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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롯 속의 그녀들 - 경계시선 35 ㅣ 문학과경계 시선 35
서안나 지음 / 문경(문학과경계)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서안나 < 플롯 속의 그녀들>
1. 그녀의 시는 육체이다
신체란 유한성을 지닌 한 주체가 영혼이 소멸될 때 까지 사용해야하는 소모품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시집에서는 이 유한성의 처절함을 일상 속에서 도출해내어 전위적인 수사법으로 신체적 고통과 소멸을 음미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2. 그 여자 숨어있다
그녀는 언제나 있다- 와 언제나 없다- 사이에 숨어있다. 페이지와 검은 문장 사이에 동색으로 어렴풋이, 분노와 격렬함 사이에 그녀는 미끄럽게 숨어있다.
그녀의 시는 그녀이다. 혹은 그녀가 아니다- 사이에 뱀장어처럼 미끄럽게 숨어있다 그녀는 언제나 ‘사이’에 있다.
이 시 한편의 시는 그녀가 <플롯 속의 그녀들> 처럼 갇혀있으며 또한 여러 형태로 숨어있는 그녀의 현실을 대변해 준다. 시집과 시, 페이지와 문장 사이 행과 행 사이 그녀는 미끄러워서 쉽게 잡을 수 없는 존재로 화해서 숨어있는 존재.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실체로서 구속할 수 없는 존재를 욕망하는 그녀가 있다.
그런 맥락에서 <플롯 속의 그녀들>이라는 그녀의 두 번째 시집은 유한성을 가진, 동시에 두 곳에서 두 개의 역활을 할 수 없는 몸의 비망록이라고 할 수 있다
1부는 <뱀장어 그 여자 숨어 있다>, <스타킹 속의 세상>, <플롯 속의 그녀들>,<자판기 혹은 그녀>,<위층 사는 그 여자>,<착한 여자>,<천수 관음보살 그 여자> 등과 같이, 여성들과 특정한 그여자가 있는 장으로 채워져 있으며
2부는 <무덤에서 온 문자 메시지>,<러시안 룰렛 하는 밤>,<킬러의 우울한 고백>,<데드 마스크 뜨는 밤>,<문득 레몬 조각이 씹고 싶어졌다><죽음의 시퀀스> 등과 같이 죽음과 연관된 장
3부는 주제인 전생을 생각하다와 같이<금은 상처들의 힘이다>,<어느 봄날 길을 건너다 깨닫는다>,<황태에 관하여> 등, 전체적으로 인내와 윤회 그리고 불교적인 색채를 풍기는 따뜻한 내면을 통해 자가 치유적인 역할을 하는 장으로 3개의 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3. 몸과 세계
그녀는 현실의 장벽에 막혀 부딪치고 깨어지면서도<자판기 혹은 그녀> 물러서지 않는 전형적인 인파이터의 모습을 보여준다. 삶에 있어서 정신적인 도피는 가끔 필요한 것이지만 요령 피우지 않고 정면 돌파하려는 그녀가 보여주는 의지는 삶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지 <진지한 진찰실>자의식의 실험실에서 스스로를 보여준다.
시집 어느 곳에서도 슈퍼맨이나 동화와 같은 초월적인 육체나 상상으로 도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정면으로 대항하는 처절한 그녀, 그녀에게 세계는
‘이 세렝게티에선 먹이가 걸려들 때마다 우주로 별이 하나지고 별 하나 뜬다. 나의 행성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 하는 막막한 우주 안의 하나의 행성이며 세랭게티이며 야생의 법칙이 지배하는 초원이다. 치열한 경쟁의 세계는 편법이 동원되기도 하는데 이런 편법이 난무하는 세계는 매우 부당한 세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5도 각도로 기울어진>에서는 그녀가 기울어진 세계에 대항할 수 있는 몸을 통해서 투쟁할 수 근거와 그 정당성은 어디서부터 획득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몸도 15도 각도로 기울어버리게한 부조리한 세계라는 인식에서 기인한 그녀의 투사적인 항거, 자신의 생과 세계에 바로 서 있고자 투쟁해야 할 대상으로 각인되어 있었을까. 15도 각도로 기울어진 세계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한다
4. 발
그녀는 발을 통해 부조리한 세계를 극복하는 방식은 보여준다. <스타킹 속의 세상>, 먹이를 쫓는 거미의 <불온한 폭식>, 사냥감이 되어 쫓기고 킬러의 시각을 통해 관망한다.
여기서 발은 몸의 ‘있다와 없다 사이’, 존재와 부재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도구로서 사용되며 그 험로에서 실체의 주체격인 몸이 유지되고 해체되고 살해되는 과정을 일정한 궤적을 통해 보여주는 자의적인 움직임이다.
그리고 몸은 쫓김과 쫓음의 에너지와 이유와 논리를 지속적으로 생산해 내는 존재이고 몸은 그녀가 고백을 할 ‘꺼리’를 제공해주는 한 개인의 역사이다 <기억의 채널을 돌리지 말아요> 나에게 발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이 있을까.
가끔은 자기 비하로써 도구로 전환시키는 듯한 그녀의 몸은, 고통의 공격 대상으로써<내 몸이 아프다> 사용되며 통증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듯한 감각적 표현방식으로 영혼이 못 다버린 찌꺼기를 배설하는 기관이 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그녀를 통해 몸이 일정부분 도구화 되고 해체되는 장면을 엿볼 수 있었다. 스스로 자기점검과 그에 따른 보호본능은 장기를 해체하여 수리 할 수 있는 기계적 몸의 수준에 까지 도달하게 한 것일까.
‘슬픔을 알아버린 몸에 슬픔은 더 이상 독이 되지 못’하는 몸 ‘15도 각도로 기울어진’몸
‘세상에 기대어온 몸과 마음의 각도를...’ 스스로에게 들키고 만 그녀는 몸의 축을 이리저리 옮겨보던 갈등마저 읽을 수 있는 그녀, 무게 중심으로부터 항상 15도 각도로 기울어져 있고
15도 각도로 멀어져있는 그녀
그녀의 삶의 방식은 어떨까 ‘삼천오백년 동안이나 머리를 빗으며 손톱을 자르며 구두속에 살고 있어요’ , 내 꿈이 단단해질 무렵에 돌아오는 <위층 사는 여자> 몸속에 오래된 발<동충하초에 관한 하나의 편견> ‘나의 슬픔을 울어주는 여자 하수구로 흘러내리는 그 여자
몇 번 오가는 길에 마주쳤던 그 여자 예수처럼 얼굴이 갸름한 그 여자 새벽마다 자신의 슬픔을 꾹꾹밟고 오르는 여자' 그런 여자들의 억눌린 갈증의 해소는 손의 형태로 곳곳에서 출몰한다.
5. 손의 역활
발에 비해 손은 그다지 제약적이지 않나 발이 쫓김과 몸을 위해 움직이는 부속물이라면 그녀에게 손은 유일하게 자유스런 도구이다. 시인은 이 손을 통해 <몸의 율법>,<편치볼을 치고 있는 이야기>, 플롯 속에서 잠시 반항할 수 있고 자의식을 해방시킬 수 있으며 ‘내가 나인지도 확신할 수 없는 밤에 건빵 봉지를 뜯었어 내가 내 살을 처연하게 뜯어 먹는 도시의 밤‘ , 가학적인 <건빵 먹는 밤 >스스로를 통제하거나 외부로 드러내게 하는 존재이다.
그녀의 억눌리고 제약적인 몸에 대한 저항은 어느 정도인지 느껴볼 수 있기를 바라며
끝으로 실체적인 몸과 대조적인 정신적인 몸 ‘허공에 지느러미를 퍼덕이며 배가 터지도록 세상의 온기를 퍼먹고 싶은 식욕이 슬픈 풍어 한 마리‘ 같은 그녀가 제 3시집에서는 그녀가 좀 더 자유롭기를 바란다.
지루하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