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
김이율 지음, 박운음 그림 / 새빛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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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작인 <눈물은 쇄골뼈에 녛어둬>를 읽고 반해버렸다. 다음 편이 나온다면 '무조건 읽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안되어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이 나왔다. 이 책은 2015년의 개정판이다. 오히려 <눈물은 쇄골뼈에 넣어둬>보다 먼저 출간된 책이다. 어떤 책이 먼저 출간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 저자의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저자의 책을 읽다보면 나의 일기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느끼고 체험했던 일을 글로 옮기려다보면 고스란히 전해지지가 않아서 대부분의 일들이 물처럼 흘러가고 어느 순간 잊어버린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흘려버린 생각들이 거슬러 올라와 나의 감성과 만나면서 어느 새 저자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가요를 들으면 노래속의 가사가 나의 이야기일 때가 있다. 영화를 보면 영화속에서 인생을 발견하고 내가 그 영화속 주인공이 되어 생각하기도 한다. 예능프로를 보면서도 감동으로 함께 눈물을 흘린다. 혼자서 아플 때 가장 서럽다. 때로는 먼지 풀풀나는 중고서점이 나의 가장 멋진 아지트가 되기도 한다. 오래된 형광등에게도 정이 든다.


저자의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하루종일 별 것아닌 일로 바쁘게 종종거린 마음을 다스려 준다. 직장에서 하루종일 씩씩대던 내 성질을 달래준다.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상처난 내 마음을 가라앉혀 준다. 사랑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에게 사랑을 가르쳐준다. 꼭 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며 안심을 시켜준다.


다락방

한 귀퉁이에 작은 창문이 달린 다락방을 갖고 싶다.

눈물 나는 날이면 그곳에 처박혀 실컷 울고 싶다.

1장 내 인생 잘 지내고 있나요? 24p




가끔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찾아보면 나만의 공간이 의외로 없다. 다행히 나에게는 차가 있어서 나의 작은 다락방이 되어 준다.



예전에는 별 일 없는 게 왜 그렇게 무료하고 답답하고 한심하게까지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은 '별 일 없다'는 그 말이 참 좋다. 언제부턴가 별 일이 있다는 말에 겁을 먹은 듯하다. 별 일이 있다는 말은 주로 좋지 않은 소식으로 다가오기 때문

1장 별일없음의 고마움 52p



나이가 들어가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절감한다. 연락없이 지내던 친구가 오랜만에 연락을 하면 반가움보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얼마전 중학교 단짝 친구들 단톡방에 한 친구가 계속해서 답이 없다. 톡은 보는데 아무 말이 없다. 모두들 걱정이 되어 한 마디씩 보내는 데 답이 없거나 겨우 단답형으로 답을 한다. 그래도 답을 하니 무사하기는 한가보다 하고 그나마 안심을 한다. 그러더니 그 친구가 먼저 추석인사를 단톡방에 올렸다. 한동안 우울증이 와서 고생을 했다고 한다. 이제는 괜찮아졌다며 먼저 말을 건넨다. '별일없다' 는 것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할 말이 없으면 그냥 소리 없이 마음만 전해요.

2장 그냥 마음만 알아줘도 72p


힘을 내라는 말은 너무나 흔하고 식상합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건 그에게 힘을 주는 말이 아니라 그의 마음을 읽어주고 하나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2장 힘내라는 그 흔한 말 대신 89p



누군가 힘이 들어하고 위로가 필요할 때 우리는 꼭 위로의 말을 해 주어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진심을 담아 위로를 한다고 말을 전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고 오히려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다. 지인이 사별후 너무 힘들어 하여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지인은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와서 너무나 힘들어 하였다. 나에게 힘들다며 울며 호소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시간이 약이다', '그래도 견뎌야지', '애들을 봐서 힘내야지' 이딴 소리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그냥 들어만 주어도 된다며 아무말도 필요없다고 하였다. 공감없는 위로는 안하느니만 못하다. 차라리 말없이 들어주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 날 delete 할 수 없는 인생이기에 또 어김없이 살아간다.

오늘도 열심히 인생 키보드를 두드린다.

5장 우리가 서 있는 지점 229p



어떤 날은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러나 어떤 날은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하고 싶은 날이 있다. 또 어떤 날은 리셋하여 다시 시작하고 싶은 날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삭제도 리셋도 영구 보존도 안된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며 인생을 채워가는 수밖에 없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글을 채워가듯이...


책 속의 모든 꼭지가 와 닿는다. 무심코 넘겨버렸던 일들도 저자는 특별한 소재로 만들어 다시 한번 나의 감성을 일깨워 준다. 어떻게 이렇게 가슴에 와 닿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일상에 지쳤을 때, 편안히 쉬고 싶을 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에세이를 찾는다면 이 책을 권한다. 굳이 생각하며 읽을 필요가 없다. 편안하게 눈으로만 읽어도 힐링이 된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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