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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 조선 백성들, 참다못해 일어서다 ㅣ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 1
이이화 지음 / 교유서가 / 2020년 7월
평점 :

"역사는 기억해야 살아 있는 유산이 된다." -서문-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무엇일까?
정조의 죽음일까, 귀족들의 횡포일까 아니면
그때 있었던 일들의 역사적 나열들일까?
아마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백성이라고 불리는
'농민'이 왜 봉기를 일으켰는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처음 영남에서 일어나 호남에서 더욱 심해지고 호서 지방으로 번지고 있다." (P.52)
관리들이 농업 집산지를 선호했던 이유는 그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인맥과 뇌물을 통해 발령받은 이후 그들은 자신들이 쓴 만큼의 배로
걷어들이기 위해 수탈을 일삼는다.
그렇게 해서 농민들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직적이지 못한
농민들의 불길은 꺼지는 듯하다.
이후, 농민들의 불길은 활활 타오를 수 있을까?
"동학은 천주교마저 공인을 받아 선교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현실에서도
공인받지 못해 끊임없이 탄압을 받았다." (p.85)
기득권을 가진 자들은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
관직을 파는 행위들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그렇기에 그들이 몰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 생각할 수 있지만,
어쩌면 그들은 지금까지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1893년 보은과 원평에서 집회가 열린다.
그 중심에는 '척양척왜'의 정신이 있었으나, 두 집회는 하나가 되지 못한다.
각자의 요구 사항만 전한 채, 그렇게 해산한다.
이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등장한다.
북접과 남접,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동학은 왜 하나로 뭉치지 못했을까?
1894년 1월 첫 횃불을 든 고부 봉기
드디어 동학과 난민이 결합한 첫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었다.
고부 봉기를 시작으로 무장봉기 그리고
황토현 전투의 승리와 전주성의 점령까지.
그런 과정을 주시하고 정확히 파악한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인이었다.
첩자들을 통한 일본의 동학에 대한 주시는
우리나라의 지도층보다 훨씬 정확했다.
부정부패와 비리들 그리고 지도층들의 무능함을 탓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일제의 침탈 야욕은
어쩌면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전주화약과 폐정개혁안 그리고 집강소!
그렇게 농민들의 봉기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의 계획은 서서히 동학 농민군은 물론 조선을 압박해오고 있다.
지나온 역사에 대해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릴 때
우리는 어떠한 것에 근거하여 평가를 내려야 할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료를 가지고 평가할 때
어느 한쪽의 의견만을 고집해서는 안 됨은 물론이거니와
그 사료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필요할 것이다.
<이이화의 동학농민혁명사>는 사료에만 치중하지 않고,
동학 농민군들의 집회 장소와
전투가 벌어졌던 사진들과 현재의 사진들 그리고
그때 기록된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서
교과서로는 알 수 없는 사실들을 알려준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일본의 첩자들에 의해 기록된
일본이 바라보는 시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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