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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흡혈마전
김나경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평점 :

1931 흡혈마전
김나경 장편소설
_창비 서평단 글
※창비로부터 제공받은 책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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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함께 갑시다.
신의 은총도, 악마의 축복도
함께 있을 것이오.(p.66)」
책 뒷표지에 있는 말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사건의 끝도 책임진 게 아닐까 싶었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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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살 당찬 여학생‘희덕’과 피를 마셔야 사는 사감 선생‘계월’의 기묘한 인연.
일제 강점기 시대, 그 시대에 흡혈마라니. 그러한 그녀가 여학교에서 어째서 사감선생님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그야말로 ‘계월’의 존재는 유혹적이다.
「이 소설은 자신에게 허락된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인물들의 이야기다.(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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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이 나는 책이었다.
책 펼쳤을 때 빛에 금색 광이 나서 ‘와’ 싶었다.
스산한 상황 설명 문장을 지나쳐 사람이 나온 첫 대사가
“오메, 일 나 부렀네!”여서 웃었다. 정말 일 날 것만 같음을 암시해줬다.
'나에게 레몬을'이라는 부제목이 좋았다. 한번 일렬로 쓰여있는 부제목을 훑어보는데, 솜씨에 독자로서 호기심이 자극됐다. 「한국 근현대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각 장의 제목을 빌려 온 것은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시절과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한 작은 노력이다.(p.289)」라는 김나경 작가님의 말씀에 감명 깊었다.
「들리는 소리들/K사감과 러브레터/표본실의 청개구리/알거든 나서라/팬터마임/앤더슨의 편지/나에게 레몬을/흑흑백백/정당한 스파이/수정과 장미/기도,꿈,탄식/노라를 놓아주게/결별/인간 문제/샘물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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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시기에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p.51)”라고 말한 이와모토 선생의 말을 시원하게 맞받아치는 계월 사감 선생을 엿보고 있는 희덕의 감정에 이입됐다. 통쾌했다.
일제 강점기, 교내에서 일본말을 써야 한다는 게 강조되는데, 말의 자유가 없던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약간 비슷하게 영어 수업시간에 한국어 말고 영어로만 말하도록 지시했던 선생님이 생각났다.) 말이 억압된 분위기를 뚫어주는 계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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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사건이 이어지고 후반부에 계월과 함께 하는 희덕에 대한 묘사에 흡족했다.
「오늘의 희덕은, 어제와 다른 모습은 아니었다. 키가 자란 것도 아니고, 얼굴이 변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이상 무섭지 않았고, 학교 밖으로 떠나는 것도 마냥 두렵지만은 않게 되었다.
‘그런 게 자란다는 뜻이겠지.’(p.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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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 흡혈마전』이라는 제목만으로, 피와 연루된 ‘드라큘라(뱀파이어)’ 즉 한국어로 풀이한 ‘흡혈마’라고 각인되니 새로운 판타지를 열어줬다. 1930년대 경성, 그 속에 흡혈마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호들갑 떨게 되었다. 그 설정 자체로 뭔일이 터질 것 같고, 이미 두근거리고 즐거웠다. 학생과 선생 간의 모험담이라 나이도 뛰어넘는 관계였다. 나는 왜 그렇게 주인공이 성장하는 게 좋은지 매번 일일이 형용할 수 없지만, 계월은 유지되고, 희덕은 2백여쪽을 지나니 잘컸다 싶은. 이야기의 막이 내리고, 그 뒤에 작가님의 말을 읽으면서 정리도 되고, 파악하지 못했던 의미를 알면서 감회하게 되는 흐름또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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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