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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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소설 '개미'를 읽고 난 후 한동안 개미 신드롬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베르베르의 작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게 되었다. 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내가 베르베르의 작품만은 챙겨보게 된다. 베르베르의 조국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더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의 소설들 중 윤회사상과 같은 동양적인 사상이 깃들어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번에 나온 작품 <심판>도 그와 비슷한 내용이라고 보여진다. 환생을 다루고 있으니 아주 연관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다.

이 작품은 2015년도에 출간되어 프랑스에서 이미 무대에 올려진 희곡이다. <인간>에 이은 베르베르의 두 번째 희곡작품이다.

<인간>은 아직 읽어보지 않았기에 <심판>은 내가 읽은 베르베르의 첫 희곡이 된다. 소설로만 읽던 그의 작품을 희곡으로 읽어보니 또 다른 신선함이 느껴진다. 여전히 베르베르 특유의 상상력과 재치있는 유머들이 발휘된다. 그러나 그의 전성기시절만큼 임팩트있고 촌철살인과 같은 문장들은 보이지 않는다. 예전에 비해 다소 힘이 빠진듯하지만 여전히 그의 문장들은 강한 흡입력을 자랑한다.

220페이지의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기도 하지만 책을 펼치고 마지막장을 덮을 때까지 2시간여동안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베르베르의 작품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이 책은 희곡으로 4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아나톨 피숑 : 피고인

카롤린 : 피고인측 변호사

베르트랑 : 검사

가브리엘 : 재판장

아나톨은 폐암말기 환자로 수술을 받다가 사망후 천국의 재판장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 등장인물들의 직업으로 유추할 수 있듯이 아나톨은 생전의 행적을 토대로 재판을 받고 환생을 할 것인지 천국에 남게될 것인지 판결을 받는다. 이 곳에서 환생은 천벌에 해당한다. 과연 아나톨은 환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천국에 남게 될 것인가.

베르베르의 작품속에는 신이 누구인가,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 담겨있다. '개미'에서도 인간은 개미들에게 보이지 않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결국 우리 인간세계에도 보이지 않는 신이 존재하여 인간의 생사를 좌지우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남긴다.

<심판>에서도 그러한 대목이 보인다. 천국에 있지만 그들은 실제로 창조주를 만난 적은 없다.

가끔 그가 저기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우리를 관찰하는 듯이요. 저들 머리 위에 떠 있는 거대한 눈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든 적도 있어요.

그가 몰래 와서 영혼의 무게를 다는 걸 지켜보는 것 같아요. 순전히 호기심으로 말이죠. 훔쳐보기를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아요.

가브리엘과 베르트랑의 대화중 가브리엘의 대사 139p



천상의그들 눈에도 창조주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신의 존재가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듯하다.

이 작품이 조금 밋밋하게 느껴진 부분은 무대만 천국으로 옮겨왔을 뿐 재판과정이나 형식이 우리의 현실 속 재판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베르베르의 천재적인 상상력을 통해 좀 더 기발한 천국의 재판과정이 그려지지 않을까 하며 내심 지나친 기대를 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재판과정의 중간중간 지상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비춘다거나 아나톨의 전생이 드러나는 등 베르베르만의 상상력들이 돋보이는 부분들이 많이 있다. 또한 가브리엘과 영혼을 환생시키는담당자와의 통화는 베르베르만의 위트있는 유머를 느끼게 해준다.

게다가 반전도 있다!!(책 속에서 확인해 보시길~)

이 책을 읽으며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존재해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모두 보고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했던 생각들이다. 그래서 어려서는 가끔 나쁜 짓(?)을 할 때 혹시 신이 보고 있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어쩌면 종교를 갖기 두려운 이유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런 신의 존재를 전혀 두려워 하지 않는 이들이 너무 많은 듯하다. 오히려 신의 존재를 믿는 이들은 신의 뒷빽을 믿고 그러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일반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들을 보여준다.

<심판>의 내용은 사후를 다루고 있지만 결코 무겁지 않고 오히려 경쾌하고 유쾌한 느낌을 준다.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사후의 세계를 상상하게도 만든다. 또한 내가 환생을 한다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다시 태어게 될까에 대한 재미있는 해석도 들어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무대에 올려졌고, 올 가을에도 공연될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심판>이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베르베르는 <심판>속에서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제기해 놓았다. 아마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면 그때그때의 시대상황에 맞는 사회문제를 다루어 같은 줄거리일지라도 해마다 다는 내용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연극 '늘근 도둑의 이야기'처럼.

끝으로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내용이 있어 소개해 본다.

우리는 유전 25퍼센트, 카르마 25퍼센트, 자유의지 50퍼센트의 영향력하에 태어난다.

유전은 부모, 자신의 성장환경을 말한다. 부모의 직업을 물려받거나 그들이 갔던 길을 따라간다면, 그건 유전 요소가 강력하게 작용한 것이다.

무의식이 자신의 선택을 좌우한다면 그건 카르마가 지배적인 탓이다.

하지만 자신의 자유의지를 최대한 활용하면 유전과 카르마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자유의지 50퍼센트를 가지고 다른 요소들을 새롭게 분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2막 지난 생의 대차 대조표중에서 아나톨의 다음생을 결정하는 요소에 대하여 104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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