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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꼰대 - 꼰대가 쓴 '괜찮은 꼰대'에 관한 꼰대적 고찰
원호남 지음 / 바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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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이 어린 지인과의 대화도중 "아차~" 가던 말문을 멈춰버린다.
' 이런 말투... 누가 봐도 꼰대 아니냔 말이지 ...'
내가 언제부터 이런 고정과념과 권위적인 사고위에 서 있었던가, 스스로에게 자문하며 마땅한 대답을 뒤적여 본다.

부정하고 싶지만 나역시 위계질서와 서열문화 속에서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였고, 결혼과 출산, 자녀의 성장을 겪으며 자연스럽게 기성세대에 편입하고 있었나 보다.

가깝게는 직장상사, 혹은 부모님, 숱한 사회생활의 맺음으로 엮어진 상하 관계의 고리에서 답습하기 시작 했을지 모를, 고집스런 가치관과 이해의 부재...
이제, 꼰밍아웃 할 때가 왔군.

꽉막힌 벽을 대하듯 답답한 존재가 되어버린 꼰대란 꼬리표를 단 그들의 입장에 한 발 다가감으로 소통은 시작될 것이다.
작가는 기성세대와 밀레니얼세대 양측을 분주히 옮겨다니며 치우침 없이 변호하려 애를 쓴다.
그의 표현 마냥 긴호흡으로 이글을 써내려가기 전에 두세대가 아름답게 공존하는 방법을 오랜시간 고심했을 것이다.
꼰대란 나이나 지위에 상관 없이 누구도 될 수 있고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고 자신을 돌아볼 반성의 시간마저 이 곳에선 할애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지양하는, 꼰대라 칭하는 앞선 세대들의 모습이 결코 남이 아니라 우리였고 우리가 될거란 반전 같은 결말을 알려주는 작가는 서로 다른 삶 속에서 다양한 꼰대의 모습을 보여주며 왜, 어떻게 꼰대가 되어 갔는지 그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성적으로 평가 되던 10대의 어디쯤, 상사들의 폭력적인 말투에 상처 받았던 이십대에도,
상명하복의 이치가 고스란히 반영된 시월드 문화에 부적응 했던 30대...
사회 중요 구성원이된 지금의 40대에도 내 주변 곳곳에 여전히 꼰대들은 있어 왔다.

300페이지가 훌쩍 넘는 그의 글 속에 꼰대로 여겼던 그도 있었고, 나도 있었다.
좀 더 대화를 나누며 상대의 지나온 시간을 제대로 봣더라면...
그의 속내를, 진심을 오해하지 않았더라면 서로가 선을 긋고 등 돌리며 단절된 관계로 마침표를 찍진 않을수도 있었겠단 뒤늦은 후회를 해본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평형감을 유지하며 세상을 걸어가기란 수월치가 않다.
게다가, 자신을 객관화하고 반대편의 상반된 모습을 나인듯 들여다 보기란 더욱 어려운 일일것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며 작은 시도는 시작해 봐야겠다.
배려하고, 존중하고, 수용하려는 새로운 시선과 변화된 언어를 배워 나가다 보면 한계단 성숙한 내가 그곳에 있을것이다.
이 책은 부정적이고 부끄러운 존재가 된 소위 꼰대... 그들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지 않아 강하게 저항해온 이들에게, 또는 의지와 상관 없이 꼰대로 낙인찍인 기득권 세대들에게 꼰밍아웃할 용기를 던져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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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트 2 Medusa Collection 8
제프 롱 지음, 최필원 옮김 / 시작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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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정신이 부족해서 인지 아님 유약한 체력 때문인지 등산도, 수영도, 여행도 사실 경험이 전무한 편이다.

끽 해봤자 유년기에 수학 여행이란 타이틀 아래 의무적으로 임했던 여행이 고작 이였으니...

미디어를 통해 세계 곳곳, 처처를 잠깐 훑어 봤을 뿐인데도 심장을 뒤흔드는 아름다운 자연에 아쉬움이 커져가는 나에게 작가는 세계 도처를 제집 드나들듯 했으니... 한없는 부러움의 대상일수 밖에...

지리적 한계가 없는 그의 삶이 그의 모험심이 그를, 그리고 장대하고 폭넓은 이와 같은 글을 이끌어 낼 수 밖에 없었으리라.

 

미지의 자하세계, 육상과 바다의 신비가 하나, 둘 과학이란 이름으로 베일을 벗어가고 있고, 머지 않아 지하세계도 그 못지 않게 파헤쳐 지겠지만 가진 지식이 한정된 우리에게 상상하기 조차도 어려운 땅 아래의 모습을 추론만으로 이렇게 세세히 눈 앞에서 보여주듯 묘사 하기까진 보이지 않는 노력과 풍부한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어두운 지하세계와 태초부터 우리를 깊은 수렁으로 떨어뜨렸던 악과, 사탄의 어둠이, 재미를 더해 바쁜 가사일 와중에도 책에서 손을 떼기가 아쉬웠다.

세계 전체가 이 글의 무대가 되었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아님 새로운 변이로 탈바꿈하는 인간이란 피조물의 진화론적 단계들을 밟으며 결국 사탄은 우리 안에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늘 함께 였다는 결론은 쉽게 간주하기도, 소설적 허구일 뿐이라고 치부하기에도 뒤끝이 개운치 안은 공포를 심어준다.

 

사탄이란 먼 나라에 존재하는 나와는 연관성 적은 성서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대한 기업인 헬리오스는 자기만의 이기적 이익만을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생명을 담보로 사탄보다 더 악한 만행을 쉽사리 저지른다.

종교적 원론에 위배되는 진실들은 건재한 종교의 앞길을 위해 매장당하고, 사제들과 종교인들이 신의 믿음을 향한 바른 걸음에서 이탈해 모순 되게도 종교를 위한 종교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도 보여진다.

 

동이트는 새벽이 가장 밝은 까닭이 어둠을 헤치고 나오는 태양 때문이듯, 어려운 상황에서 이해가 어려운 과거와 현재를 포용하는 아이크와 앨리의 사랑이 숨막히듯 다가오는 죽음의 두려움과 어쩌면 세계의 종말이란 혼란에서 우리를 깨워준다.

사탄의 깨끗한 사멸을 기대한 것이 욕심 이였겠지만, 아이크와 앨리의 극적 지하세계의 탈출이 아직은 선이란 환환 빛이 우리를 더 가까이 감싸고 있음에 편히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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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1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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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초 세계1차대전 전후의 미국의 모습이 풍자적으로 그려진 열한편의 단편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는 '벤자민 버튼의 신간은 거꾸로 간다'는 2009년 새로운 출간과 더불어 영화화 되어 짐으로 해서 더욱 여러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되어질것 같다.

 

열한편의 단편들로 구성 되어져 있으면서로 서로 연관성이 전혀 없다고 보여지지 않는 배후의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그 시대의 결혼과 사랑 그들만의 삶의 모습이 단편적으로 나마 반영되어 있었고, 위대한 개츠비로 유명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엉뚱하고 남다른 시선이 느껴지는 글에선 장난기 가득한 그의 미소가 어렴풋이 그려지기도 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화자인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은 피동적이고, 사치스러우며, 단순하게 그려져 있어 그의 단순한 여성관 내지는 여성을 비하하거나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여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과 더불어 안타까움이 일었다.

또한 단편이란 장르가 가져 올수 밖에 없는 빠른 전개나, 조금은 설익은 스토리 전개로 인해 더욱 재미난 글이 됐을지도 모르는 '리트칼튼 호텔만큼 커다란 다이아몬드'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가 장편의 글로 스토리가 디테일하게 표현 되었더라면 하는 바램도 일순간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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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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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어줍잖은 동정심이였다고 밖엔 표현이 않되는...
한국장애인문화 협회와의 인연은 제작년 여름쯤이였던 걸로 기억된다.
아침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등교 시킬 때면 어김없이 마주치게 되는 '아름다운 학교'라는 문구가 옆구리에 커다랗게 쓰여져 있었던 통학차량...
그 곳의 투명한 창 넘어엔 너무도 해맑은 눈빛을 가진,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팠던 장애아들이 세상 구경을 하듯 여기 저기에 시선을 뿌리고 있었다.
아이 둘을 가진 엄마의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그 천사들의 불편한 장애를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음 하는 바램을 가지던 그때 마침 기회가 왔다.
박봉의 조건 때문인지 공석중인 자리에 간단한 제안서를 이메일로 제출 하곤 시작된, 장애인 협회 부산지부의 업무는 과다하게 많았고 아무런 체계가 없는 한마디로 허허벌판을 맨손으로 일구는 느낌이였다.
짧은 근무기간에 비해 많은 걸 얻고 돌아온 그때 내 안쓰런 맘과 그들에게 향했던 모성애는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성인으로서 품었던 눈 먼 사치일 뿐이라고...  나 자신을 책망하고 나무랬던 쓴 경험임을 지금에야 시인하며 돌이켜 본다.

  누군가의 신체적 장애를 이해 한다는건 그 입장에 처해 보지 않고선 논할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고, 가족도 가장 사랑하는 이 또한 결코 온전히 공감 할수 없는 그들만의 상처임을 인정해야 했다.
완전한 이해란 없다 완전한 이해를 채우려는 노력이 있을 뿐이다.

요시다 슈이치가 침묵을 통해 전하고자 한 이 글의 메세지는 과연 무엇이었을지 여러 각도의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청각장애를 가진 교코와의 단순한 이성적 사랑에의 어려움은 아닐 것이다.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따스한 손길을 바라는 것은 더 더욱 아닐것이고...
신체의 불편함은 그 자체로 일단락 되지만 마음의 장애는, 나 아닌 타인에 대한 이해의 장애는 과연 무엇으로 치유가 가능할까를 고민케 한다.

장애의 문제를 벗어나 상대가 처한 절박함을, 아품을, 극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이글에서 다룬 탈레반 정권이 아프카니스탄의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바미안 대불(佛大)을 폭파하는 어처구니가,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테러 당하는 상상하기 조차 끔찍한 과거가 반복 될 가능성은 날로 커질 것이다.

교코는 소리 대신 암기용 수첩에 자신의 맘을 실어 슌페이에게 사랑과 이해를 전하는듯 하나
긴 침묵 속에 혹은 한 음절의 대답으로, 과장되고 넘쳐나는 불필요한 감정들을 삭제 한채 진실로 다가서고 있다.
스물네시간 우리의 하루를 가득 메운 소리와 말들...
오늘 너와 나 사이에 오고 갔던 무수한 언어들이 상대를 왜곡 없이 받아들이고 나를 전하기에 충분한 것이였던가?
오히려 이해의 통행을 방해한, 상처의 도구는 아니였는지...

메쓰미디어에서 쏟아져 나오는 온갗 소리와 말들의 정보 속에, 내안에 들어찬 오래된 관념과 어리석게도 하나만을 고집하는 지식의 틀 속에 봉인 되어 이제껏 타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던건 아니였을까?

오직 나만의 이해를 구하는 일방통행의 길을 허물고 누구나 오고 갈 수 있는 넓은 대로를 설계하는 아름다운 고요의 시간을 이 책의 저자인 슈이치와 함께 가져봄은 어떨런지?!...


 

'요즘 세상에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게 직설적인 사람이 없으니까 불괘한 기분이 들 때가 더 많은 거야.'
' '당신은 귀가 들리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요' 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그렇게 쓴 메모를 보고, 나는 순순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늘 그런 소릴 들어. '당신은 귀가 불편하지만, 난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아요'라고들 하지.'
교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백퍼센트 이해했다고 하긴 어렵다. 그러나 교코가 전하고자 했던 감정만큼은 어쩐지 가슴 깊은 곳에 박혔다.

                                                                                            -사랑을 말해줘 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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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적뒤적 끼적끼적 : 김탁환의 독서열전 - 내 영혼을 뜨겁게 한 100권의 책에 관한 기록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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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이란 문학이 '완전히 없음'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는 마지막 보루..."
구비문학에서 유래되어 활자화된 현재의 문학세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시작을 지켜보며 김탁환님은 만인의 대학인 책이, 문학이 예견하기 힘든 탈바꿈을 가져올 것이란 우려의 한 단편으로 이 비평서를 끼적이게 되신건 아니신지...


감(感)하고 동(動)하신 100권의 책들을 한권씩 소개 받으며 다음장에 등장할 도서를 간보기에 앞서 조급한 설레임으로, 속히 그책을 직접 들여다 보고품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더디게 읽혀진 이 책은 앞으로도 독서의 갈증을 쉼 없이 부채질해 결국은 열거된 책들이 내 탁자 위에 놓였을때 해갈의 기쁨이 있으리라는 불길하면서도 기분좋은 예감을 떠안긴다.


작가란 직업은 단순히 어떤 관념이나 스토리를 글로써 전달하는 교량이란 일차원적인 틀을 넘어 다양하고 광범위한 삶의 총체적인 일부를 조금씩 이해시키는 작업인듯 하다.
책안에 담긴 글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여 감흥하면 그뿐 작가의 채취를 느끼려는 적극적인 시도는 거의 없었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김탁환님의 책읽기는 오감을 열고, 맘을 포개어 작가에게 가 닿는다.

 
쓰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작가의 업이 비평가에서 소설가의 길로 내딛게 하였을거라 짐작하며, 삶에서 직접 수혈한 언어들이 비평이든 소설이든 선생님의 글에서 빛나 공감의 문을 열어주니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할 따름이다.

 
낯선 분야의 도서엔 눈길을 돌렸고, 어려운 중국사나 고대적 이야기는 덮어 놓고 답답해 했었다.
독서에의 편식이 남다른 나에게 용기를 주는, 기회를 여는 책이 될것이다.
표지의 첫인상, 작가의 인지도, 출판일, 인쇄 횟수, 작가 약력이나 기존에 집필된 저서가 도서 선택에 큰 영향력을 미쳤던 이제 까지의 내 무지를 오늘에야 뒤돌아 보게 된다.
 

시중에 널린 연애소설을 폄하 하는것은 아니지만 좀 더 미래지향적이고 문제의식을 담아낸 역사서의 출현을 갈망하는 부분이나, 한국 법 제도에 맞는 법정소설의 탄생, 혹은 현실의 정치, 경제, 남북분열이라는 민족의 숙제를 직석절이고 체계적으로 풀어낼 우리만의 과제도 현명한 작가의 글에 담기기를 원하시던 모습이 베스트셀러로 일약 인기와 부를 축적하려는 작가들의 얕음을  누그려뜨려 주는듯 시원하고 한편 든든하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정독 시키시는 폴 오스터의 '빵 굽는 타자기" 를 어서 먼저 읽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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