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1시 45분, 나의 그림 산책 - 혼자 있는 시간의 그림 읽기
이동섭 지음 / 홍익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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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이 있는 에세이는 읽어 보았어도, 그림 작품 에세이는 처음이어서 더욱 기대를 품고 있었다. 이 책은 낮에도, 새벽에도 읽어보았다. 확실히 고요한 밤에 더 심금을 울리는 건 단지 새벽이 원래 감성적이게 되는 시간이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글만 읽어도 내 세계가 고요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떤 글은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를 혼자 걸어가고 있는 상상에 빠지게 해서, 책 속에서 암중에 있는 빛, 새벽 냄새, 소소한 소리들과 차가운 공기를 오감으로 느끼는 것만 같았다. 유럽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명화들이 글과 만나면 이렇게 누군가를 위로할 수도 있다. 문학과 예술의 조합이라니, 어쩌면 둘은 위로를 건넨다는 점에서 닮아있는지도 모르겠다. 


표지의 그림은 새벽에 글을 쓰는 저자의 모습인가 싶었는데, <엽서를 쓰는 모델>(p.51)이라는 제목의 그림이었다. 그림을 보고 표지를 다시 보니 새벽을 배경으로 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는 모습이라 왠지 모르게 나에게 가장 정감이 가는 그림이 되었다. 책 속에서 나를 위한 그림을 찾은 것만 같다. 마네의 <아스파라거스>(p.57)라는 그림에 담긴 이야기는 웃음을 자아냈고, <유대인 신부>(p.213)라는 그림은 네덜란드에서 실제로 봤던 그림인데 그에 담긴 뜻도 알게 되어 신기했다. 왜 하필 애매한 시간인 새벽 1시 45분일까에 대한 궁금증은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단순히 책 읽기 좋은 고즈넉한 시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저자는 '내 안의 소년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p.28)'이라고 표현했다. 그에 해당하는 그림도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화가 폴 세잔은 "고독은 나와 어울린다. 고독할 때만큼은 아무도 나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라고 했다. 나는 고독을 뜻하는 'solitude'를 '자기의 영혼을 가지려는 태도 soul+attitude'로 받아들인다. 혼자 있어 즐거우면 고독이고 고통스러우면 외로움인 것이다.

p.23

우리는 세상 풍경은 그토록 감탄하며 보면서 자기 자신의 내면 풍경에는 놀랄 만큼 무관심하다. 나 역시 해지는 저녁 하늘의 기묘한 색채는 감탄하며 보지만, 내 마음의 쓸쓸함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흔한 사진 찍는 몇 초의 관심도 없었다. 이제부터 내 마음에도 관심을 기울이기로 한다.

p.239


누구나 아는 유명한 화가들과 내가 잘 모르는 생소한 화가들의 그림이 골고루 있어, 반가우면서도 새로운 그림을 알게 되어 좋았고, 그림의 배경이나 작가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의 이야기들을 그림과 연관 지어 풀어내어 두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다.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책 속에서 이렇게 넓은 세계를 마주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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