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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란한 세상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96
레이날도 아레나스 지음, 변선희 옮김 / 을유문화사 / 2019년 3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선택하게 한 단어는 바로 ‘마술적 사실주의’ 이다.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을 읽고 나서 느꼈던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책의 저자인 레이날도 아레나스도 쿠바 출신으로 책의 기본적은 배경은 멕시코이고, 시기적으로 18세기와 19세기를 지난다. 평소 역사의 타임 라인에 소설을 대입시켜 정치적, 사회적으로 비교하며 읽는 것을 선호하던 나는, 책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문장들로부터 내가 가진 고정관념에 대해 공격을 받았다.
“그래서 사실주의라 불리는 것은 정확히 말해 현실의 반대라고 생각한다. 그 현실을 귀속시키거나 분류하거나, 하나의 관점(‘사실주의자’)에서만 볼 경우 논리적으로 완전한 현실을 포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 15쪽
책의 주인공은 세르반도 수사로 식민지 시절 멕시코 출신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운명이 투영된 것 같은 주인공은 교단에서 추방 당하고 쫓기는 신세가 되어 세계 곳곳에서 감금과 탈출을 반복한다. 정치적으로 비교적 앞서나간다고 생각했던 프랑스, 영국, 미국을 지나지만 그 안의 실재는 겉포장과 전혀 다르다. 종교적인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어느 곳을 지날때나 그는 피해자의 신분에 놓인다. 그러다 멕시코의 독립을 위해 군대를 모아 귀국하고, 결국 독립을 목격하지만 죽어서까지 그는 바다를 건너는 신세가 된다. 줄거리를 보면 어느 수사의 모험담 정도로 치부될 수 있겠지만, 이 장면을 만들어 내는 방법은 예사가 아니었다. 1장부터 중간 중간 같은 사건을 다른 시점으로 여러 장에 걸쳐 서술하거나, 화자의 시점이 수사였다가 다른 사람으로 옮겨가는 것이 불규칙하게 진행된다. 본인의 자서전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전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백년의 고독』에서도 살펴본 바 있었지만, 이야기의 진행도 환상적이다. 이런 부분들은 『백년의 고독』을 떠오르게 했다. 기괴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지만 어딘가 우수에 차 있는 듯 하다. 나중에 작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니, 쿠바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의 심정이 녹아있는 듯도 했다.
나에게 좋은 텍스트란,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쓰는 사람 고유의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 두 가지를 다 담고 있었다. 보편적이고 정의로운 것을 추구하는 ‘멕시코 출신’의 수사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르케스의 책과 같은 카테고리에 묶일 수 있지만, 레이날도 아레나스만의 결이 담긴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여기에 직선으로 나열된 역사 서술이 아니라 문학만이 할 수 있는 현실에 대한 서술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교리, 하나의 규정이나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어야 할 신비다. 파헤치려는 목적이 아니라(그것은 끔찍할 것이다) 우리가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다. 16쪽
- 사실은 해결책이 없다. 매 순간 도주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언제 이러한 가능성이 다 고갈되느냐는 것이다. 139쪽
- “내 삶은 결국 한 번도 적중하지 못한, 계속되는 추구의 연속이었죠.” 261쪽
* 이 서평은 서평단 참여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