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하여 알고싶은 두세 가지 것들
구회영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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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귀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많이 보게 되면 될수록, 더 좋아하게 되면 될수록 영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사실 재미있는 영화나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사람은 없겠지만 수없이 많은 사람을 사귀는 재미만큼이나 다양한 영화를 경험하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기 어려운, 열병에 걸리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은 것 같다. 나는 유독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고 또 영화의 세계에 빠지기 시작한 열혈 영화광 소녀(?)다.

사람을 만나고 말 붙이는 데는 천성적으로 거리낌이 없는 편이라 난관(?)이랄 것이 없지만 독학으로 영화를 조금이나마 공부하고자 하니 그닥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전문적인 교육 기관에서 배우는 방법은 있지만 경제적 여건상 독학으로 버틸 수밖에 없을 때 책을 사서 보는 것이 한가닥 희망인데 서점가에는 썩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요즘엔 영화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어서 영화 관련 서적이 많이 쏟아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부분 소설가들이나 수필가들의 가벼운 에세이류의 글이나 아직 실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소원하기만 한 전문 서적들뿐이었다.

그런 차에 이번에 읽은 이 책은 나같은 영화광들을 위한 영화 입문서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책이 아닌가 싶다. 이 책에는 헐리우드 영화는 물론 (헐리우드 안에서도 80년대와 90년대를 대조하고 그 안에서 헐리우드 상업주의 영화 산업과 전면 또는 단독으로 싸웠던 많은 작가 영화와 인디 영화의 걸작들도 소개되어 있다.) 영화 이론, 영화사, 장르 영화, 낯설은 제 3세계 영화, 우리에게 정서적으로 친근한 홍콩 영화, 이색적인 컬트 무비, 우리 시대의 진정한 대가들의 영화까지 일목요연하게 나열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자 나를 흥분시켰던 것은 소문만으로만 듣던 걸작 영화 리스트들과 비디오 출시작에 대한 안내들이다. 영화광으로선 꼭 봐야될 영화들과 왜 걸작인지를 설명하는 코멘트들은 나로서는 읽는 것만으로도 야릇한 흥분을 자아내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묘미를 즐기는 참뜻은 물론 소위 걸작들로 불려지는 좋은 영화, 훌륭한 영화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가치 판단을 매길 수 있음에 있다. 그래서 앞으로 영화를 볼 때 자기만의 비평관과 안목을 가질 수 있고 영화 선정에도 대단한 수준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요즘 우리 영화들이 극장에서 잘 나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흥행면에서만이 아니라 수준 높은 작품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나와 같은 영상 세대는 점점 영화 장르에 매료될 것이고 조만간 지금보다 더 큰 영화 산업의 붐을 우리 세대가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허나 나의 경우처럼 영화판으로 뛰어드는 길은 좁고 잘 보이지도 않는 것 같다. 이런 와중에 내가 만난 이 책은 내게 단물과도 같다. 앞으론 더 난해한 책을 읽을 테지만 열혈 영화광에게 이보다 더 좋은 입문서는 없을 것 같다. 영화광들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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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렇게 보면 두배로 재미있다
김익상 지음 / 들녘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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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전 100년의 역사를 채운 영화가 이제 남녀노소를 불문한 대중 문화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산업이자 동시에 예술로서의 영화는 다른 예술이나 엔터테이먼트 산업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속성장과 대중을 장악하는 막대한 영향력을 일찍이 손에 넣은,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유일한 장르가 되었다. 이에 따라 몇 년 전부터 영화관련 서적들이 봇물처럼 출판되는 것도 별다른 기현상은 아니었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전문적인 영화 관련 서적이 번역 출판되기 보다는 대부분 비전문적인 일반 독자들을 위한 비전문가들의 에세이나, 평론가들이라도 쉬운 해설서 수준의 책들만이 구매력을 갖출 수 있었던 상품이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영화 열기를 감안한다면 전문적인 책들이 보다 많이 팔렸으면 하지만 실제로는 거품이 아닌가 하는 인상이 들 정도로 가벼운 책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중 내가 본 책들 중에는 작가들이 쓴 것들, 이제하와 하재봉 등의 에세이 형식의 글과 전문 평론가들이 쓴 역시 비슷한 형식의 글들이었는데, 전자가 인기가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후자 쪽에서 내가 들춘 이 책은 처음 목차만을 훑어봤을 땐 별 읽을 건덕지가 없을 거라고 단정지었던 책이었다. 허나 30페이지 가량을 읽었을 땐 여러 군데서 눈길을 끄는 알맹이들이 발견되었다.

이 책은 열 명의 감독을 선정하여 그에 따라 열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저자가 얘기한대로 고작 열 명의 감독을 간략하게 살피는 것만으로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는 없는 것이지만 실상 내용은 그렇게 빈약하지 않았다. 우선 선정된 감독들이 헐리우드 유명 상업 감독에서부터 헐리우드 내 사회적 영화와 프랑스의 예술 영화, 이름만 들었던 거장의 위대한 영화, 그리고 한국의 영화까지 영화 세계의 주류들을 인물로서 요약적으로 대치시켰다.

이런 요약화 과정에서 빠진 부분들, 예를 들면 B급 영화들과 컬트 영화 등에 대해서도 손을 뻗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이것은 내가 가장 흡족해 한 부분인데, 기본적인 영화 이론들 즉 미장센이나 삽입화면, 컷, 집팬 등의 편집 기법, 피사체와 카메라 간의 각도에 따른 연출기법과 카메라기법들을 그림 해설과 실제 영화 스틸 사진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 놓았다.

대부분의 전문적인 책들이 여러 영화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분류시키고 원리 해설과 어려운 정의만 열거한 나머지 딱딱하게 여겨졌었는데 이 책은 영화 감독들의 성장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그 사이사이 조미료처럼 영화 상식과 알찬 이론들을 적절히 첨가해 시종 재미있고 알기 쉽게 이끌어간 점이 이채로웠다. 다시 말해 영화 원리와 이론, 기술 등을 친근한 영화 감독들의 이야기 형식 속에 짜임새 있게 구성한 책인 것이다.

개인적으론 영화 역사의 흐름을 전반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역사적 안목에 대한 배려에도 저자가 신경을 좀 써 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 책만의 특이하면서 잘 짜여진 구성을 생각한다면 조금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 싶다. 다음엔 저자가 좀더 수준 높은, 역시 지식만이 아닌 이야기들을 함께 엮은 책을 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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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 지음 / 창비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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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넘어선 신현림에게도 필시 숨길 수 없는 잔주름들이 실밥처럼 얼굴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이십 대 내내 방황하였는지, 서른 살에 시단에 얼굴을 내민 그녀는 어언 10년의 작가 경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동안 단 두 권의 시집과 이 책만을 세상에 올린 과작의 작가이다. 조금 늦게 출발하였다면 욕심이 많을 법한데 여유를 아는 조숙함을 읽지 체득하였던 탓일까, 그녀는 지금도 서두르는 법이 없이 시보다는 사진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를 아는 늦깍이 학생이다.

오래전 <세기말 블루스>라는 탐미적이고 감각적인 시집을 읽었을 때 나는 신현림을 그즈음 유행하던 철학은 없이 세기말적인 분위기에만 젖어 절망을 흉내내는 부류들에 반쯤(?) 다리를 걸친 시인으로 보았었다. 지금에 와선 그 시집의 끝간데 없이 서글프면서도 무언가에 집착하던 탐미적인 더듬이들이 그녀의 본성에 가까운 것이자 삶 자체였음을 이 책에 보고 알게 되었다.

그렇게 첫인상의 오해를 풀게 해준 이 책에는 그녀가 사랑하는 (사랑한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임을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많은 사진들과 글들이 섬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20대의 젊은 시절을 애닳게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신현림은 한 장과 사진과 때로는 한 편의 시를 어울리게 붙여 놓고, 거기에 녹아있는 예술가들의 말못할 고독과 지치지 않는 예술혼의 열망들과 예술에의 천착으로 내팽겨쳐진 쓰라린 삶과 그 남루한 삶을 견뎌온 거칠은 손마디를 그럼에도 붙잡는 체온에 대해서 자신의 지난날 일기처럼 나지막이 읊조린다.

이 책의 마음을 사무치게 하는 아롱거리는 무늬들은 그녀가 사랑하는 사진과 글과 잊지 못할 예술가들 때문이 아니라, 젊은 날 바로 그것들이 등대처럼 자신을 이끌던 것에의 향수를 안고 촛불 하나에 의지하는 이의 마음처럼 사진 한 장에, 한 편의 시에, 전해져오는 한 예술가의 생애에 기대어 자신의 삶에 대한 애한을 글 마디마디에 투영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신현림이라는 한 시인이 과거 무엇을 목메이게 사랑하였고 어떻게 나이를 먹었으며 어찌하여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이것은 한 시인의 사진첩과도 같다. 그 사진첩 속에는 비록 자신의 사진이란 단 한 장도 없지만(표지에는 햇빛을 받지 못한 식물 같은 사진이 단 한 장 있다.) 자신이 사랑하였던 예술 작품들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노라는 진정 어린 고백의 글들이 사진보다 더 명징한 증언들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사진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에 가깝지만 어디선가 본듯하거나 본 적이 있는 사진들을 상당수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내가 별 감동없이 지나쳤던 사진들, 그리고 거의 잊고 지냈던 기형도의 시들이나 장 그르니에, 카프카, 도스또예프스키, 미시마 유키오 등의 작가들을 누군가는 이렇게 애타게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이, 나는 까닭 없이 서글펐다.

몇 일은 선명하게 뇌리 속에 남을 듯한 강렬한 이미지의 사진들이 무려 123장이나 실린 이 책은 사진집으로도 충분히 소장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알지 못했던 미지의 아름다운 시들과 명상이 담긴 글들이 보태어져 있으니 두고두고 깊은 맛을 우러낼 수 있는 책으로도 값어치가 충분할 듯 하다. 이건 사족이지만 내게도 이런 사진첩이 하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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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 120일
D.A.F. 사드 지음 / 고도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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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디즘'의 어원이 된 전설적인 작가 사드, 조금이라도 인문학 쪽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이 이름을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지만 정작 사드의 작품을 읽은 이는 드물다. 출판된 그의 작품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90년초 사드의 몇 작품이 출판되었으나 외설성 문제로 곧 시중에서 회수되고 말았다. 그런 차에 작년에 드디어 다시 출판된 이 책은 비단 우리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가 근 200년 동안 억압하고 감금시킨 작품이라는 점에서 나로서는 호기심만으로도 충분히 일독하고 싶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었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악마적인 금서 중 하나일 것인 사드의 <소돔 120일>은 솔직히 읽기가 두려운 소설이다. 행여 700페이지에 다다르는 방대한 이 소설을 하드 코어 포르노그라피나 하드고어 영화 정도로 선이해하고 읽는다면 분명 중도에 독서를 포기하게 된다. 그런 하위 영상 문화에 익숙하다면 분명 충격의 강도야 덜하겠지만 그럼에도 단시간에 완독하고자 할 땐 어느 정도의 만용이 요구됨을 부인할 수 없다.

46명의 사람들이 깊은 산 속의 폐쇄된 성에 120일 동안 은둔하면서 온갖 방탕한 쾌락의 행위를 일삼기 시작하여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육체에 잔혹한 고통을 주는 폭력, 처형, 살인으로 치닫고 마지막날 성에서 빠져나올 때는 16명만 남는 이 끔찍하고 기이한 이야기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것은 단지 가장 악마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르도록 한 기록적인 이야기일 뿐일까. 참을 수 없는 구토를 일으키게 하는 언어란 모든 금기에 대한 도전의 한낱 도구였을까. 소설의 배경은 하얀 눈으로 뒤덮이고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되고 폐쇄된 성이다. 이 설원의 공간은 인간이 욕망을 무한대로 배출하고 추구할 수 있는 유토피아를 연상시킨다. 이 백지에 사드는 모든 것을 담으려는 욕망과 그 욕망의 추구 방식이자 기술 방식을 형식적으로 구현해낸다.

사드에게 강박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적 욕망이 아니라 그것 자체를 포함한 작품 속 인물들의 욕망과 행위들을 어떻게 모두 분류하고 위치지을까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이 여느 소설과 다른 점은 이런 태도에서의 기술방식이다. 소설은 크게 한 달을 기준으로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 제하에 각각 백여가지 이상의 에피소드를 번호를 붙여 기술해놓았다. 그리고 서술 부분에는 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전경화시키고 성의 구조와 인물들이 기거하는 방에 대해서까지 첨가하고 마지막으로 모든 정보를 자세히 요약하여 주는 배려에도 주의를 기울인다. 사드는 인간의 모든 욕망과 욕망행위를 분류하고 정보화시켜 그것을 전달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기술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18세기 서구에서 유행했던 백과사전파 철학자들의 사상을 연상시키는 백과사전식 기술방식이다.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진리의 완전한 체계를 구현해내겠다는 이성 중심주의 사유를 추구하던 백과사전파 철학자들과 동시대인이었던 사드는 그 세계관을 문학의 영역에서 극단으로 추구하였다. 코기토가 근대의 역사를 연 직후 이성에의 신뢰가 인간이 역으로 이성의 도구가 되도록 맹신되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이성 중심주의 세계관이 극단적으로 추구된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파시즘이었고 그로 인해 발발한 세계 대전은, 인간성을 구현해야될 근대적 이성이 인간을 무참히 학살하는 모순된 상황의 현실화였다. 이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 이른바 지금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드는 그 역사와 사상사의 통로이자 경계에 자리잡은 기이한 작가이다.

사드는 18세기의 계몽주의자였지만 계몽주의의 한계를 당대에서 이미 깨우친 사람이었다. 사드의 <소돔 120일>은 모든 욕망을 기술하겠다는 극단의 계몽주의적 욕망을 실현한 작품이자, 동시에 그 이야기란, 형상이란 곧 괴물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이성의 한계와 몰락이 전쟁의 역사 속에 실현되기 전에 그는 인간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고 이기와 쾌락을 위해 살인을 하는 끔찍한 이야기를 예언하듯 적어놓은 것이다. 이것은 한 번 읽은 후엔 다시 읽을 수 없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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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유럽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
조셉 폰타나 지음, 김원중 옮김 / 새물결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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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자기 동일성을 규정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는 점에서 조셉 폰타나가 서구 합리주의적 이성이 결국 자기 합리화적 이성에 지나지 않음에 대한 은유적 기제로서 아홉 개의 거울을 배치한 것은 아주 적절하게 여겨진다. 계몽주의와 민족주의를 동력으로 우리가 그토록 동경해마지 않았던 근대화의 모델로서 서구, 곧 유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산업 혁명 시대의 광휘를 잃고 쇠락하기 시작하여 급기야 유럽 통합이라는 전무후무한 기획을 통해 새로운 힘을 스스로 자구하려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실 서구의 근대성에 대한 회의는 이제 새삼스러운 상식에 속한다. 일찍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푸코에 의해 광기의 역사로 그 전모가 드러난 유럽의 역사와 그 이론을 다시금 계승하려는 시도는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유럽 중심주의적 세계사 서술은 하나둘 폐기처분될 운명에 놓여 있으며 변방으로 치부되던 다수의 민족과 국가는 세계사 속에 자국의 역사를 단순히 삽입하는 수준을 벗어나 자국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새롭게 받아들이고 재편성해낼 수 있는 성숙한 역량을 갖추는 위치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 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거니와, 때문에 유럽 역사가들의 과거 자기 합리화적 역사관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은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조셉 폰타나는 그러한 관점에 선 역사가이다. 그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이분법적 관념들, 예를 들어 선과 악, 이성과 광기, 문명과 야만, 기독교와 이단, 진보와 미개 등의 관념들이 완전한 허위에 지나지 않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악마, 광기, 야만, 미개, 이단 등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유럽인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기들의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거울 - 개념들일뿐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서구의 역사는 이 일그러진 거울에 비춰진 유령의 집임을 그는 반성적으로 파헤친다. 유럽인으로서의 그의 이 유령의 집에 갇힌 유럽 역사에 대한 반성은 뿌리까지 캐내고 마는 상당히 치밀한 것이어서 노베르트 엘리아스 등이 16-17세기에 형성된 유럽의 이성 중심주의적 근대성에서 역사 서술의 폐단을 찾으려는 것과는 달리 이미 그리스 시대 때부터 유럽인들에게는 자기 합리화적인 세계관이 뿌리 박혀 있었음을 그는 증명하고 있다.

데카르트가 발견하고 칸트에 의해 이미 그 비극적 결말이 예견된 배타적이며 자기 합리화적인 근대 이성에 대한 회의적인 논의들을 읽는 건 솔직히 조금 지루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이 책이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게 잘 읽히는 것은 우선은 앞서 말한 서구의 자기 합리화적인 이성의 뿌리가 서구인들의 어떤 본래적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채로우면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견해가 일단은 흥미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이 논의의 가장 중요한 핵을 이루고 이루어서 알맹이가 없는 이와 유사한 동어반복의 저작은 아니게 되었다. 게다가 '거울'이라는 사물을 은유적 기제로 활용하여 일반 대중이 접해도 그 핵심은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이 읽는 맛을 또한 당기고 있다.

장점을 한 가지 더 들라면 유럽의 근대성에 대한 회의가 이론적 논의에만 급급하지 않고 아예 유럽 역사 전체를 상대로 고고학적 수준의 탐색(고대 상형 문자는 물론 각 시대마다 수많은 그림과 지도, 도표들이 자료로 제시되어 있다)을 감행하여 치밀한 역사 읽기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료를 꼼꼼하게 읽는 노고를 무릅쓴다면 우리는 이 작은 책을 통해서 유럽 역사 전부를 바로 등뒤에서 바짝 추적하게 되는 실감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책은 진정한 값어치는 유럽 역사의 영광과 업적, 치부와 죄악을 냉철하게 되돌아보며 엄밀한 자기 반성을 꾀하여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만에서 물러나 어떻게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하려 하는지, 그 신랄하고도 정직한 자기 대면을 목도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왜곡된 채 받아들여진 '잘못된' 유럽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날 것이며 아울러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찾아내어야할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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