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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유럽 ㅣ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
조셉 폰타나 지음, 김원중 옮김 / 새물결 / 2000년 10월
평점 :
거울은 자기 동일성을 규정하는 가장 훌륭한 도구라는 점에서 조셉 폰타나가 서구 합리주의적 이성이 결국 자기 합리화적 이성에 지나지 않음에 대한 은유적 기제로서 아홉 개의 거울을 배치한 것은 아주 적절하게 여겨진다. 계몽주의와 민족주의를 동력으로 우리가 그토록 동경해마지 않았던 근대화의 모델로서 서구, 곧 유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산업 혁명 시대의 광휘를 잃고 쇠락하기 시작하여 급기야 유럽 통합이라는 전무후무한 기획을 통해 새로운 힘을 스스로 자구하려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사실 서구의 근대성에 대한 회의는 이제 새삼스러운 상식에 속한다. 일찍이 프랑스의 사회학자 푸코에 의해 광기의 역사로 그 전모가 드러난 유럽의 역사와 그 이론을 다시금 계승하려는 시도는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유럽 중심주의적 세계사 서술은 하나둘 폐기처분될 운명에 놓여 있으며 변방으로 치부되던 다수의 민족과 국가는 세계사 속에 자국의 역사를 단순히 삽입하는 수준을 벗어나 자국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새롭게 받아들이고 재편성해낼 수 있는 성숙한 역량을 갖추는 위치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 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거니와, 때문에 유럽 역사가들의 과거 자기 합리화적 역사관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은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조셉 폰타나는 그러한 관점에 선 역사가이다. 그는 우리가 당연시하는 이분법적 관념들, 예를 들어 선과 악, 이성과 광기, 문명과 야만, 기독교와 이단, 진보와 미개 등의 관념들이 완전한 허위에 지나지 않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악마, 광기, 야만, 미개, 이단 등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유럽인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기들의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거울 - 개념들일뿐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서구의 역사는 이 일그러진 거울에 비춰진 유령의 집임을 그는 반성적으로 파헤친다. 유럽인으로서의 그의 이 유령의 집에 갇힌 유럽 역사에 대한 반성은 뿌리까지 캐내고 마는 상당히 치밀한 것이어서 노베르트 엘리아스 등이 16-17세기에 형성된 유럽의 이성 중심주의적 근대성에서 역사 서술의 폐단을 찾으려는 것과는 달리 이미 그리스 시대 때부터 유럽인들에게는 자기 합리화적인 세계관이 뿌리 박혀 있었음을 그는 증명하고 있다.
데카르트가 발견하고 칸트에 의해 이미 그 비극적 결말이 예견된 배타적이며 자기 합리화적인 근대 이성에 대한 회의적인 논의들을 읽는 건 솔직히 조금 지루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이 책이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게 잘 읽히는 것은 우선은 앞서 말한 서구의 자기 합리화적인 이성의 뿌리가 서구인들의 어떤 본래적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이채로우면서 상당히 설득력 있는 견해가 일단은 흥미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이 논의의 가장 중요한 핵을 이루고 이루어서 알맹이가 없는 이와 유사한 동어반복의 저작은 아니게 되었다. 게다가 '거울'이라는 사물을 은유적 기제로 활용하여 일반 대중이 접해도 그 핵심은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이 읽는 맛을 또한 당기고 있다.
장점을 한 가지 더 들라면 유럽의 근대성에 대한 회의가 이론적 논의에만 급급하지 않고 아예 유럽 역사 전체를 상대로 고고학적 수준의 탐색(고대 상형 문자는 물론 각 시대마다 수많은 그림과 지도, 도표들이 자료로 제시되어 있다)을 감행하여 치밀한 역사 읽기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료를 꼼꼼하게 읽는 노고를 무릅쓴다면 우리는 이 작은 책을 통해서 유럽 역사 전부를 바로 등뒤에서 바짝 추적하게 되는 실감나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 책은 진정한 값어치는 유럽 역사의 영광과 업적, 치부와 죄악을 냉철하게 되돌아보며 엄밀한 자기 반성을 꾀하여 유럽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만에서 물러나 어떻게 새로운 정체성을 정립하려 하는지, 그 신랄하고도 정직한 자기 대면을 목도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근대화 과정에서 왜곡된 채 받아들여진 '잘못된' 유럽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날 것이며 아울러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찾아내어야할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