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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시간 - 여인숙 달방 367일
이강산 지음 / 눈빛 / 2023년 10월
평점 :
이강산 선생님의 다큐 일기 <인간의 시간>은 말 그대로 온몸으로 써 내려간 기록이다. 나는 여인숙이라는 공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나? 가난한 여행자들이 머무는 싸구려 숙박업소라는 게 그동안 내가 지니고 있던 여인숙에 대한 이해의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의 여인숙은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가 아니다. 삶의 벼랑에서 밀리고 밀린 이들이 노숙 직전에 달세를 내고 머무는 달방이라는 개념에 가깝다.
이강산 선생님은 여인숙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기 위해 대전역 뒷골목에 있는 대덕여인숙 0.8평짜리 방에 들어가 367일을 살았다. 글에서 묘사한 바에 따르면 그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냉난방이 전혀 안 되고, 10여 명이 사는, 재개발을 앞두고 있어 붕괴와 화재 위험이 상존하는 2층 건물에 세면실과 화장실이 하나뿐인데, 화장실에는 문도 없단다. 거주하는 이들은 또 어떤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알코올 중독자, 지체 장애인, 방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힘들 만큼 거동이 불편한 사람, 조현병 환자에, 일년 내내 세수 한 번 안 하고 양말도 벗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는 사람... 그런 이들과 정을 나누면서 후원물품을 모아 전달하고,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려고 애쓴 시간이 책 안에 빼곡하다. 사진을 찍으러 들어간 거지만 그들과 충분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전에는 사진기를 들지 않았다. 기획 의도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 환기를 통한 공존과 상생. 인권과 평화 도모’였다고는 하지만, 그걸 그대로 실천해 내는 건 정말이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다.
책은 367일 간의 기록만 담았지만, 그 후에도 이강산 선생님은 다시 여인숙 달방 생활을 이어갔다. 그 기간이 무려 836일이다. 존경에 앞서 부끄러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동안 이웃의 고통에 무감하지 않겠다며 너스레나 떨 줄 알았지, 내 몸과 마음을 그런 고통의 한가운데로 던져본 적이 없다. 말없이 고개 숙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