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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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랜만에 단편소설집을 펴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장편소설을 더 좋아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호흡이 짧으면서도 탄탄하게 세계를 그려내는 단편을 읽는 것도 좋아한다

여름부터 백수린 작가의 글을 읽어보고 싶어 벼르고만 있었는데 이제야 겨우 읽게 되었다

펴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계속해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부터였다.

 

첫 책이다.

오랫동안 소설을 쓰고 싶다.

좋은 소설을 쓰고 싶다.

내가 처음으로 수줍게 건네는 손을 당신, 부디 맞잡아주시길.

 

작품 내용을 읽기 전에 작가의 말이나 해설 첫머리 같은 것을 먼저 읽는 습관이 있다. 아마 이 책을 쓴 사람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습관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작품보다는 작품을 만들어 낸 사람이 더 궁금한 것 같다. 독자는 책 속의 인물과 대화를 나눈다고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어서 그 인물을 만들어 낸 사람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일지도?

 


표제작인 <폴링인폴>과 함께,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자전거 도둑> 그리고 <까마귀들이 있는 나무>였다.



<폴링인폴>은 제목으로만 보았을 때 왠지 로맨스소설 같았다. 사실 책의 표지도 살짝 간질거리는 분위기라서 사랑 이야기인가 싶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사랑 이야기가 나오기는 해도 서술자의 입장에서는 마냥 행복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고 다시 표지를 보니 마냥 간질거리지는 않는다. 톤이 좀 다운된 것이- , 염장을 지르지는 않는군. 다행이다.) 그렇지만 사랑 이야기를 떠나서 폴의 가정사를 들여다보면, 마음이 조금은 따뜻해진다.


이라는 이름에서 짐작하겠지만 그를 한국인이라고 지칭하기엔 조금 낯선 구석들이 있다. ‘토종한국인이던 부모님과는 다르게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한민족이라는 말로 한 나라-한 인종-한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 집단을 통틀던 과거와는 다르게, 요즘은 한민족이라는 단어가 수상하게 보일 정도로 다양한 예외들이 생겨났다. 인종은 같지만 국적이 다르고 언어까지 외국어를 쓰는 과 같은 교포들이나,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미숙하지만 우리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국 국적의 외국인들까지. 누가 외국인이고 내국인인 걸까? 외국인이라는 단어는 맞는 단어일까? 그들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이런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일 것이다.


혹은 외국에 체류한 상태이거나 그런 경험을 통해 겪는 낯섦을 가지고 이야기한 작품들도 많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까마귀들이 있는 나무>이다. ‘라는 남자는 아르바이트로 외국 관광객에게 고궁을 설명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시청 담당 직원의 착오로 아침 일찍부터 오후까지 담당 관광객을 기다려야 하는 그는 하릴없이 고궁을 돌아다니게 된다. 그 곳에서 한 여자 관광객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자연스럽게 고궁 안을 설명해주면서 과거에 외국에서 겪었던 이라는 외국인과의 스토리를 회상한다. 작품의 분위기라던가 중후반부의 전개가 꽤 마음이 들었는데, 그 중심에서 작동하는 것은 외국-외국인-외국어라는 소재다. 낯선 나라, 낯선 사람, 낯선 언어라는 소재로 인해 버석한 행동을 보이는 인물들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런 부류의 작품들은 위에 두 작품 외에도 <부드럽고 그윽하게 그이가 웃음짓네><거짓말 연습>이 있다.)



무엇보다도 작품들 속에 나타나는 인물의 심리가 좋다. 심리 묘사는 잘 모르겠지만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 생각하는 것들이 매우 친숙하다. 그런데 이 친숙한 생각과 느낌이 그다지 밝은 종류의 것이 아니다. 가끔은 부끄럽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자전거 도둑>의 예를 들어 이야기해보자면 이렇다. ‘’, 안나, 제이는 방을 하나 구해 같이 살고 있다. 돈은 없지만 각자의 꿈을 향해, 그런 만큼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안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재정적으로 안정적이고 꽤 괜찮은 남자가 안나의 곁에 맴돌자, ‘는 질투어린 감정과 소외를 느낀다. 제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는 자기의 감정에 취해 안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기에 이른다.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인 제이, 밴드 보컬인 안나, 무명의 웹툰 작가인 까지. 사회에서 말하는 정상 궤도에 약간 비껴나간 그들은 서로의 허물을 바라보며 기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하나가 허물을 벗어내려 한다. 작은 공동체의 위화감이랄까, 개인들의 미묘한 심리전이랄까. 누구든지 느껴봤을 것이고 충분히 공감이 되지만 굳이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지 않던 마음을 소설에서 확인하니까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또 이 이야기의 결말도 재미나다.

 



다른 작품들도 흥미로운 구석이 많았다. ‘감자를 잊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인 <감자의 실종>이나, 수족관에서 아이를 잃어 방황하는 <밤의 수족관> 이라는 작품, 유령이 습격한 이후 한 카페로 다시 찾아간다는 <유령이 출몰할 때>, 말을 잃어버린 당신과 그 옆을 지키는 나의 이야기인 <꽃피는 밤이 오면>까지. 이제 어떤 좋은 소설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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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삶
이종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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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두근거린다. 

신간의 홍수 속에서 쟁쟁한 외국 작가들과 한국 작가들의 묵직한 작품들 속에서 

풋풋함이랄까, 패기랄까. 


대단하고 훌륭하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더 공감이 가서 

오랫동안 여운이 남는 소설들이 많은 것 같다. 

‘게으른 삶’이라는 조금 달콤한(!) 제목의 이 소설도 괜히 생각나게 하는 몇 가지 구절들이 있다.



이종산 작가의 문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탁월한 ‘돌려 말하기’ 덕분에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을 하는 것인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주인공 너구리(별명)는 식당이나 애견샵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너구리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중 참치는(역시 별명이다) 

이른바 썸을 타고 있는 관계랄까? ‘좋아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을 뿐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무척이나 신경 쓴다. 

소설은 계속해서 이 너구리와 참치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의 이동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의 이야기에서 로맨스가 빠질 수는 없는 것 같다.

 아무렴- 로맨스가 있기 때문에 음악과 미술이 있고 문학이 있는 것이 아닐까? 

청춘의 시기에 다들 한 번씩 겪는 진통이기도 하니까. 

예를 들어 이런 구절에서 금방 공감을 하게 된다.



 

78page

“기다린 적이 있었어?”

참치의 눈이 사나워져 있었다.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기다린 적이 있었냐고? 내가 너를 알게 된 후로 나는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네가 나에게 말을 걸기를, 내 손을 잡기를, 나를 간절히 원하기를, 사랑한다고 말해주기를, 나에게 영원히 돌아오기를. 그런데 어떻게.

 



이 소설이 단순하게 두 젊은 남녀의 이야기만 다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소설 속 인물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번듯한 직장에 가지지 못해 너구리의 엄마는 ‘이제 그만 놀아’라고 말을 하지만 

너구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곤 한다. 

아직 꿈을 잃기에는 어린 나이라고들 모두 말을 하지만 

너구리는 오히려 ‘나는 꿈이 없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라는 인식은 요즘 사회의 시각에서는 미래를 위해 고생도 사서하는, 

꿈이라는 이름으로 현재의 행복을 눈감을 줄 아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렇지만 큰 꿈 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작은 꿈, 작은 행복에 만족하는 삶, 


그리고 남들이 집을 떠나 분주하게 사는 동안 

가만히 한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기다릴 수도 있는 그런 삶. 

제목처럼 ‘게으른 삶’은 바로 이런 부류의 것들이 아닐까한다.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해야만 하는 것’이 바로 일(work)이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놀이라고 한다. 

물론 당장에는 일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세상을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는 힘이 

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놀이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게으른 삶’이 일종의 놀이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게으른 삶’은 그저 게으른 것, 그러니까 나쁜 것이라는 게 다는 아니다. 

소설의 주인공과 문체에서 볼 수 있듯이 조금은 다른 이야기로 돌아가며 

핵심을 생각하는 것이 ‘게으른 삶’이고 또 이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게을러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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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정지향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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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소설이다. 자연스럽게 온전히(!) 대학생이던 때를 떠올리게 된다. 처음 입학해서 설렘을 가득 안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강의실을 옮겨 가면서 수업을 들었던 그 때. 틀에 박힌 10대 때의 생활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가능할 것만 같았고 자유로움을 만끽하던 그 때를 말이다. 풋풋함과 열정, 대학생이라는 이름에서 상기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신인 작가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풋풋하고 열정적인데 하물며 대학생이라면! 기대감을 안고 첫 책장을 넘겼다.



 1인칭 시점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고아의 도시'라고 명명되는 조용한 도시에서 자취하며 살고 있는 '나'와, 남자친구 '요조', 카우치 서퍼인 '민영'의 이야기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자취를 하지만 거의 부모님들과 인연을 끊고 사는 '나'와 '요조'는 연인 관계이지만 사랑에 대한 감정은 거의 식어있는 상태다. 이 때 '나'가 외국 여행을 하다가 만난 카우치 서퍼 '민영'이 한국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민영'은 조그마한 '나'의 자취방에 머물게 되면서 '요조'와 셋이 함께 지내게 된다.



소설을 읽는 데 부담감이라던가 어려운 부분은 없었다. 특히 문체 자체가 워낙 쉽게 읽히는 부분이 많고 그 와중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문장들도 많았다. 이를테면 맨 앞부분에, 대학교 종강 이후 학생들이 그 지역을 떠나 주인공이 사는 곳이 '고아의 도시'가 되는 것을 서술하는 부분이 있다.




수업이 하나둘 종강하기 시작하던 때였어. 시험을 일찍 끝낸 아이들은 벌써 학교를 떠나고 있었지. 고아의 도시에서 나야 할 긴 여름을 상상하며 나는 예습하듯 조금씩 더위를 먹어갔어.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생각들이 자투리천처럼 아무렇게나 머릿속을 굴러다녔고, 배가 고파도 뭘 먹기는 싫었지.




'예습하듯 조금씩 더위를 먹어갔어.'나 '생각들이 자투리천처럼 아무렇게나'와 같은 표현들에서 섬세함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무척 공들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분량 자체도 요즘의 트렌드에 맞는 것처럼 경장편이기 때문에 부담스럽지 않다. 문체와 분량도 그렇지만, 일단 소설 속 인물들과 가깝다는 생각에 더 읽기 좋았던 것 같다.



 대부분 대학을 나와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를 쓰고 대학을 가려고 한다. 그렇지만 정작 대학에 가고 나면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는 몰랐던 인간 관계의 어려움, 무엇이든 하면 될 것이라는 열정과 패기가 실수와 좌절로 이어질 때, 그리고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야만 인정받는 분위기 등 어릴 때와는 또다른 진통을 겪는 시기가 대학 시기다.



 부유하듯 자유롭게 세상을 떠다니며 살고 싶은 것이 바로 20대가 아닐까. 미성년이라는 제약도 없어졌겠다, 굳이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야만 할 이유도 없는 세대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긴 하다. 예전에는 정착을 위해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요즘의 20대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완전히 반대다. 사회 속 경제적인 문제의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집에 연연하지 않고 가족 구성원에 대한 폭도 한층 넓어졌다. 피로 이어진 관계보다 비슷한 취향, 가치관을 가진 마음의 동료들과의 관계가 20대에겐 더 소중할 수 있는 것이다.



 소설 속 '나'와 '요조', '민정'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세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조그마한 자취방 안에서 셋이 꼭 들어가 앉아 잠을 자기도 하고, 집을 찾아오는 가족들에게는 매정하게 대하는 모습 등, 현재의 젊은이들의 시각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행동을 한다. 남의 집 소파 위를 전전하면서 여행을 하는 '민정' 역시도 요즘의 젊은 세대들의 성격을 잘 드러낸다. 그때그때 필요한 돈을 벌고 여행을 하는 카우치 서퍼의 삶이 어쩌면 젊은 20대들이 겪는 찰나의 방황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을 통해 어쩌면 20대 우리들의 내일의 모습일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나오는 주인공과 이름이 (닉네임이) 같은 '요조'는 성격 또한 '인간 실격'의 요조와 비슷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삶-'인간됨' 자체에 대한 통증을 앓고 있지만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습으로 가장한 채 살아간다. 이 소설 속 '요조' 또한 비슷하다. 부유하듯 오랜 대학생활을 보내며 인생의 목표에 의문을 갖고 살다가, 으레 다른 이들이 하는 것처럼 자신의 긴 방황을 끝내고 방송국 PD 공채를 준비하여 사회인으로 나갈 준비를 한다.



 카우치 서퍼였던 '민영'은 한국인이지만 어릴 때 입양된 이유로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마지막 여행지로 '한국'을 택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돈을 벌기가 수월하다던가 때마침 여행지에서 만났던 '나'가 떠올랐다던가.) 어쨌든 계속되는 카우치 서퍼의 삶의 끝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요조'와 '민영' 모두 부유하듯 살다가 정착을 선택한다. '표류' 이후 맑은 햇빛을 찾아갈 일종의 안정상태를 얻은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 또한 내면적 안정을 찾는다. 다른 두 인물에 비해 표면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닐지 모르지만, 소설 마지막에 '나'가 내뱉는 일종의 내면 고백은 독자의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이렇게 소설은 세 젊은이들의 성장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끝으로, 부록이라고 말해야 할지? 이 소설로 당선한 정지향 작가와 심사위원인 김미월 작가와의 깜짝 관계(?)와 인터뷰도 재미를 더해준다. 자세한 것은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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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게 죽다 블랙 로맨스 클럽
멜린다 웰스 지음, 진희경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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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블랙 로맨스 클럽의 신작, '달콤하게 죽다'(Killer Mousse)!

 

케이블 TV 요리 프로그램을 맡게 된 '델라 카마이클'이 만드는 초콜릿 무스 케이크는 너무 맛있어서 '킬러 무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즉, 하나 먹다 누가 죽어도 모를 맛이라고!
첫 생방송 날, 전임 진행자였던 미미 본드가 그 킬러 무스를 한 입 먹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알고 보니 땅콩 알레르기가 심했던 미미 본드가 킬러 무스를 시식할 것을 알고 누군가가 미리 반죽에 땅콩을 집어 넣었던 것!
졸지에 용의자 선상에 오른 델라 카마이클은 누명을 멋기 위해 사건 수사에 돌입하게 되는데...

 


코지 미스터리! 추리와 함께 웃음과 로맨스까지

 

주인공 델라 카마이클은 동네 요리 교실을 운영하는 평범한 47세 아줌마!
경찰이던 남편을 먼저 하늘로 보내고 든든한 애완견 터피와 친구의 딸과 오붓하게 살던 그녀는 아주 평범하다.
그렇지만 살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녀의 삶은 점점 복잡해진다.
여느 추리소설들과는 다르게 이 소설은 밝고 명쾌하다.

사람 한 명이 죽었는데 어떻게 소설이 밝을 수 있나, 의아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코지 미스터리' 장르로,
기존의 추리 소설들과는 조금 다르게 독자가 편안한 마음으로 스토리 전개를 즐길 수 있는 추리 소설의 한 장르라고 한다.
누가 범인일까, 궁금해 하면서도 그 사건을 풀어나가는 등장 인물들의 행보가 산뜻해서 부담스럽지 않다.

특히 델라 카마이클의 로맨스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남편의 친구이자 델라의 친구인 '빅 존', 범죄 전문 기자인 'NDM'과의 삼각관계가 이야기를 더 풍성하게 만든다.

 


군침 도는 레시피까지 수록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델라가 방송을 할 때마다 몇 개씩 레시피를 제공한다.
소설 끝에 부록으로 이 모든 레시피들이 정리되어 있다.

소설의 본 제목인 '킬러 무스'부터 시작해서 '이지 크랜베리 치킨', '갱스터 치킨' 카차토레, 라자냐 등
델라가 방송하면서 공개했던 레시피 뿐만 아니라 소설 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요리를 할 때마다 소개되었던
메뉴들을 재료부터 요리법, 간단한 팁까지 정리되어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요리에 감각이 없는 (필자 같은) 사람들은 눈으로 봐도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는 것?
실제로 이걸 요리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거나 사진으로 본다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요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 개쯤은 도전해 볼만한 다양한 레시피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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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 시편 22장 20절


심오한 성경 구절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미국과 중남미 사이에서 벌어지는 마약전쟁을 3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 보여주고 있다.

생각해보니, 황금가지 출판사의 '밀리언셀러 클럽' 소설을 처음 접해보았다. 

호기심이 많았지만 왠지 접해볼 기회가 없었고 사실 대부분 두께가 어마어마하게 보였던 터라. 

사실 이 소설도 처음에 받아보고 '두께가 뭐 이래!' 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리뷰를 쓰기 전 미리 이야기하는 건데, 두께가 문제가 아니다. 술술 읽힌다. 

가독성과 재미를 보장한다. 그렇다고 한 번 읽고 휙 잊어버릴 만한 가벼운 내용은 아니다. 

소설은 철저하게 현실에 기반해 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무섭기도 하다. 




중남미 그리고 마약



'중남미'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마약일 것이다. 좌파와 우파라는 이념적 대립으로 그 영토 내에서 게릴라전과

무자비한 학살이 종종 일어나곤 했던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곳이지만 그 속 깊은 곳에서는 마약거래가 암암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약 25년 전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유학생활을 하셨다는 어느 교수님의 이야기에서, 당시 40대 남성의 사망 원인 1위가 총살

이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놀랐고 25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 만큼 위험한 곳이 멕시코시티라는 말에 두 번 놀랐다.

그 이유는 '마약' 때문이라고 하니, 중남미 지역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중남미는 왜 이렇게 마약이 많을까?

조그만 지식을 펼쳐보자면, 아즈텍-잉카 제국 때부터 원주민들은 코카인과 같은 마약류들을 재배해서 제의때 고통을 줄이고

(그들은 끔찍힌 인신공희를 통해 신에게 경배를 드렸다.) 삶의 고통을 누르기 위해 마약에 취했다고 한다. 

특히 고산지대인 페루지역 (예전의 잉카 제국이 자리잡았던 곳) 에서 관광객들이 고산병으로 힘들어하면 뭔가 약을 준다는게

그것이 코카인이라는 '카더라'도 있다고 하니... 그리고 그 넓디 넓은 영토와 풍부한 인적자원(혹은 착취)이 있으니 마약이 많이

생산될만한 영토라는 건.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중남미와 인접해 있고,  거대한 자본으로 마약을 취하고도 남을 만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인 세계 강대국인 미국이 있다.

미국과 중남미 사이에 오가는 수많은 마약들과 돈들은 아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정의의 사도는 없었다.


주요 인물은 이렇다.

CIA 출신 마약 수사 전담반 요원인 아트 켈러.

바레라 카르텔이란 이름으로 중남미 내에서 거대한 마약 사업을 벌이는, 보스인 아단 바레라.

아일랜드 계, 뉴욕 출신의 킬러인 칼란.

고급 매춘부 노라 헤이든.

아단과 아트, 노라 등을 하나로 묶는 인물이자 가톨릭 신부인 후안 오캄포 파라다.


이 다섯 명의 사람들이 얽히면서 크게 '악'으로 나타나는 마약 조직과 그에 맞서는 마약 수사팀으로 힘의 구도를 나눌 수 있다.

그렇지만 사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자세한 내용까지는 언급할 수 없겠지만, 이 세계에서 선과 악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수 있다. '명분 없는 전쟁은 없다.' 전쟁은 모두가 당연하게 여길만한 명분이 존재한다.

그 명분으로 인해 모든 일들이 용인된다.

간단한 인물 소개로 유추해 보건대 '악'이 아단 바레라고 '선'이 아트 켈러라는 이분법이 나타날 수도 있지만 

아트가 무조건 선의 편에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킬러인 칼란의 행동이 모두 '악'의 편에 있는 것도 아니다.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은 자신의 이해 관계 때문에 움직일 뿐이다. 

정부, 경찰, 재력가들, 심지어 교회까지도 이념이라는 이름 하에, 돈과 명예 혹은 권력이라는 이름 때문에 마약의 유통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인간적인 행태들을 묵인하고 만다. 


수많은 명분들만 있을 뿐, 정의의 사도는 없다.

최소한 이 소설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개의 힘에서 건지소서


니체는 힘에의 의지(will to power)라는 말을 했다. 종래의 형이상학에서 비롯된 이분법적인 구분은 존재하지 않고 단지

스스로 이상이 되려고 하고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 작용, 즉 " 힘 "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성경 구절 맥락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던 것일 수 있겠지만,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개의 힘'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주인공 아트는 끝까지 자신이 청렴하고 정당하게 행동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상황은 어렵기만 하다.

장애물 앞에서 몇 가지 무모한 일들을 행한다. 

사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개인 뿐만 아니라 경찰이며 정부 등, 사회 모든 것들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순전히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행동을 달리한다. 마치 스스로가 '正'이 되려는 것처럼.

그러나 이건 영원히 불가능하다.


소설이 끝났고 아트의 이야기도 끝났다.

그렇지만 사실 끝난 것이 아니다.

소설 속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았고 지금 현재, 우리들의 이야기도 끝나지 않았다.


힘들의 알력은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힘들은 이상하게 엉켜있다. 

우리는 단지 그 가운데서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어떤 것에게, 불온한 '개의 힘'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할 뿐이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소망을 조심스럽게 내뱉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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