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 - 삶을 버티게 하는 가치들, 2019 12월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도서, 2020 원북원부산 선정도서
이국환 지음 / 산지니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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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있다. 맛있는 것을 쟁여 두듯, 책장에 잘 넣어두었다가 문득 어느 날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 망망대해 같은 삶속에서 잠시 멈춰 뒤를 한 번 돌아보고 지금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나아갈 방향을 찾고자 할 때, 꺼내보고 싶은 책. 이국환의 『오전을 사는 이에게 오후도 미래다』가 그런 책이다.


저자의 책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삶이 더 가치 있기를 바라는 탐구이자 물음이다. 200페이지의 가량의 그리 짧지도 길지도 않은 이 책은 예술과 철학, 책과 사람을 통해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한다. 삶을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에 대해 ‘그래도 산다는 것’, ‘그래도 안 다는 것’, ‘그래도 견딘다는 것’,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이라는 소제목에 맞게 ‘그래도’의 의미를 찾는 것에서 시작되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생(生)’에 대한 물음과 답으로 점철되어 있다.


저자의 답들은 독자를 설득한다. 설득은 논리(로고스)와 감정(파토스) 그리고 인간미(에토스)를 포괄하는 소통의 기술이다.(「에토스, 운명을 바꾸는 글쓰기」) 이때, 에토스는 인격과 윤리성을 뜻하는 것으로 글쓴이의 생애 그 자체이며, 곧 그 자신이다. 좋은 글은 독자를 설득하는 글이며, 설득되지 않은 공감과 감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자존심, 늙음, 아는 것, 예술, 낭만, 고독 등 우리 삶과 밀접해 있으나 명확히 답하기 어려운 것들을 독서를 기반 한 논리(로고스)에 자신의 인간미(에토스)를 더하여 독자에게 다가와 공감하게 하기도, 감동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요즘은 자존감을 갖는 것이 중요한 사회이다. 그러나 자존감이라는 이 단어는 의미조차 모호하며 종종 자존심과 혼동된다. 저자는 「자존심보다 자존감이 중요한 이유」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구분하여,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존감을 찾아야 한다.”고 자존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자존감은 “칭찬에 우쭐하지 않고 비판에 흔들리지 않는, 그리하여 자신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며, 오랜 세월 노력하여 내 몸에 새기는 습관”이다. 끊임없이 서열을 매기고,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평가인 사회 속, 자존심은 타인에 의해, 상황에 의해 쉽게 무너질 위기가 도래하는 이곳에서 자존감이 뒷받침 되지 않는 위태로운 자존심은 곧 나를 잠식시키는 그 무언가로 변해 덮쳐올 수 있다. 그래서 자존감이 중요함을 소포클레스의 희곡 <아이아스>를 예로 들어 독자를 설득한다.

소설가 위화(余華,1960)는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문현선 역, 푸른숲, 2019.)의 서문에서 중국의 가장 오래된 지리서인 『산해경』에 등장하는 전설속의 새, 비익조라고 불리기도 하며 좀 더 보편적으로는 ‘만만’이라 불리는 새에 대해 설명하면서 텍스트와 독서 행위를 이에 비유한다. 날개와 눈이 한 짝씩 밖에 없기에 짝을 이뤄야만 날 수 있는 이 새처럼, 죽어있는 텍스트와 공허한 독서가 만나 한 몸이 되어야 나란히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를 수 있음을 말한다.

이국환의 책은 만만의 결합. 텍스트와 독서가 만난 결합물이다. 이 결합물은 읽는 데서 그치게 하지 않고 또 다른 독서로 안내한다. ‘글쓰기는 독서의 완성이며, 동시에 독서의 출발점이기도 하다.’는 저자의 말처럼 저자의 글이 독서의 완성이라면, 동시에 그의 책은 읽는 독자에게 또 다른 독서, 글쓰기를 여는 출발점이 된다.

저자는 어떠한 위험이 도래할지 모르는 격변의 현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예술에게 철학에게 때론 과학에게 삶에 대해 묻는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날카롭고, 논리적이지만, 따뜻하고 감성적이어서 독자로 하여금 그 물음을 함께 고민해보고 답하게 한다. 그리고 나아가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글쓰기를 통해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확신시킨다.

누군가 저자의 책에 수록된 글 중 가장 여운이 남는 글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원숙한 늙음을 고민한다」를 선택할 것이다. 성숙한 늙음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나의 물음에 욕망은 버리고 지난 일을 용서하고 배움으로 채워가는 것이 원숙한 늙음이라 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묻는 이에게 이 책을 권해줄 것이다. 삶에 대한 물음이 생긴 다면 꺼내어 읽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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