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3 - 연산군에서 선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3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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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크 형식으로 역사를 이야기하는 『역사저널 그날』은 '역사와 이야기의 만남'이라는 형식으로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이 책은 프로그램의 대화형식을 그대로 가져다 놨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패널들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생동감이 넘친다.

 

  이 책의 시대는 연산군에서 선조까지로, “연산군의 몰락, 내시 김처선 죽던 날”, “중종, 강제 이혼당한 날”, “조선, 임꺽정과의 전쟁을 선포하다.”, “정철, 기축옥사 특검 되던 날”, “조선을 뒤흔든 교육열”, “83세 조선의 선비, 과거 급제하다”, “승정원일기, 조선의 역사를 깨우다”로 총 7 가지 제목으로 나뉜다.

 

  우선, 연산군 시대는 영화 “왕의 남자(2005년)”, “간신(2015년)” 등 상당히 자극적인 소재로 많은 작품의 주요 무대로 등장해 왔는데, 과연 연산군의 폭정은 어느 정도였을까? 역사상 폭군이었던 연산군은 강력한 권력을 사치나 유희 등의 말단적 행위에 탕진했다. 이 책에서는 그 예로 신언패(연산군 때에 관리들에게 말을 삼가도록 하기 위해 차게 한 패)의 도입, 김처선의 죽음, 금표(연산군이 사냥 유흥을 위해 세운 민간인 통제 구역) 지역의 확대, 3000명의 흥청과 운평을 거느리고 놀았던 인공 동산인 만세산, 희대의 요부 장녹수 등을 들고 있다. 정치적 암흑기였던 연산군 시대는 조선 최초로 신하들이 왕을 폐위시킨 중종반정이 일어나고 단 하룻밤의 반정으로 중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책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연산군의 폭정으로 인한 참담했던 시대상을 느낄 수 있었고, 당시 기록이 있는 사료와 참고 사진자료를 통해 그 시대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120여 명의 정국공신을 양산한 중종 시대는 어땠을까? 특히 이 파트에서는 패널 송웅섭 연구원의 말대로 생계형 국왕으로서의 중종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 있는데, 첫 왕비인 단경왕후 신씨가 폐위되고, 현실보다 원칙을 중요시 했던 조광조와 새로운 정치를 꿈꿨지만 신권을 강조하는 등 자신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여겨 그를 유배보내고, 이후 사약을 내린다. 또한 중종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으로 언급되는 경빈 박씨와 아들 복성군을 사사하고, 경빈 박씨를 제거하는데 앞장섰던 김안로를 쫓아내는 등 쓰고 버리는 형태로 정국을 유지한다. 이러한 형태로 중종은 직접 표면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무려 38년간 재위하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했다. 그동안 중종하면 드라마 대장금(실제 역사에서 대장금은 수라간과 관련된 기록이 없으며, 전형적인 의녀로 기록돼 있다.)에서 "맛이 좋구나"만 기억에 남는 그야말로 존재감 없는 모습만 연상해 왔는데, 그 이외에 비록 그 모습이 주로 비정하기는 했지만, 자신의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중종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흩어지면 백성이 되고, 모이면 도적이 되는” 시대상을 반영한 도적 임꺽정이 나온다, 이 주제에서도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는데, 우선 임꺽정의 이름은 “임거질정”이며, 임꺽정은 도축업이 아닌, 직업이 유기장(버들고리를 만드는 천민으로 고리백정이라고도 한다.)이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백정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임꺽정을 사람들이 의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뭘까? 패널 윤초롱 선생님의 얘기대로 민중들에게는 가혹한 현실이었으므로 나한테 피해를 줘도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이에게 더 큰 피해를 주면 본인의 편처럼 느껴지니, 임꺽정의 무리가 도적이 아니라 의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당시 병역제도(양인개병제)의 문제점, 방납의 폐단 등으로 피폐해진 민초들의 삶을 임꺽정을 통해 만날 수 있었으며, 사회적 혼란기의 시대상을 패널들의 대화와 사료를 통해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송강가사'라는 표현으로 일컬어질 만큼 뛰어난 문학가로 우리에게 더 익숙한 정철은 좌의정까지 오른 저명한 정치가이기도 했다. 정철은 뛰어난 문학적 감수성의 소유자였지만, 3년의 수사기간 동안 목숨을 잃은 사람만 1000여명이나 되는 조선 최대의 옥사, 기축옥사(정여립 역모 사건)에 수사 책임자(위관)로 임명되는데, 바로 이 기축옥사(1589)의 처리가 정철의 삶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특히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굉장히 시대를 앞선 급진적인 사상을 가졌던 정여립의 역모사건에 대한 문제제기, 기축옥사에서의 정철을 선조 대신 피를 묻힌 희생양으로 보는 새로운 시각 등이 새로웠다. 그리고 정철을 문학인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도 기억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

 

  조선 시대의 교육열과 과거제도를 살펴보면, 선비집안에서는 과거 준비를 위한 교육에 전념했고, 왕실에서는 원자가 태어나면 보양청을 설치하고, 4~5세가 되면 강학청을 설치해 교육하는 등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선비들의 암기비법으로는 경전을 소리 내어 읽는 성독을 들고 있고, 조선시대 과거시험에서 대과 초시에는 240명을 뽑았는데 인구수에 비례하여 지역별 할당제를 실시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원칙적으로 조선의 과거 시험은 누구나 응시할 수 있는 공평한 시험이었으므로 이는 조선의 과거제도가 지역균형과 능력주의를 절묘하게 혼합한 꽤 합리적인 제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신사임당의 아들 율곡 이이가 생원 초시와 복시, 문과 초시와 복시를 비롯한 9번의 시험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으로 불렸던 능력자였다는 사실이 흥미로웠고, 조선의 과거 급제가 개인의 입신양명뿐만 아니라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끝으로 『승정원일기』(국보 제303호, 2001년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조선 시대 승정원에서 국왕이 하루 동안 처리하는 정사의 내용과 국왕에게 보고하는 문서의 내용을 종합하여 일자별로 기록한 책으로 아직도 번역이 진행중이며, 100년은 지나야 완역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하니 그 분량이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승정원의 최고 책임자인 도승지는 왕의 측근에 있는 만큼 막강한 권력을 누렸으므로, 국왕권과 그 운명을 함께했다는 사실을 짐작해볼 수 있다. 특히 책에서 『조선왕조실록』은 "방송용 편집본"이고, 『승정원일기』는 "녹화본"이라고 비유했듯이, 『승정원일기』는 상소를 올린 1만 57명 유생의 이름을 전부 기록해 놓았을 정도로 굉장히 자세한 기록이었다. 비록 국정 관련 기록이기는 하지만 대화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패널 신병주 교수의 말씀대로 승정원일기가 완역되면 엄청난 양의 문화 콘텐츠를 얻게 되는 것이니 완역이 너무나 먼 얘기지만, 『승정원일기』의 완역이야말로 역사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하고 대단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역사에 대한 단편적인 사실만을 학습하다가 역사속 숨겨진 이야기를 생생하게 접하다 보니 한국사에 대한 관심이 더욱 깊어졌고, 역사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생긴 것 같아 아주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역사를 재미있게 접하고 싶은 분들께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역사는 단순한 사실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며, 때로 무기가 되고 거울이 된다.”

 

 

*해당 출판사로부터 리뷰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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