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역사 기행 - 한반도에서 시베리아까지, 5천 년 초원 문명을 걷다
강인욱 지음 / 민음사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지금껏 단편적으로만 제시되던 한국과 유라시아 초원의 교류를 고고학 증거를 통해 살펴보고, 그 교류에 대한 고고 역사학적인 담론의 단초를 제공하고자 하고 있다.

 1부에서는 기원전3500년경 말의 사용과 함께 등장한 유목 문화의 발달 과정과 그 성과가 4대 문명으로 전파되는 양상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데, 책에서 인도 아소카 왕 석주, 알타이 고원의 초가을 사진, 파지릭 문화의 남성 미라 사진, 알타이 우코크 고원의 만년설 사진 등 다양한 그림과 사진을 제공하여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2부에서는 시선을 동아시아로 돌려 '오랑캐'로 대표되는 중국 북방의 유목 민족들이 사실상 유라시아 초원 민족의 일파이며, 중원 문명이 형성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밝히고 있다. 책 내용 중 만리장성에 대한 얘기가 흥미로웠는데, 사실상 만리장성의 축조는 지극히 농경민다운 발상이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유목 민족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로써 실질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생각해 왔는데, 실제로 만리장성은 자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용도로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구조물이었다는 것이다. 즉 목초지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들이게 장성은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3부와 4부에서는 각각 신라와 고구려 역사에 숨은 초원과 교류 양상을 살펴보고 있는데, 여기서는 초원의 유목 제국과 국경을 접하고 그들과 협력하거나 갈등했던 고구려와, 유라시아 극단에서 초원의 문물을 수입하고 이를 국가발전에 이용한 신라를 통해 초원 문화가 한반도에 일률적으로 유입된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맞게 변형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는 그동안 궁금했던 천마도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수 있어서 좋았다. 신라 미술의 정수로 꼽히는 천마도는 본래 빛에 민감하고 잘 부스러지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졌는데, 천마도의 적외선 투시도에서 실제 유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이마 위 뿔이 선명하게 드러나 천마도에 그려진 동물이 말이 아닌 기린일 수도 있다는 논쟁이 일었다. 하지만, 천마도는 죽은 자를 싣고 저승길을 향해 가는 동물 옆에 묻힌 물건이니만큼 여기에 표현된 동물은 기린이 아니라 천마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5부에서는 고려와 조선, 나아가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초원과의 교류를 밝히고 있는데, 흔히 조선의 외교 하면 사대주의를 떠올리지만 조선은 국경을 접한 여진을 비롯하여 다양한 북방 민족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었다. 또 일제강점기에 등장한 한반도 북방문화설을 통해 한국과 초원의 교류가 일제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5부에서는 반구대 암각화에 대한 내용도 나오는데, 반구대 암각화를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하한 북방 초원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만든 것일 수도 있다는 추측을 하는 저자를 보면서 역사도 새로운 상상력을 통해 더 흥미롭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유라시아 초원 각지에서 발굴되는 고고학 자료를 여러 시각자료로 접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 동안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유목 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 악마 같은 심성 때문이 아니라 '교류와 소통에 익숙한 삶의 형태'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되어 그동안 상당히 왜곡된 사각으로 북방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해당 출판사로부터 리뷰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한국은 유라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작은 반도가 아니라 유라시아로 향하는 출발점이며 교류의 한 축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