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고해소 - 제3회 K-스토리 공모전 대상 수상작
오현후 지음 / 팩토리나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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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주시에서 세 명의 소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일명 ‘주파수 실종 사건’이라 일컬어지는 이 사건은 30년간 해결되지 못한 채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아니, 남아있을 뻔했다. 형사인 용훈에게 온 한 통의 편지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교도소로부터 온 편지에는 자신이 주파수 실종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악의 고해소》는 장기 미제 사건을 둘러싼 형사 용훈과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인 성준이 진실을 파헤쳐나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성준은 조각난 채 남아있는 기억의 편린을 짜맞추며 진실에 한 걸음씩 다가서고,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징계받을 위험에 처한 용훈은 편지의 발신지인 교도소를 찾아 범죄자들을 면담하며 편지를 보낸 인물을 추려나간다. 과연 편지를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진범일까, 아니면 목격자일까? 사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새롭게 눈뜨는 여러 진실 속에서 용훈은 혼란스러워한다.

한편 성준은 고해소에서 익명의 신자로부터 ‘자신은 범죄 사실을 목격하고도 30년 간 침묵한 죄인’이라는 고백을 듣고 충격에 휩싸인다. 곧장 따라 나가봤지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고해 내용은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성직자로서의 원칙과, 미제 사건의 해결 실마리를 쥔 이상 모른체할 수만은 없다는 정의감에 깊이 고민하는 성준. 급기야 어릴 적 완치된 줄 알았던 뇌전증까지 재발하며 신경쇠약에 시달린다. 용훈에게 사실을 모두 털어놓겠다고 마음먹고 도움을 청하지만, 교도소에서 죄수들을 조사하는 중이었던 용훈은 와달라는 성준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고민하던 성준은 혼자서라도 진실에 다가서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까면 깔수록 새로운 면모를 내보이는 양파처럼, 소설 속 사건은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새로운 국면을 내보인다. 주인공뿐 아니라 조연들의 캐릭터성 역시 도드라져 실제 있었던 일을 기록한 듯 생생하게 그려졌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 다만 고해소의 소녀가 좀 더 범죄에 깊숙하게 연루되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메인이 되는 사건에 깊숙이 얽혀있을 게 아니라면 굳이 소녀가 등장할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아쉬움은 있었지만 대체로 속도감 있게 읽혔고 짜임새가 괜찮은 소설이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가볍게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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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 끝없는 밤
손보미 외 지음 / 북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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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쯤, 한국 소설을 읽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의도적인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도서관에 가면 한국문학 섹션에 가장 먼저 들르고, 계절마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사 모으던 나는 온데 간데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언젠가부터 무거운 주제의식이나 삶을 파고드는 집요하고 뾰족한 집념 같은 게 불편했던 것 같기도 하고. 뭐 어쨌든, 그렇게 내가 멀어져 있는 사이 수많은 젊은 작가들이 등장했고 새로운 신이 열렸다. 놀라움.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한국문학은 놀라움이라고밖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삶과 문학 사이에서 진자운동 하며 각각의 고유한 파동을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한해 발표된 한국 단편소설 가운데 가장 첨예한 문제의식을 지닌 작품만이 선정된다는 《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접했을 때의 기분 역시 ‘놀라움’이었다. 만장일치로 대상으로 선정되었다는 손보미 작가의 <끝없는 밤>을 읽을 때는 멀미가 나는 것 같은 아찔함을 느꼈다. 순항하던 10억 원짜리 호화 요트의 전복. 주인공인 그녀는 남편의 지인 소유의 요트에 승선했다가 사고를 당하게 되고, 배 위의 사람들은 배가 요동칠 때마다 눈에 띄게 동요하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그러던 중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통증의 이유를 점차 깨닫는 그녀. 그 과정이 통렬해서, 읽는 도중에 멈출 수가 없는 기분이었다. 실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몰입의 즐거움이라니. 손보미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질 만큼 강렬한 끌림을 주는 작품이었다. 더불어 한국문학이 정말 많은 발전을 이뤘구나 싶어 정말 정말 기뻤다.

책에는 총 8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는데, 대상 수상자인 손보미 작가의 작품 2편과 우수작품상 수상자인 문지혁, 서장원, 성해나, 안윤, 예소윤 작가의 작품 1편씩 총 5편, 작년 대상 수상작가인 안보윤 작가의 최근작이 실려 있었다. 모든 작품이 저마다의 색채로 반짝거렸지만, 안보윤 작가님의 작품 <그날의 정모>가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ADHD를 겪는 아이 정모를 둘러싼 단톡방 괴롭힘, 고부 갈등 등을 다루고 있는데 지금 가장 주목도가 높은 이야기여서 더 관심을 끌었던 것 같다.

손보미 작가는 소감에서 “현실과 소설 속 세계의 격차를 느끼는 순간, 하나의 소설은 비로소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읽고 느끼게 될 착각과 오해, 그리고 (알게 될) 현실과의 격차, 그 격차를 통해 새롭게 이해하게 된 소설 속 세계,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한 이해를 품은 채 다시 바라보게 될 현실...현실과 소설은 그런 식으로 서로 상호작용하며 서로를 더 넓어지게 하고 깊어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말했다. 소설은 더 이상 이상적인 세계만을 그리지 않는다. 소설은 현실 그 자체이고 현실의 세계관을 넓혀주는 도구다. 이 책을 통해 나의 세계도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고 믿고 싶다. 아니, 기필코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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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단독주택 - 아파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단독주택에 살아 보니
김동률 지음 / 샘터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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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지인 찬스로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한 적이 있다. 남편, 나, 강아지 두 마리까지 네 식구. 겨울이라 옷보따리도 만만찮은 데다 강아지들 짐까지 보태니 이삿짐이 따로 없었다. 가는 동안에는 솔직히 너무 고생스러워서 ‘괜히 강아지들까지 데리고 왔나’, ‘그냥 며칠 여행하고 말 걸 그랬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대문을 열고 들어가 강아지들을 마당에 내려놓은 순간 나는 ‘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도심에선 대문 밖으로 나가면 무조건 ‘목줄 필수’ 였지만 여기선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이곳저곳을 냄새 맡고 뛰어다니고, 나에게 왔다가 남편에게 갔다가, 또 어디론가 쏜살같이 뛰어다니는 강아지들을 보며 난생 처음으로 단독주택에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렇다고 내가 단독주택에 호의적인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나는 평생을 아파트 혹은 오피스텔에서 살았다. 단독주택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릴 때 경험이 너무 좋아서 다시 단독주택을 찾는다거나 집에 대한 로망이 있어서 실현을 위해 단독주택을 선택하거나 둘 중 하나던데, 나는 살아 본 경험이 전무하니 향수에 젖을 일도 로망을 지닐 일도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아파트, 오피스텔. 얼마나 편한가? 관리비만 내면 모든 걸 다 알아서 처리해준다. 귀찮게 화단을 손볼 일도 고장난 무언가를 고칠 일도 없다. 기껏해야 집 안 전구를 갈거나 하는 게 고작이다. 귀농, 귀촌, 혹은 주택살이를 꿈꾸는 친구들에게 항상 말해왔었다. “그러니까, 나이가 들어도 난 아파트에서 살 거야. 단독주택 가면 관리할 게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텐데 그걸 왜 해?” 이런 염세주의자도 변하게 한, 강아지들의 행복해하는 얼굴이라니.

궁금했다.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날 것 그대로의 이야기. 잡지에 나올 것 같은 으리번쩍한 인테리어가 있는 집이 아니라,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집의 이야기. 여러 책 중 고민하다가 《그래도 단독주택》을 먼저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 책은 김동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교 교수가 강남 요지의 아파트에 살다가 북한산 기슭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면서 그 집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단독주택에 살아 보지 않고서는 그 맛을 누구도 모른다.”며, 아파트에 살면 절대 알지 못하는 단독살이만의 매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아파트를 처분하고 단독주택으로 옮긴 것이 인생 최고의 결정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단독주택의 어떤 점이 저자를 매료시킨 것일까?

저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개 섹션으로 나누어 계절별로 겪어내야(?) 하는 단독주택만의 애환과 매력을 담아내고 있다. 봄에는 마당을 가꾸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고 여름에는 잡초와 전쟁을 치러야 한다. 가을에는 낙엽을 쓸고 겨울에는 눈을 치워야 한다. 게다가 길고양이도 어느 정도 돌봐줘야 한다(!)고. 겨울이 되면 물이 부족해 죽는 경우가 많아서 물을 챙겨주다 보니 사료도 챙겨주게 되고, 사료를 주다 보니 엉성하게라도 박스집을 만들어 주게 되고...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 힘든 주택살이를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이 든다. 무엇을 위해 주택에 살아야 하는가.

그가 단독살이의 고생을 자처하는 이유는 노스탤지어 때문인 것 같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며 꽃밭에서 다양한 꽃을 키우던 기억, 마당에서 자치기와 땅따먹기, 공기놀이를 하던 기억 등이 그로 하여금 다시 단독주택을 찾게 한 것이 아닐지.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사람 냄새가 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단독주택에 살면 자연스레 인사를 하게 되기 때문에. 기구나 장비를 서로 빌릴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봄날에는 꽃씨도 나누고, 가을에는 골목에 쌓인 낙엽을 같이 쓸고 겨울에 눈이 오면 집 앞 눈도 치워야 하니까. 단독주택은 이름만 ‘단독’이지,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주택이니까. 저자가 하고 있는 이 ‘개고생’을 읽으면서 오히려 마당 있는 집에 대한 호기심이 더 생겼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나는 뭐든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니, 언젠가 갑자기 마당 있는 작은 집을 월세로라도 얻어 살아보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렇게 되면 이 책을 꼭 들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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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혼술이다 - 혼자여도 괜찮은 세계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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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테스트 중에서 ‘혼밥 레벨 테스트’라는 게 있었다. 가장 난이도가 낮은 1단계는 ‘편의점에서 밥 먹기’, 가장 난이도가 높은 9단계는 다름 아닌 ‘술집에서 술 혼자 먹기’였다. 혼밥은 어렵지 않은데 혼술은 왜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까? 그 원초적인 궁금증이 나를 이 책, 《인생은 혼술이다》로 이끌었던 것 같다.

저자는 쉰 살에 조기 은퇴하고 싱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일본인 여성으로, 기자로 재직했던 시절 사케를 주제로 연재 기사를 맡게 되면서 벼락치기로 사케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밤이면 밤마다 사케를 마시는 나날들이 이어졌는데, 문제는 같이 마실 사람이 점점 없어졌다는 것.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혼술을 해보기로 결정하고, 대부분이 아저씨들인 술집 안으로 ‘여자 혼자’ 들어가는 뻘쭘함을 뚫고 첫 혼술에 도전하게 된다. 선배와 한 번 가봐서 사장님과 안면이 있던 술집에서 ‘혼술 수행’을 계속할 용기를 얻은 저자는 그 이후 다른 술집을 찾아다니며 계속해서 혼술에 도전한다.

혼술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민망하거나 창피한 경험, 실패하고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보는 경험도 하면서 저자의 혼술력은 점차 성장한다. 물론 거기에는 수많은 노력이 수반되었다. 무려 열두 가지나 되는, ‘혼술의 비기 12조’가 그것이다.

① ‘혼술 손님이 많은 곳’을 골라라 ② 1인용 자리에 앉아라 ③ 우선 조용히 가게 분위기를 관찰하라 ④ 할 게 없더라도 스마트폰은 만지작거리지 마라 ⑤ 첫 술은 빨리 주문하라 ⑥ 술안주는 천천히 온 힘을 다해 주문하라 ⑦ 술과 요리에 집중해서 맛보라 ⑧ 먹은(마신) 다음에는 고마움의 뜻을 담아 감상을 말하라 ⑨ 할 게 없으면 다른 손님의 대화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라 ⑩ 대화란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터득하라 ⑪ 우선 바 테이블 너머에 있는 술집 주인과 대화를 시작하라 ⑫ 낯선 옆 사람의 행복을 빈다, 그게 바로 혼술의 행복이다

아니 근데, 굳이 이렇게까지 노력하면서 혼술을 해야 하나? 집에서 마셔도 될 것 같은데? 라는 말이 입에서 쏟아져나오기 직전,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혼술을 꼭 해봐야 한다고. 그건 틀림없이 당신의 인생을 바꿔줄 거라고. 좋은 방향으로, 불안이 없는 쪽으로! 혼술을 할 수만 있다면 인생이 열릴 거라고 말이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어른이었지만, 성공하고 어른이 되어도 ‘혼자가 된 순간 아무 데도 못 가는’ 자신을 한탄스러워한다. 혼술 수행은, 저자에게는 내려놓는 연습이자 나를 지우고 주변을 제대로 보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혼자 유유히 사람들 속에서 공기처럼 섞여드는 연습. 진정 하고 싶은 걸 찾아가는 과정. 술은 매개일 뿐, 이를 통해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사는 방법을 익히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를 내려놓고 시야를 넓게 해볼 수 있는 경험으로써의 혼술이라면, 나도 훌쩍 아무 곳에나 들어가서 가볍게 한 잔 걸치고 싶다. 조용히 공기처럼 섞여들어 진정한 의미의 혼술을 즐길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당장은 용기가 나지 않지만, 올해가 가기 전엔 꼭 혼술에 도전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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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핑, 별게 다 행복 - 내일은 내일의 파도가 온다 아잉(I+Ing) 시리즈
박수진 지음 / 샘터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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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좋았던 호시절의 기억은 대체로 희미한 빛깔이다. 그러나 고통으로 가득했던 시절의 기억은 놀라울 정도로 또렷하다. 자잘한 좌절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인 날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다 보면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만다.

'이건 살라는 건가, 죽으라는 건가', 하늘이 원망스럽기까지 한, 그런 날들. 내게도 있었고 누군가에게도 있었을 저마다의 암흑기. 그 암흑의 시기를 서핑으로 이겨낸 사람이 《서핑, 별게 다 행복》이라는 책을 냈다. 책방 양도 계획 무산, 조울증 발병 등 안 좋은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을 때 저자를 일으켜 세운 게 다름 아닌 서핑이었다고. 저자에게 더없는 좌절을 주어 떠나고 싶은 곳이었던 남해, 그 바다에서 저자는 서핑을 배우며 삶의 안정을 찾게 된다.

“서핑이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어 오면, 아직도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래도 확실한 한 가지는, 적어도 물 위에서는 모든 걱정을 잠시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각을 비우고 몸을 움직이며 몸과 마음 구석구석 씻고 다시 태어난다.”

내가 수영을 좋아하는 이유도 똑같다. 물에서는 모든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 바깥은 시끄러워도 물 속은 고요하고 조용해서, 오롯이 수영하는 행위에 집중하며 잡념을 잊어버릴 수 있어 좋다. 저자 역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불안정한 삶 속에서 서핑을 시작한 것만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서핑에서 수십 번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던 경험이 저자로 하여금 인생에서 넘어졌을 때도 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길러준 건 아니었을까?

책을 읽다 보니 시원하게 파도를 가르며 서핑하는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좁고 기다란 판자 위에 앉아 둥둥 떠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니, 때때로 인생은 싱거울 정도로 참 쉽지 않은지." 저자가 배운 건 서핑이었지만 서핑은 저자에게 인생을 알려주었던 것 같다. 인고의 시간이 주는 교훈과 의외의 행복감. 대자연 속에서 오롯이 나로 서있는 즐거움...서핑은 참 매력적인 운동이란 생각을 해본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서핑을 배워봐야겠다. 인생을 대하는 자세도 배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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