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시 겐이치로, 양윤옥 역, <<연필로 고래잡는 글쓰기>>, 웅진지식하우스, 2008 

 

 

131-132쪽  
 

  나는 몇 달씩이나 요시다 겐이치가 쓴 책만 읽었고, 그러다가 요시다 겐이치 풍의 글로 요시다 겐이치가 생각할 만한 것을 노트에 쓰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일본인으로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유럽문화에 깊은 영향을 받은 요시다 겐이치와, 육체노동에 종사하면서 하루의 끝에는 싸구려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자는 것이 삶의 위안이던 이십대무위 청년이었던 나는, 어디를 봐도 공통점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교양도, 연령도, 환경도, 생각하는 방식도, 무엇 하나 비슷한 것이 없는데도 나는 왜 그런지, 미친 듯이, 철저히, 요시다 겐이치가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치 내 안에 내가 아니라 에일리언처럼 요시다 겐이치가 들어와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숙주인 나곡괭이를 휘두르며 땅을 파고 있는데 그 사이에도 머릿속에서는 시간이며 역사며 시며 유럽 고전문학에 관한 다양한  감상이 요시다 겐이치의 말투를 빌어 소용돌이 치고 있었습니다. 

  깊숙이 파고들어간 그 세계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모든 윤곽이 선명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와 달리 그곳에는 모든 것이 풍요로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던 나는 요시다 겐이치의 문장이 빚어낸는 그 세계 속에서 잠시나마 풍요에 젖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반년쯤 지나서 그런  '붐'은 처음 내게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돌연 끝장이 났습니다. 

  아마도 요시다 겐이치의 유전자는 내 안에서 계속 살아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겠지요. 내 안에는 그의 유전자를 받아들이고 다른 무언가로 화합시켜서 새로운 무언가로 변화시키는 게 가능한 토양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내 안에서 잠시 살았고, 그리고 영원히 죽어버렸습니다.  

  흉내 내는 것은, 흉내를 내는 동안에 그것을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날아오는 수많은 공 속에서 당신의 연인을 찾아주십시오. 좋아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을 찾아주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흉내 내주십시오. 

  몇 번이고 수없이 읽어주십시오. 읽고 또 읽고 그리고 베껴 써주십시오.  

  거듭 거듭 베껴썼다면 그 다음은 그 문장으로, 그것을 쓴 사람의 시선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십시오. 그것을 쓴 사람의 감각으로 이 세계를 걷고 만져주십시오.  

  만일 그것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타인의 감각이며 시선이 조금씩 당신의 내면에 흡수되고, 자신의 감각이나 시선과 뒤섞여 새로운 감각과 시선으로 변화해갈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식물처럼 이윽고 시들어갈 것입니다.  

  하지만  시든 식물은 그저 죽는 것은 아닙니다. 분해되어 무수한 구성요소로 변해 땅의 깊숙한 안쪽에 스며들어 다른 생물에 흡수되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육체노동을 하며 싸구려 술을 위안삼던 젊은 시절 다카하시가 요시다 겐이치라는 기생물을 만나게 된 시기를 묘사하는 부분은, 작가가 학생운동으로 체포 구금당한 후 실어증에 빠졌던 이력을 생각하면 뭉클하게 하는 데가 있다. 

 언젠가, 지금보다도 더 어릴적에 공간을 떠돌던 번득이던 씨앗들이 나라는 토양에 잘못 정착해 제대로 펴보지도 못하고 썩어간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지도 못한 그것들은 림보라도 갈 수 있을까나.... 그런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기에,무언가 유사한 다카하시의 숙주와 에이리언 비유가 와닿았을 뿐더러, 시든 식물이 그저 죽은 것이 아니라,   다른 생물에 흡수되기를 조용히 기다릴 것이라는 서술은 나를 어루만져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다카하시는 앞선 글쟁이들의 글을 읽고 또 읽고 베껴쓰고 흉내내고 그 시기는 그 글쟁이들처럼 살라는 주문이고, 나는 영감 몇가지를 말한 것이라 구별이 되기도 하지만...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리스 사람들 사고방식대로 생각할때 어차피 (시에 대한)영감은 내 안에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 밖의 존재가 내게 불어넣어주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게 생각하면 다를 것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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