흘 안에 비가 온다고 한다. 그런 황 서방이 또 지랄 버르지고 만다. 술이 취한 황 서방은 주정을 하였고, 성난 소와 한판 싸움을 벌이다 소에 받쳐 죽는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비가 오기시작한다.


■오산이었다

나(노천명)는 애써서 집을 한 채 마련했지만 괴뢰군이 동네에 주둔하고 부터는 집이 싫어졌다. 아니, 집에 있는 것이 무서웠다. 같이 사는 계집아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괴뢰군에게 매수를 당한 것 같다. 언제 나를 없앨지 불안했다. 어느 날 괴뢰군에게 불려갔다온 후 나는 더 이상 이 곳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남쪽으로 피신을 갈 생각을 한다. 통행금지시간에 맞추어 보퉁이 하나들고 집에서 도망친다.


■외로운 사람들

선이는 6.25사변으로 남편도 잃고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런 선이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는 것은 남편생전 남편과 함께 고아원에서 들여온 은주때문이다. 선이는 친정엄마와 은주와 셋이 살아간다. 과부가 된 선이는 히스테리칼한데가 생겨 친정엄마에게 성질을 부리다 후회한다. 사는데 바빠 은주에게 떡하나도 못 사먹인 것을 후회하기도 한다.


■결혼 전후

원희는 Y여고의 수재요 C읍의 미인이었다. 모교의 교비로 전문학교를 보내준다지만 원희의 집안형편때문에 전문학교에 진학할 꿈도 못꾼다. 어린 동생들까지 부양하려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원희의 어머니는 원희를 부잣집 최씨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내려 준비하였다. 원희는 K와 교제중이었다. 그러나 원희와 K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원희는 최씨의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한량꾼이었던 최씨의 아들은 1년만에 새 생활을 찾아 일본으로 떠났다. 원희는 K와 재회를 하였다. K는 원희와의 결혼을 원하였으나 원희는 K의 미래를 위해 친구로 남는다.


■하숙

선옥은 객지 생활을 하며 하숙집을 전전한다. 하숙집을 구할 때마다 맘에 드는 집을 구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맘에드는 아담한 기와집을 발견하고 그 집에 하숙을 들어간다. 그 집 주인마누라는 사실 선옥을 아들의 며느리로 삼을 생각으로 선옥에게 하숙을 놓은 것이다. 주인마누라의 불순한 친절에 선옥은 다시 하숙을 옮겨야 겠다고 생각한다.


■일편단심

은실어머니는 000운동에 남편을 잃고 재산도 모두 잃었다. 그 후 여자 혼자힘으로 은실이 하나만 바라보며 일편단심 살았다. 오라버니가 권하는 재혼에 성을 내며 열녀의 기상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은실어머니는 병을 얻어 결국 세상을 떠나고 은실은 제일번으로 C여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의 산소를 찾는다.


■닭 쫓던 개

서대문으로 가려던 S는 짐을 잔뜩 든 단아한 여학생에 끌려 그녀의 짐을 들어주며 경성역까지 동행하였다. S는 내심 기대를 하였으나 경성역에서 단아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은 바로 S와 동반인 K였다.

8편모두 짤막한 단편소설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다. 그런데 <우장>은 대부분이 황해도 말로 되어 있어서 읽기가 쉽지 않고 모르는 단어들도 꽤 많았다. <우장>에 대한 설명에 따르면 한국문학사에 향토성 짙은 대표적 단편을 한 편 추가해야 할 만큼 대단히 중요한 문학적 사건이라고 한다.

향토성 짙은 대표 단편으로 정평이 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 강원도 토착 방언을 능숙하게 구사함으로써, 당시 강원도에 살던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 수작이었다면, 노천명의 <우장> 역시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황해도 지방의 방언을 생생하게 구사하여 이를 훌륭하게 살려낸 명작이라는 것이었다.

들어가는 말 7p

<우장>을 읽으면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과 같은 느낌이다. 생생한 황해도 말투 때문인 듯하다. 소설의 결말은 씁쓸하다. 마치 황서방이 기우제의 제물이 된 것 같다고나 할까. 한 사람의 죽음보다 비가 오는 것을 더 기뻐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노천명은 양녀를 들여서 함께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월이>,<외로운 사람들> 을 읽으면 노천명과 그녀의 양녀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는 듯하다.

<결혼전후>는 조금은 신파극 같은 느낌이 들지만 당시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서 살아가려는 신여성의 의지가 조금은 엿보이는 느낌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은 신여성으로서 완전한 해방을 이루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시대에 따른 사상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숙>을 보면 지금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습한 땅에 버섯 나듯이 마당 하나 펼 틈없이 업히고 업힌 게 경성안의 집들이요, 나날이 짓느니 새집이건만 밥 사먹는 나그네들을 위해서는 집 한 채는커녕 육 척 평방의 좁은 방 하나를 좀체로 허락하지 않는 박정한 인심이다."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현대에도 집은 많으나 내 집 한 간 없는 현실과 닮아 집없는 서러움은 고금을 막론하고 풀리지 않는 숙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일편단심>은 절개있는 여성상을 보여주려 한 듯하다. <닭쫓던 개>는 한편의 콩트와 같은 느낌이다. 노천명의 유머를 엿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이 작품은 문단에 데뷔할 때 발표한 작품이라고 한다.


소설은 당시대의 시대상을 알 수 있고, 작가의 사상이 깃들여 있다고 생각한다. 노천명 시인의 소설은 특히나 작가 자신의 모습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느낌이다. 위에서 노천명 시인은 평생 소설을 쓰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어쩌면 시로 표현할 수 없는 작가의 심정을 소설속에 써보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낙인 찍힌 자신의 오명을 소설을 통해 해명해 보고자 한 것은 아니었는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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