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뇌
로베르 클라르크 지음, 이세진 옮김 / 해나무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내가 20세기에 태어나서 21세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는 항상 감사하고 있는데,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일단 민주주의라는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팍스 아메리카나이긴 하지만) 쓸데없는 전쟁으로 피를 보지 않아도 되고, (초강대국 미국이란)세계정부 하에 어느정도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물론 여기엔 반발하는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반미주의자라던가. 그러나 역사적으로 봤을때, 이렇게 적은 피를 흘리고 평화가 유지되던 때도 별로 없는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피 안보고 비교적 평화롭게 여성의 인권까지 동등하게 보장해 주려는 나라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두 번 째는 역사상 위대했던 천재들이 구축해 놓은 사상과 인프라와 역사 덕에 본 받고 자극받을 만한 것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한다. 만약 내가 19세기에 태어났다면 전화나, 전기, 전등의 혜택을 받지 못했을 거고, 17세기에 태어났다면 모짜르트나 쇼팽의 음악을 몰랐을 것이다. 물론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도 몰랐을 거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도 몰랐을 거다. 이런 천재들이 역사상 존재해 주었고 그들의 업적을 남겨주었기 때문에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몇 세기나마 늦게 그 발자취를 한번 훓어볼 수 있고,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세 번 째로 감사하는 것은 내가 천재가 아니었다는 점인데, 안 그래도 겸손을 모르고 한 번 띄워주면 붕붕 떠서 내려오지 못하는 오만방자한 성격의 내게 천재적 기질이라도 더해졌으면 분명 세상 무시하고 염세주의에 빠져 일찍 생을 마감했을지 모른다. 

로베르 클라르크의 '천재들의 뇌'는 저자가 나름의 필터로 걸른 천재 5명-모짜르트, 뉴턴, 다윈, 피카소, 아인슈타인-의 업적 위주 전기적 이야기와 저자가 조사하고 분석한 결과들을 적당히 버무려낸 책이다. 저자가 말하는 천재의 기준은 무엇보다 '직관'과 '파고드는 인내력'-일종의 편집증-같다. 천재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다. 양적으로 우수한 천재와 질적으로 우수한 천재가 그것인데, 양적으로 우수한 천재라 함은, 다른 사람이 몇년에 걸쳐서 이룩할 것을 단시간에 이룩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질적인 천재라 함은 다른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룩하지 못할 업적을 쉽게 이루어내는 사람이다. 양적으로 우수한 천재가 해내는 업적은 시간 절약과 효율성을 가져다 주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시간이 주어진다면 언젠가는 이루어내는 종류의 것이다. 그러나 질적으로 다른 천재는 그 사람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에디슨의 전구는 그가 아니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언젠가 발명했을 물건이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그가 아니면 성립되지 않았을 이론이라는 거다. 저자가 고른 천재는 아마 후자인 모양이다. 그리고 후자가 되기 위한 결정적 조건이 바로 직관이다. 

천재들의 뇌를 통해 그 뇌 구조를 조금이라도 엿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버리는게 낫다. 이 책은 제목과 내용이 매치가 되지 않는 책 중의 하나다. 천재들이 어떻게 뇌를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저자는 시종일관 '결국은 아무도 모른다, 알 수 없다'는 식이라서 다소 실망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얻는 것은 일단 있다. 저자가 고른 다섯 천재들의 짤막한 전기와 일상생활을 어떻게 영위했는지 단면적인 모습을 볼 수 있고, 이디오 사방(정신장애가 있지만 특정부분에서는 놀라운 능력을 소유한 자폐아들)의 모습들과 그 예도 알 수 있다.

천재들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편집증을 가지고 있다. 자폐아들의 공통된 결점중 하나가 타인과 감정교류를 할 수 없다는 부분인데 천재들도 이런 증상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모짜르트는 하나뿐인 누이가 죽는 순간에도 옆방에서 연주를 하고 있었고, 엄마가 죽었어도 크게 슬퍼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음악이 전부였기 때문에 타인의 죽음이 감정적으로 슬퍼해야하는 일인지 구분하지 못한 모양이다. 뉴턴은 평생 친구나 애인도 한 명 없이 혼자 살다 죽었다. 아인슈타인도 이혼을 세 번이나 했다. 만약 이들이 천재들이라서, 그래서 자기만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르시스트라서 그랬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분명 나는 이런 천재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천재가 아니라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굳힐 수밖에. 나는 살아있는 인간이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풍부한 감정 교류를 하면서 웃고, 울고, 즐기며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업적은 분명 감사할 일이고, 주변에 천재 친구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고 느낀다. 뭐 또 하나 알 수 있는 점은 천재들은 확실히 오만방자했고, 불타오르는 살다가 일찍 죽는 사람이 많았다는것 정도다. 

하나 높이 평가할 것은, 이 책을 쓰기 위해 천재들의 업적에 대해 참으로 많이 공부했을 저자의 노고다. 책 하나 쓰기 위해서야 그런 노고쯤은 대수롭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저자라는 입장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물론 뉴턴과 다윈같은 과학자들의 업적들에 대해 많이 조사하고 공부했으니 박수. 나름대로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를 해주기 때문에 이 책만 봐도 그들의 대강적 이론 개요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