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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아들
데니스 존슨 지음, 박아람 옮김 / 기이프레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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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존슨 <예수의 아들> 수록작 <응급실>과 비틀즈 <Rocky Raccoon>에 관하여 쓴 서평)

종로구의 한 서점에서 <예수의 아들>을 새로 샀습니다. 그리고 그날 귀가하여 담배를 피는데 너구리를 봤어요. 너구리를 본 기념으로 <Rocky Raccoon>을 들었죠.. 그리고 방 안에 앉아 <응급실>을 읽으며 이 모든 연결고리 속에서 잡힐 듯 말 듯 떠다니는 은혜로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Rocky Raccoon>*의 이야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로키의 여자친구 낸시가 댄이라는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로키는 댄에게 눈가를 얻어맞습니다. 분노한 로키는 복수를 하기 위해 동네 술집에 방을 잡습니다. Rocky는 그곳에서 '기드온 성경'을 발견하고 댄과 낸시의 방으로 쳐들어가지만, 오히려 총을 맞고 옵니다. 그리고 의사 로버트 가 등장합니다. 술 냄새를 풍기며 등장하는 로버트 씨는, 전형적인 치료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 총상이 그저 "스친 것"일 뿐이라 주장하는 로키도, 뚱땅거리는 곡조도, 술에 취한 의사도 모두 이 상황이 별것이 아니라는 듯 우스꽝스럽게 이야기하죠. 왜인지 <응급실>이 겹쳐보이기 시작합니다그리고 로키는, 방에 놓은 기드온 성경을 보고 "기드온 씨가 체크아웃 하면서 나를 위해 이 성경을 두고 갔구나" 생각하며, 기드온의 성경을 본인이 무사히 회복할 징조라 여깁니다. (기드온 ''의 성경을 기드온 '씨'의 성경인 것처럼 표현한 말장난입니다.)


  저는 기드온 성경을 보며 '복음의 무료배포'에 대해 계속 곱씹게 됩니다. 누군가에게 특별히 선택되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곳곳에 놓여 있는 복음. 누가 필요로 할지, 누가 그것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상태로. 그러나 누군가 발견하는 순간, 그 사람에게 구원으로 다가올 수 있는 복음. <응급실>의 세계와 비슷하지 않나요? 체계적으로 구원을 베푸는 것이 아닌 세계, 사람들은 우연히 만나고, 몸에 손을 대고, 죽음 속에서 생명이 발견되고.. 이 두 작품에서 구원은 묘한 방식으로 발생합니다. 누군가가 구원하려고 해서 구원되는 거시 아닌, 우연히 도착한 구원.

  응급실은 가장 위급한 환자들이 모이는 곳이죠. 사람의 아픔과 죽음이 당연히 가장 심각하게 다뤄져야만 할 것 같고요. 그런데 데니스 존슨의 응급실에서는 환자도, 의사도, 조지도 그렇지 않습니다. 치료자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 바로 그 조지가 환자의 몸에서 칼을 뽑아낼 때 일어나는 이상한 역전. 자신이 치료한 환자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조지가 치료해버리는 일. 이 순간부터 저는 의사의 이러한이 치유로 이어지는, 은총을 인지하는 '앎'으로 곧잘 이어지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의사는 환자의 병을 진단합니다. 환자의 몸을 검사하고, 병명을 붙이고,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를 판단합니다. 누구보다 환자를 '알아야 하는' 사람이죠. 그런데 두 작품에서 치료자의 앎은 치유와 이상하게 어긋납니다. 이 어긋남 속에서 다소 엉뚱하고 우연한 방식으로 구원이 발생합니다. 물론 그것을엉뚱하고 우연한 방식이라고 부르는 것 역시 인간적인 명명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 과정의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부르는 것일 테니까요. 복음은 이해되어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은 채 전달될 수도 있다는 것.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명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경험하지 않은 것은 아닐 테니..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너구리를 봤습니다. 그 너구리 때문에 〈Rocky Raccoon〉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Rocky 때문에 〈응급실〉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던 하나의 우연이었습니다.

  <Rocky Raccoon> <응급실> 두 작품에서, 아니 <예수의 아들>을 읽는 이들에게 계속 반복되는 것도 바로 그런 우연이 아닐까요. 누군가를 구하려고 하지 않았는데 구원이 발생하고, 소설을 통해 복음을 찾으려 하지 않았는데 종교적 체험이 일어나고, 누군가를 위해 놓아둔 것이 아닌 성경이 누군가에게는 회복의 믿음을 줍니다.


  과연 누가 우리를 치유하고 구원하나요? 의사일까요? 신일까요?? 조지일까요? 아니면 기드온 성경일까요? 아니면 그냥 우연일까요? 은총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이미 곳곳에 배포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누가 받을지, 필요로 할지, 도리어 죽음을 초래할지, 처음부터 누구를 향한 것이었는지조차 알 수 없지만, 누군가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비로소 그 사람에게 도착하는 것. <예수의 아들>을 처음 읽은 순간에 느꼈던 설명할 수 없는 경외심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나 어쩌면 굉장히 종교적인 사람이 아닐까" 연신 생각했지만 그 기원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이런 체험을 한 독자들이 더러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조지도, 호텔방에 놓인 성경도, <예수의 아들>도 어쩌면 그렇지 않을까요. 은총은 그것을 이해하거나 소유하려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우연히 통과한 사람에게 도착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소설 속 은총도 그렇게 배포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은총의 무료 배포,

아무 이유 없이,

누구의 소유도 아닌 채,

우리가 그것을 은총이라 일컫기 전부터


 

*폴매카트니는 1965년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해 떨어져 입술이 찢어지게 되는데, 이때 친구가 부른 의사가 진 냄새를 풀풀 풍기며(Stinking of Gin) 등장해, 마취제도 없이 스카치 위스키를 마시며 입술을 꼬맸다고 한다. (https://www.beatlesbible.com/songs/rocky-raccoon)


**히브리어로을 뜻하는 דַּעַת(daʿat, 다아트)는 어근 y-d-ʿ에서 온 말이다. 다아트는 어떤 사실이나 정보를 아는 것뿐 아니라, 관계를 맺고 직접 경험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창세기에서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를 알매라고 할 때의알다역시 같은 동사이다. 그래서 다아트의은 대상을 바깥에서 파악하는 지식만이 아니라, 대상과 관계를 맺고 경험함으로써 얻는 앎까지 말한다고 자주 설명된다.


(Rocky Raccoon - Beatles) (유튜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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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부르기 : 어떻게 슬픔이 미래를 지키는가
로런 마컴 지음, 황은주 옮김 / 기이프레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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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슬픔을 소화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수많은 추상들을 한 번에 애도하기를 효구하는 데 있다. (…) 또한 변모하는 세계를 통과해 나가는 일은 우리의 방향 감각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공포는 공기 중에 자유로이 떠다니는 자원이다. 그것을 포착하는 것이 이 세대의 몫이다.” 


저자는 슬픔을 그저 감당하고 견뎌야 할 감정으로 두지 않는다. 슬픔을 우리 자신과 세상에 가치 있는 무언가로 바꾸어 내는 일, 그것을 일종의 ‘연금술’이라 부른다. 정의를 지향하는 사회적 변화를 불러오는 생성적 동력으로서 슬픔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다.


가치판단의 수단이 생산성의 논리 하나로 쉬이 일축되는 시대에,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생산적이고 쓸모 있는 행위인지 기꺼이 역설하는 그 기세에 감탄했다.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애도와 기억이야말로, 아직 오지 않은 세계를 준비하는 행위일 수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잊고 있던 기억들이 자주 떠올라 조금은 괴로웠다. 아우슈비츠의 벽면을 가득 채운 어린이용 신발들, 한 환경단체의 활동을 따라다니며 품게 된 실망과 무력감, 떠나고 없는 이들과 그 자리를 메우는 듯하면서도 끝내 메우지 못하는 여러 사물들. 아마도 이 책이 말하는 추상들은 이런 것들이겠지. 너무 거대해서 한 번에 슬퍼할 수 없고, 너무 멀리 있어서 나의 삶과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아주 구체적인 형태로 필연적으로 우리 앞에 돌아오는 것들. 제아무리 고개를 돌려본들 그 모든 일들은 영영 나와 함께하니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볼프강 보르헤르트는 “우리는 이별 없는 세대다”라고 썼다. 그리고 작금의 우리는 어쩌면 ‘애도 없는 세대’인지도 모르겠다. 사라지는 것들이 너무 많아 하나하나 작별할 틈도 없이 다음 상실로 떠밀려가는 세대. 무엇을 잃고 있는지 충분히 슬퍼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 채, 그저 적응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 세대. 그 속에서 피어나는 슬픔이 무엇인지 이제 막 직시하기 시작한 세대..


<영원 부르기>는 애도 없는 세대를 위한 하나의 추모비가 아닐까? 애도 없는 세대의 냉소와 무력함을 애도하는 것, 그리고 그 너머의 수행으로 나아가는 것.. 영험하고 생동하네.. 역순의 페이지로 이루어진 책을 덮으며, 0쪽에 위치하게 된 나는 이 글의 힘을 기반으로 이 글에서 벗어나 시작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도서 속 등장하는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도 재밌다.


- 얼굴이 비처 보이는 마야 린 씨의 베트남 참전 용사 기념비

  (마야 린 씨가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 설치한 'Ghost Forest'는 그 단어 자체로 염수 침입과 토지 침수로 인해 나무가 광범위하게 고사하는 해안 삼림을 뜻한다..)


- 언어적 현실국 홈페이지(https://bureauoflinguisticalreality.com/)

  한국어 '헐'이 활용된 'Chuco헐sol'이라는 단어도 있다.ㅋㅋ


- 아이슬란드에 세워진 빙하의 추모비



- 기타 등등. . 롤랑 바르트, 레이첼 커스크 등 반가운 이름도 많다. 기시감이 짜릿함으로 이어지는 순간을 즐기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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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부르기 : 어떻게 슬픔이 미래를 지키는가
로런 마컴 지음, 황은주 옮김 / 기이프레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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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따금 했다는 고민과는 반대로.. 냉소를 경계하고, 무력함을 이겨내며, 균형을 잡고 우뚝 서기 위한 큰 힘을 얻었다. 역순의 페이지로 만들어진 책을 덮으며, 0쪽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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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윌리엄스 단편선
조이 윌리엄스 지음, 서민아 옮김 / 기이프레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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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통한다. 자꾸만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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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 윌리엄스 단편선
조이 윌리엄스 지음, 서민아 옮김 / 기이프레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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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에서 그는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잃어버렸다. 예전에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조이 윌리엄스 단편선> 「돌봄」 중에서




어제는 전기 관련 일을 하는 친구가 집에 찾아왔다. 벽등을 설치해 주겠다는 구실이었고, 벽등은 아직 없었다. 서로의 조부모의 발인을 지키는 뭐 그런 오랜 친구다. 또래보다 일찍이 일을 시작한 덕에 그에게 큰 돈을 빌려준 적이 있는데, 전혀 돌려받을 요량은 아니었다.




인스턴트 미고렝을 벌크로 구매하면 정말 저렴하다며, 이 년간 미고렝을 먹으며 친구는 기술자가 되었고 그 큰 돈을 일 년 만에 현금으로 찾아와 갚았다. 그리고 이제는 거렁뱅이인 나를 챙긴다. 요즘 그는 진취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어서, 우리는 그런 이야기도 곧잘 나누었다….


그리고 서로의 과거를 너무나 알고 있는 우리는 그 대화 속에서 자주 멈추었다. 몇 번의 침묵들…. 가족을 돌보기 위해, 동시에 가족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아프리카 발령을 자처한 한 차장의 이야기. 그때에 이르러서는 우리 둘 다 침묵을 못 이겨내고 자백했다.


우리는 그저 삶의 한 단계를 지나고 있음에 불과한 것 같다고…. 겹겹이 쌓이는 페이지처럼 이어지는 이 장면들을 관통하는 바늘이 있으며 그 구멍이 있다고…. 서로의 바늘이 된 적이 있으면서도 적어도 우리끼리는 그것을 모르는 척 하지는 말자고….


“연옥의 독자들에게”는 정말 최고의 카피 아닌가… 모두의 적이자 모두의 구원자인 적도 기니의 차장님을 상상하며….


그러고는 또 어느 날 단편 「소풍」을 퇴근하며 읽었다. 아주 불온하고 동시에 정직한 성장소설… 그러나 그것을 아이의 거짓말 혹은 상상으로 치부하는 서술 방식을 통해 나(독자)의 혼란과 죄스러움을 발생과 동시에 삭제해주는 느낌…. 갈등과 상처의 즉시 치유, 그러나 그 고통과 찝찝함은 당연히 그대로 남는다.


그 포개진 시간의 레이어를 단숨에 관통하는 서술법을 통해 마치 네가 외면하려던 것의 존재를 좀 느껴보라며 깔깔대는 듯 했다..

리뷰를 작성하는 오늘 16번 단편 「자선」 을 읽었는데, 뭐랄까? 마지막 곡 직전의 간주곡 같달까 풍성하던 시간의 레이어가 갑자기 3인조 컨트리 사운드가 되어 그 하나하나의 노이즈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달까

왠지 「자선」에 등장하는 인물 재니스는 이름도 재니스라 재니스 조플린 버전의 'Me and Bobby McGee'를 대차게 흥얼거렸을 것만 같다. '오 하나님 저는 기분 좋기가 참 쉬웠어요' 가사를 직역하여 이해하고 따라 부르며 자유의 아름다움을 한껏 찬미하겠지 그리고 조벨라가 그에 대해 물으면 사실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겠지..

내 친구가 윌리엄스의 소설의 인물들은 중심 사건에 살짝 빗겨 나 있는 듯하다고 했는데 거기에 적극 동의함. 특히 「자선」 에서는 'Me and Bobby McGee'의 러닝타임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조이 윌리엄스가 "meanwhile," 하며 끼어들어, 자주 회자되는 미 서부 히피들의 로드트립 일화를 그 회자되지 않는 이면까지 낱낱이 파헤치는 (그러나 어떠한 대단한 악의는 없이) 인상을 받았다.

모쪼록 나는 내 책의 표지 제목으로 뽑힌 「어머니들의 감옥」 부터 읽으려고 다짐했는데 깜빡 잊고 「돌봄」 부터 읽었다. 그러나 순서에 집착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지 싶어서 기뻤다. 또한 나의 두려움은 기우가 아니었음을 새삼 느꼈으며(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이 책이 두려웠다) 역시 기이프레스의 책은 참 기이하다. 맛보세요 여러분



어딘가에서 그는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잃어버렸다. 예전에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 P22

"잘 모르시나 보네요." 조벨라가 조용히 말했다. - P373

가끔 제니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아닌 다른 곳에서 길을 잃는다. - P184

"멋지다. 저 모양 좀 봐, 저렇게 갈색과 누런색으로 온통 얼룩덜룩하지만, 저게 실제로 어떤 메시지를 말해주는 건 아니야. 저건 그냥 우릴 둘러싼 이 모든 망한 현실의 일부일 뿐이야." -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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