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발한다 - 드레퓌스사건과 집단히스테리
니홀라스 할라스 지음, 황의방 옮김 / 한길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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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발한다'.이 책은 19세기 후반 프랑스를 뜨겁게 달구었던 드레퓌스 사건을 매우 자세하고 또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는 작품이다. 너무나도 강렬한 이 작품의 제목은 1893년 로로르지에 기고한 에밀 졸라의 글 제목에서 따온 제목일테다.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의 진범에 대한 비밀을 밝혀내며 격노한 감정을 토해낸 바 있는데,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에는 불의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비판과 사건의 진실을 향한 열망이 담겨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드레퓌스 사건'이 과연 어떤 사건인지, 그리고 에밀 졸라는 과연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아두는 것을 추천한다.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쌓은 뒤에 책을 읽는다면 책의 내용에 더욱 몰입을 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래서, 과연 드레퓌스 사건이란 무엇인가?


드레퓌스 사건을 정말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드레퓌스사건은 가히 서양사에 크나큰 파문을 던진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프랑스의 포병대위인 드레퓌스 대위는 명백한 증거도 없이 스파이로 몰리게 되어 반역죄를 선고받는다. 단지 드레퓌스 대위의 필체가 프랑스 정보요원이 빼돌린 명세서의 필체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더불어 드레퓌스 대위가 '유대인'이라는 사실도 그가 억울한 누명을 쓰는 데 크나큰 영향을 주게 된다. 드레퓌스 대위의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진실을 알았던 여러 사람들의 노력 끝에 진범인 에스테라지 소령이 구속되었으나, 군부는 그들의 신뢰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 하여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다. 결국,에스테라지 소령은 풀려났고 이에 격노한 에밀졸라는 로로르 신문에 한 글을 기고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나는 고발한다'이다.

한 마디로, 드레퓌스 사건은 잘못 자행된 국가권력에 의해 하나의 인권이 처참하게 짓밟힌 조작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긴장감있게 풀어내고 있다. 논픽션인 책이지만 마치 소설을 읽는 것만 같은 표현과 비유가 등장한다. 작가만의 드라마틱한 서술방식으로 인해 '이게 실화인가? 아님 소설인가?'라는 생각이 문뜩 들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이 책은 '실화'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왜 드레퓌스 사건에 주목을 해야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알아서 우리가 무엇하나라는 매우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라는 뜻이다.


이 책의 출판사인 한길사의 출판사 서평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드레퓌스 사건은) 10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지금 우리나라 신문의 지면을 장식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슬프게도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기만과 혼돈의 사기극이다.

한길사 출판사 서평

위 문장이 바로 드레퓌스 사건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드레퓌스 사건과 비슷한 사건들. 한 사람의 인권을 처참하게 밟아 버리는 정부. 진실에는 관심이 없는 언론. 진리를 밝혀내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 지식인. 이 모든 것들이 21세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지금 당장 뉴스를 보더라도 가슴이 들끓는 사건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한숨이 나오는 언론의 행태들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드레퓌스 사건으로부터 먼 미래를 살고 있는 우리이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들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들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드레퓌스 사건을 알아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드레퓌스 사건을 통해 '반성'해야하는 이유이다.


이 책의 옮긴이는 책 맨 뒷편에 수록된 옮긴이의 말에서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드레퓌스 사건은 '진실과 허위의 문제' 이고, '법의 문제' 이며 '안보와 인권 사이의 문제'라고. 이 드레퓌스 사건은 이처럼 사회에 수많은 문제점들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닌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드레퓌스 사건이 이 사회에 던지구 있는 그 많은 문제점들 중에서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지식인의 역할'이다.


지난 학기 철학 교양 시간에 교수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신 적이 있다.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식인의 정의는 아직 학식이 부족하디 부족한 내가 단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드레퓌스 사건 당시 드레퓌스가 스파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말도 안 되게 사소한 이유와 그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을 가지고 그에게 반역죄를 선고한 이들도 분명히 그 당시의 '지식인'이라고 불리우던 지배 계층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진범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던 자들도 군부를 이끌던 '지식인'의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지식인이란 과연 무엇인가? 좋은 대학을 나오면, 혹은 박사학위를 따면 지식인이 되는 것인가? 높은 사회적 권력을 가진다면 지식인이 되는 것인가? (지금도 그렇고, 과거에도 그렇고) 우리 사회가 통념적으로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자행하는 만행들을 보면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결국, 진정한 지식인의 필요조건은 좋은 학벌도 학위도 아닐 것이다. 진리와 진실을 사랑하는 용기이다. 마치 에밀 졸라-그리고 그와 뜻을 같이했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진리를 밝히고, 진실을 소리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에 대한 비난을 모두 감수할 수 있는 용기가 바로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가 아닐까싶다. 겉만 번지르르한 모습으로 있어보이는 말들만 반복하는 학벌좋고 권력이 센 사람들의 모습은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지식과 진리, 진실을 모두 존중하고 아끼며 이들을 당당하게 소리칠 수 있는 자세가 바로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이리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식인에 대한 자세와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정의가 모호하다. 단순히 좋은 대학을 나오면 지식인이라고 인정해주는 분위기이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본다면, 이러한 대한민국의 현 분위기가 19세기 후반의 프랑스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쉽사리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식인에 대한 진정한 고찰이 없는 현사회에서 드레퓌스 사건과 같은 억울한 사건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래서 이 책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은 메시지는 '지식인이란 무엇인가'가 아닐까 싶다.


앞서 계속해서 반복했다시피 지식인의 역할은 진리와 진실을 사랑하는 용기를 행하는 것이라고 나는 정의 내렸다. 이것은 나만의 정의이자 나만의 해석일테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는 스스로 지식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를 내려보았음 한다. 더 나은 세상, 그리고 모두가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는 그러한 진중한 고찰이 필요할테니 말이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말 그대로 가슴이 뜨거워진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더불어 진정한 이 시대의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그리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 가야하는가와 같은 심도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여전히 이 시대에는 수많은 혐오가 숨쉬고 있다. 그 옆에서는 셀 수 없는 편견들도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다. 드레퓌스 사건을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하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19세기 후반의 시대와의 공통점들이 많다. 드레퓌스 사건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 이 아니라, 우리의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일 것이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지식인이 될 것인가?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것인가 아님 진정한 '지식인'이 될 것인가? 책은 수많은 질문을 내게 던지는 듯 하다. 이 수많은 질문에 대한 해답은 내가 찾아야 하겠지만 그 방향성에 대한 약간의 해답을 책은 확실하게 주고 있는 듯하다.


뜨거운 여름날, 뜨겁게 읽었던 '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의 한 마디로 본 포스팅을 마무리한다.

“나는 한 정직한 인간으로서

온 힘을 다해 큰 소리로

진실을 외칩니다.

진실은 지하에 묻혀서도

자라납니다. 무서운

폭발력을 축적합니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에는

세상 모든 허위를 휩쓸어

버릴 것입니다.”

BY. 에밀 졸라


드레퓌스 만세! 정의 만세! - P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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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수수께끼 - 개정판 마빈 해리스 문화인류학 3부작 1
마빈 해리스 지음, 박종렬 옮김 / 한길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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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빈 해리스의 <문화의 수수께끼>. 이 책은 한 마디로 '문화 인류학'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 마빈 해리스는 유명한 문화인류학자이기도 하다.

사실 문화 인류학이 친근한 학문은 아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문화 인류학은 친근하지만은 않은 장르임이 분명하다.

간단하게 정의내리자면 문화 인류학이란 인류의 생활과 역사를 문화의 측면에서 분석하는 학문이다.

책을 읽기 전 먼저 '문화 인류학'의 정의부터 찾아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 인류학이란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추구하는 것인지에 대한 감이 오지는 않았다.

이러한 문화 인류학을 이 책은 다양한 사례로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사실 우리는 오늘날 서구적 관점에서 문화를 해석하곤 한다. 그리고 낯선 문화는 '미개한 문화'로 간주되곤 한다. 우리의 상식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령 특정 종교에서 돼지를 혐오하는 문화들을 바보같은 짓이라고 판단하는 일들이 대표적인 예시일 것이다.

<문화의 수수께끼>는 그렇게 우리가 '미개한 문화'로 간주했던 문화들을 과학적 증거들과 지리학,생태학적 증거들을 사용해 분석하고 납득시키는 것이 주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감히 우리는 그 어떤 문화도 미개하다고 얘기할 수 있다.

각각의 문화뒤에는 그 문화가 탄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문화의 수수께끼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시선에서 '미개한' 문화의 궁금증들을 하나하나씩 타파해나간다.

그리고 각각의 문화들을 풀어냈던 코드들은 전혀 상관 없을것만 같은 문화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데 도움이 된다.

암소숭배로 돼지혐오와 돼지숭배를 설명하고, 돼지 숭배문화를 통해 극단적으로 가부장적인 부족의 사회체제를 설명해나간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 책은 그 모든 문화적 코드들을 사용해 전투적 메시아니즘을 설명하며 마지막으로는 마녀사냥에 대해 설명한다.

얇지만 끈끈한 줄로 이루어지듯, 서로 다른 문화들은 그렇게 연결되어 설명되어진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챕터는 제 9장 '빗자루와 악마연회'였다.

몇 세기동안 서양을 뒤 흔들어놓았던 마녀사냥. 왜 사람들은 마녀의 존재를 믿었을까? 마녀사냥은 왜 그토록 많은 희생자를 낳을 수 밖에 없었을까?


과거의 사람들이 마녀의 존재를 믿었던 이유가 단순히, 그들이 순진해서 혹은 그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이 마녀사냥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정치적인 분석과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과거, 사회적인 혼란이 만연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돌릴 수단이 바로 '마녀사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녀사냥의 화살은 오직 신분이 낮은 사람들에게만 향했다. 마녀사냥으로 지목된 사람들은 악마연회에서 본 다른 인물들을 입으로 뱉어내야만 했고, 만약 그자리에서 귀족의 이름을 말한다면 그들은 더 심한 고문을 당하게 되었다. 결국에 이 마녀사냥은 상류층의 지위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혐오의 시선은 돈이 없고 힘이 없는 사람들끼리 던져지게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마녀사냥은 우리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하나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아니라, 가슴아픈 인류의 역사이다.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 한 마디로 '인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 책을 추천한다. 인문학을 사랑하고, 문화를 해석하고 분석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은 쉬운 책은 아니다. 다소 난이도가 있는 책이며 어느정도의 배경지식이 수반되었을 때 더 쉽게 읽혀지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가 즐거워지는 책임은 분명하다. 그건 내가 장담할 수 있다! 많은 것을 느끼고, 알아갈 수 있게 해준 책이었다.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돌아보고, 우리가 타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었던 것 같다. 또한, 문화를 분석해내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그 문화들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는 따듯한 마음이 우리의 삶에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마빈해리스의 문화 인류학 도서는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식인문화의 수수께끼>가 그 주인공이다. 다음 달에 이 책을 읽어 볼 예정인데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마녀광란을 통해 중세 후기 사회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교회와 국가에서 인간의 형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에게 전가시켰다는 데 있다.

(중략)

성직자와 귀족들은 도처에 흩어져 있지만 가나해내기 힘든 적들에게서 인류를 보호해주는 위대한 보호자로 등장했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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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와 함께한 시간
제임스 캔턴 지음, 리모 김현길 그림, 서준환 옮김 / 한길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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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수리나무와 함께한 시간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자연을 담은 힐링 에세이다. 자연을 담은 글 담게 글이 참 편안하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신없는 나의 삶에 피톤치드 향을 얹어준 느낌이랄까?

이 책의 화자는 상수리 나무 옆에서 큰 위안을 얹고, 또 삶의 진리를 깨닫고, 더불어 나아갈 용기를 얹는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며 상수리 나무에게서 많은 위로를 얻게 되었다. 누구든지 이 책을 읽는다면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책을 읽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수리 나무가 우리에게 이렇게 위안과 위로를 안겨 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수리 나무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우리에게 기댈 여유를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해아 한다. 사실 요즘 나는 '열심히 살지 않으면, 바쁘게 살지 않으면 지는거야!' 혹은 '지지 않기 위해서는 죽기살기로 열심히 살아야 돼'라는 다소 무서운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상수리나무는 굳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어쩌면 변화하지 않아도, 움직이지 않아도, 조급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상수리 나무는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들 그런 경험 하나씩은 갖고 있을테다. 아무말도 없이 내 말을 들어준 누군가가 조언 100마디를 해준 사람보다도 더 큰 위로가 되었던 그런 경험. 말을 그저 듣기만 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는 상대방을 보면서 오히려 큰 안정감을 느꼈던 그런 경험. 이 책이 나에게는 그런 존재였다. 직접적인 위로를 전해주고 있지 않지만, 그저 책이 풍기는 그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 (일러스트가 그 분위기에 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ㅎㅎ) 가 나를 어루 만져 주었던 것 같다.



5월 한 달동안 정말 말 그대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었다. 내 몸은 모든 걸 잘 해내고 싶다는 내 의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 서러운 날들이 요즘 유독 많았던 것 같다. 소위 대2병이라 불리는 감정탓인건인지... 하여튼 종강을 앞두고 있는 요즘 무기력함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그런 무기력함 속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상수리나무와 함께한 시간.

책의 표지가 참 좋았다.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이 되는 것만 같은 표지.

사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도 전에 책의 표지만 몇 분동안 바라보았다. 내가 자연풍경을 -아니 자연풍경과 같은 거창한 단어도 사용할 것 없이- 내가 하늘을 바라보았던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중고등학생때만 하더라도 친구들과 하늘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나의 일상이었는데 뭐가 그리도 바쁜지, 뭐가 그리도 조바심이 나는 것인지 나 자신에게 하늘 볼 시간조차 주지 않는 나 자신을 그 순간 발견할 수 있었다.



꼭,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어보시길...! 책 속에서 가득 느껴지는 피톤치드의 향, 흙의 냄새, 방금 비에 젖은 풀의 내음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이 책이 여러분을 자연의 중심으로 이끌테니 말이다. 상수리나무의 품에 안겨, 그의 오돌토돌한 감촉을 느끼며, 귓가에서 울리는 새 소리를 음미해보길 바란다.


상수리나무의 품에 ‘안겨'앉아 있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당신은 당신이 속한 인간세계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와 뭔가 다른 존재가 된다.

그것은 어쩌면 상수리나무와 비슷한
존재 형태일 수도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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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억 - 철학자 김진영의 아포리즘
김진영 지음 / 한길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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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의 세상에 발을 담근다는 것.

누군가는 타인의 세상에 무관심할테고, 

타인의 세계에 발을 담그는 행위 자체의 의미를 부정할 수도 있으나,

필자는 타인의 세계 속에 숨겨져 있는 그 무궁무진한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에 큰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다.


이 책은 작가의 삶이 그대로 녹아 내려 있다.

작가의 독일 생활기, 작가의 아우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작가의 사랑까지.

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이 그대로 녹아있는 아포리즘이 가득 담긴 이 한 권의 책.

짧은 문장 속 단어 하나하나는 곧 작가의 세월이자, 시간이다.


자칫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문장들.

하지만 그 문장들을 곱씹을수록 헤아릴 수 없는 깊이감이 느껴진다.

이것이 <사랑의 기억>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책의 힘, 그리고 글의 힘이 줄어들어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불어 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줄어들어 가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글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던 요즘,

타인의 세계로의 문을 열어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글은 그 의미와 영향이 크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다다라 본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세계속으로 나는 빠져 들어갔다.

저자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체험한만큼, 나의 세계도 그만큼 확장되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을 누군가의 세계도 딱 그만큼 확장되길 나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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