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들의 아파트 - 표기식 사진집
정재은 글, 표기식 사진 / 플레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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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도 돈을 주고 사진집을 사는 사람이 있을까. 


지금과 같은 디지털 이미지 홍수의 시대에. 온 국민이 매일 핸드폰으로 직접 찍거나 혹은 남이 찍은 사진을 보며 살아가는 시대. 하여 이 시대만을 경험한 이들에겐 어쩌면 종이위의 사진이 되려 낯설게 느껴질 법도 하다. 


종이위의 사진이 익숙한 세대조차도 더 이상 사진을 종이형태로 보관하지 않게 되었다. 디지털 파일의 존재는 우리를 너무도 쉽게 안심시켜서, 이제 대부분의 사진은 컴퓨터 하드 디스크나 클라우드 공간에만 존재한다.


이런 시대다 보니 사진집의 존재가 나는 더욱 신기했다. 정재은 감독이 촬영하고 최근 상영했던 ‘고양이들의 아파트’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힘든 다큐멘터리 영화가 사진집까지 낼 줄은 정말 몰랐다. 설혹 알게 되었다해도 구매할 생각까지 하진 못했을 것이다. 내 아이들의 사진도 컴퓨터 파일로 묵혀두는 내가, 철거 직전의 아파트에서 찍은 고양이 사진에 돈을 쓸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계일을 하며 맺게 된 소중한 인연 덕분에 이 책은 운명처럼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고, 포장을 열고 책을 펼치자마자 내 가슴은 저 아래로 쿵 주저 앉았다. 


사진들이 하는 이야기가 너무 강렬해서, 나는 숨을 흡 들이마시고 아주 천천히 책장을 넘겨야만 했다. 재건축을 하려면 오래된 아파트를 철거해야하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니고, 내가 잠시 살았던 아파트도 철거되었으니 낯선 일도 아닌데 이 사진들은 왜 이토록 내 마음을 후벼파는 것일까. 


이 사진들을 보고서야 알았다. 이 낡은, 그래서 부숴서 버려야 마땅한 집들은 누군가의 소중한 삶이 오래도록 담겼던 ‘집’이었음을. 아파트 철거는 그래서 집의 집단 학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 많은 집들을 허물기 전에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부숴서 버리려는것이 무엇인지 한 번은 더 바라보고 한 번은 더 생각함이 마땅했다. 우리가 만들고 있는 건축이 인스턴트 음식같이 저급함에 대한 반성문 한 장 정도는 써야 마땅했고, 부수려는 것에 이미 깃들어 사는 생명들을 돌아봄이 마땅했다. 이 책은 우리가 했어야 할 그 모든 마땅함들을 대신 해주고 있었다.


해서 이 책을 읽는다는 건 어쩌면 집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애도를 표하는 행위 같기도 하다. 우리가 했어야 할 마땅한 행동들을 뒤늦게 나마 할 수 있도록. 그렇기에 이 사진들은 컴퓨터가 아닌 종이 위에, 한 장 한 장 차례로 넘겨야 하는 책의 형태로 존재함이 가장 마땅해 보인다. 가끔 잊지 않고 바라볼 수 있도록 책장 한 켠에 놓아 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진들은 정작 집에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다. 그저 사람들이 떠나고 고양이들만 남은 빈 아파트의 풍경을 서정적인 단편처럼 담아 냈을 뿐이다. 그러나 이 장면들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전에 일어난 일들과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충분히 상상하게 만든다. 영상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정지된 사진만의 힘이다.


그 상상의 여정을 부드럽게 이끌며 책을 자못 정중한 마음으로 읽게 만드는 것은, 책의 머리와 꼬리에 들어간 정재은 감독의 글이다. 그의 글은 길지 않으면서 너무 아름다워서 나에겐 시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책은 전체가 시집 같기도 하다. 언어로 된 시로 시작해서 사진으로 된 시로 넘어간 다음 다시 언어로 된 시로 끝맺음을 하는 것이다.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는데 아름답기까지 하다니 왠지 마음의 빚을 크게 진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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