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일기 -상
쟝 쥬네 / 인화 / 1994년 11월
평점 :
절판


그 지독한 타락, 불행, 일탈을 거창한 관념의 언어로, 시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주네는 정말 천재적 시인이 아닐까. 도둑이며 타락자 였던 작가, 쥬네! 그의 능력에 완전히 압도당해 그의 부도덕이 차라리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다.

시종일관, 작가, 쥬네가 현대로 환생한 음유시인이 아닌가 착각이 들게한다. 옛 음유시인들은 거의 거지이며 장님이었다는데. 그런 것처럼 쥬네는 거지요 도둑이요 남창이기 까지 했다. 거지이며 도둑이며 남창이었던 자신의 사생활을 완벽하게 공개, 그것도 시적으로, 몽환적으로 읊조린 시가 바로 이 책이다. 거기엔 어떤 청승맞은 후회와 반성조가 없어서 더욱 신기하다. 신랄한 솔직함으로 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는 그런 모순과 악의도 없고.

현대라는, 물질적 이기주의 팽배해 있고 좀더 살기 편리한 생활조건 속에서 그처럼, 삶의 이기적 생명력을 다투지 않고, 완전히 체념적으로 불행에 임하고 그것을 시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비단 천재적 시인이어서도 그렇지만 그 위대함의 특징인 , 성자의 아름다움인, 누가 그처럼 철저히, 체념적으로, 악의없이, 욕망없이, 욕심없이 타락했기 때문이 아닐까. 홧김이 아닌, 순전히 운명의 흐름에 몸에 내맡긴 것이다.

운좋게 베스트셀러가 되고 명작의 대열에 어쩌다 올라서 구태의연하게 회자되는 책들의 헛점! 그러나 진정 뛰어난 책은 뛰어난 예술처럼 세기가 나올까말까한다. 그리고 그 뛰어난 것은 신 만이 알 것이고 또 신적이 창조적 정신의 소유자만이 알아 볼 수있다. 주네는 그 부도덕한 삶에도 불구하고 저명한 문학가들의 탄원에 의해 끝내 구제됐다. 우리가 매도하는 숱한 편견의 악으로 비추어볼 때 용서받지 못할 것 같았지만. 너무도 탁월한 예술가였기에.....너무도 순수했기때문에....

평범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타락이라고 일컫는 세계, 도둑질, 거지, 사기, 동성애, 등의 추함....,'도둑일기'는 이 세계를 우리 일상처럼 아주 진솔하고 아름답게, 인간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 암흑의 삶에도 숱한 애환과 아름다움이 꿈틀거리며 우리의 감정을 잔잔하게 때로는 벅차게 자극하는 것은 뭐랄까. 악의 승화랄까.

이 책은 우리의 정상적 삶, 부귀한 삶을 비웃는 듯하다. 아니 비웃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복이라 일컫는 선과 사랑과 부귀의 세계가 놀라울 정도로 왜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우리가 얼마나 소심한 가를, 도덕과 평범의 세계가 얼마나 소심하다는 것을,

그것은 충동적으로 악을 자행하는 불안한 선망 , 그런 종류가 아니다. 그의 너무도 눈부신 불행, 성자적 체념, 불행에의 완전한 헌신, 내맡김 등은 이 밋밋한 삶, 이 정상적 삶에 도리어 절로, 열등감, 위축감을 준 것 때문이다. 악의 적나라한 미화, 승화 ....도덕이 없을 것 같지만 차라리 이 적나라한 실상은 오히려 많은 말을 하고 있다. 즉 행과 불행에 대한 초연한 자세랄까. 커다란 불행 앞의 숙연함.

그리고 그 악은 우리들이 흔히 부르는 불행의 형제와 다름없이 어떤 슬픔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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