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의 신
아룬다티 로이 지음, 황보석 옮김 / 문이당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음 읽었을 땐 끈적끈적하고 악취나는 삶의 모습들이 짜증나고 지칠줄 모르는 언어구사가 구슬이 잔뜩달린 머리 두건처럼 거추장스러웠다. 책 뒷 표지를 장식한 각 언론사들의 극찬이 이해할 수 없었고 번역의 문제인가 오해하기도 했었다.

이제 다시 읽은 지금 여전히 삶은 때로 악취가 나고 한 여름의 오후처럼 끈적거리는 불쾌감, 더위와 습기들로 가득차있지만 깊은 연못의 진초록처럼 어쩔 수 없이 푸르고 푸르기에 애잔하고 눈물 겨우며 안아주고 싶다.

 

 

그녀의 하나뿐인 소설은 독특하고 신비로우며 실험적인 언어들의 민속춤이다 . 이를테면 내가 키보드를 치고 있는 이 손가락은 25년 전 어머니의 자궁을 뚫고 나와 처음 세상에 손짓하던 첫 대사였으며, 초등학교 2학년 때 시험에서 5개 틀렸다고 아버지께 매를 맞아야 했던 지금도 그렇고 그 당시에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체벌의 피해자였으며, 사진을 찍을때나 중요한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방랑자이며, 어느 한 순간 낯선 타인의 따뜻한 감촉을 못잊어 그리워하는 연인이며, 알 수 없는 미래에 육체가 생을 다한 후 가슴위에 살포시 올리워져 마지막 영혼의 고동소리를 느낄 최후의 동반자이다. [타임]지의 표현대로'패러디와 반복과 놀라운 비유가 돋보이는 그녀의 산문은 연인의 얼굴처럼 기억에 남을 만하다.' 그녀의 머리 속에서는 어떤 것들이 흘러 넘치기에 이런 이야기들을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 그녀의 언어는 깊은 연못에 홀로 핀 붉은 연꽃처럼 선명하고 화려하나 긴장되며 애처롭다.

 

 

러브인 도쿄의 분수머리와 노란 공항드레스의 라헬과 뾰족한 베이지색 구두와 부풀린 머리의 에스타 대사, 그들 이란성 쌍둥이의 어머니이자 여인인 아무, 그리고 그들의, 작은 것들의 신-벨루타.

누구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 그러나 현실이기에 TV드라마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었던 아예메넴의 자식들. 사람이 그러하듯 완벽하게 선하지도 악하지도 못해서, 운명이 늘 우리의 편이 아니기에 부적절한 순간에 만나고 더욱 부적절한 순간에 엇갈려서, 짧게 행복하고 오랫동안 슬퍼해야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사람들... 모두 연약한 한낱 인간일뿐인데 나는 어째서 유독 '막내코차마'에게만은 너그러울 순 없는지. 인생이란 복잡하게 맞물려있는 수레바퀴와 같아 하나만 고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닌 줄 알면서도 '막내코차마'가 이때 이러했으면 최소한 마지막에 저러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들에게 너무 깊게 감정이입을 해서였을까?  

 

 

이야기를 서술하는 언어와 달리 이야기는 진실되고 사실적이기에 매력적이나 가까이하고 싶지 않고 막상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소설이다. 세번째 읽게 되면 또 어떤 감상들을 털어놓게 될런지... 그러나 이 책을 다시 잡기까지는 시간보다 오랜 망설임이 있을 것 같다. TV 드라마의 뻔한 통속성을 알면서도 보게 되는 것은 그래도 마지막에는 다 잘되리라는 기분 나쁘지 않은 안도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TV 드라마의 엔딩처럼 가장 행복한 순간에 끝을 맺을 수 없기에 그 한 순간에 기쁨을 오랜 시간 아픔을 동반한 채 추억해야 한다. 지금 '아비 없는 불운한 후레자식들, 관대한 묵인 하에 살아가는 반쪽 힌두교도 잡종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내가 '늙지도 젊지도 않은, 그러나 살 수도 죽을 수도 있는 나이'가 되면 나는 세상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무척 더운 여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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