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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 -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
소재원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소원』
- 2010, 『희망의 날개를 찾아서』의 개정판
요즘 한창, 엄지원 설경구 주연의 영화 <소원>이 인기다. 마음 아프고 슬퍼할 것을 알면서, 먹먹하고 답답해질 것을 알면서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러 간다. 나는 영화 대신 출간일에 바로,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은 작가의 말이 아닌, 한 아버지의 추천사로 시작한다. 그는 바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나영이 사건'의 나영이 아빠였다.
'대변을 대신하는 주머니를 떼기 전, 아이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렸다. 매일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친구들과 놀다가 괴물에게 쫓기는 꿈이었다. 친구들을 모두 숨겨놓고는 마지막에 자신만 괴물에게 붙잡혀가는 꿈에 괴로워했다.
하루는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 나쁜 아저씨 징역 얼마나 받았어?" ' (7쪽, 추천사 중)
난 책의 맨 첫 구절에서부터 울컥했는데, 심지어 글을 쓰는 지금에도 저 구절은 날 울컥하게 만든다. 나영이 아빠는 나영이에게 "12년 받았으니 10년 조금 넘게 더 감옥에 있어야 나와."라고 말한다. 아빠의 대답에 나영이는 "쳇!"이라고 짜증과 공포를 드러내며 그때까지 자신이 힘을 길러야겠다고 대답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딸 아이의 입에서 '징역'과 '성폭행'이라는 단어들이 나오는 것에 마음 아파하는 것도 모자라, 나영이 가족은 10년 정도 후면 나올 성폭행범을 생각하며 긴장과 공포에 휩싸여야 한다. 나영이가 지금의 내 나이가 되기도 전인, 갓 스물 정도가 되었을 때에 그런 잔인한 성폭행 범죄를 저지른 자가 다시 사회로 나온다니. 끔찍하기 따로없다. 한 번도 모자라서, 이제 보복 범죄까지 신경쓰며 두려워하고 피해 다녀야 할 판이다. 심지어 그는 나영이에게 죄를 저지를 때 이미 재범자였다. 이제 우리의 분노의 화살은 범죄자만을 향하지 않는다. 입법부와 사법부 모두를 향하게 되었다.
이 책, 『소원』을 읽으며 많은 양의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에는 분노의 감정과 증오, 연민과 슬픔, 두려움 등의 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만 부정적 감정만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안 좋은 감정만 가득했다면 가슴은 답답하고 먹먹했을지언정 눈물은 안 났을 지도 모른다. 내가 책을 읽으며 펑펑 울었던 이유는, 한 사건의 참혹함과 피해자 가족의 처절함이 드러나는 것과 동시에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피해자 가족의 '회복'측면이 작품에 잘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이 책을 통해 다시, 새롭게 깨달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언론을 통해 수많은 성범죄를 접하였지만 나는 그 후를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고 하는 게 더 옳은 표현일 것이다. 이 책은 사건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서서 사건이 야기한 그 다음 사건, 그 뒷이야기를 보여준다는 데에서 한층 깊은 이해를 가능케 한다.
이번에 깨닫게 된 사실들.
1) 일반적으로 발생한 어떤 성폭행 범죄 사건에 대하여, 성폭행범은 한 사람이었고 직접적으로 범죄에 당한 사람도 한 사람이지만 피해자는 결코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
2) 그러나 피해자들끼리도 서로 상처 입히고 상처 받을 수 있다.
사고 이후, 아이가 가족의 사랑마저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상황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사회에 대한 불신이 가득해서일까. 철저하게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과 도망치고 다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사람, 그리고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부여잡은 채 견디는 사람. 결국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상처는 회복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려 노력한 '엄마'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작품에서 날 울리는 인물은 아빠였지만 감동을 준 인물은 엄마의 존재였다. 자신을 거부하는 딸에게 다가가기 위해 아이의 시선이 되어버린 아빠도 아빠지만, 늘 있던 그 자리에 서 있는 엄마는 정말이지 든든했다. 하지만 우열을 가려 무엇하겠는가. 부부가, 아빠와 딸이 서로 주고 받는 편지를 통해 이 가족은 조금씩 상처를 회복해가고 있었다. 흉터는 남겠지만 상처는 아문다는 그 흔한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 보아도 될까?
참으로 결론내리기 어려운 작품이다. 소설은 마무리를 짓지만 현실은 여전히 아픈 채로 흘러가고 있기 때문일까. 나영이 아버지의 "잊으려 하면 안 돼요. 이겨내야지."라는 말씀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는 모두 잊어서는 안 된다. 잊으면 이겨낼 수 없게 된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다.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시는 이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
<한 구절, 한 구절>
'그놈은 알고 있을까?
지윤이가 한 달 동안 다리에 기브스를 했을 때, 차라리 자신이 평생 절름발이로 살 테니 두 번 다시 아프지 않게 해달라는 애탄 기도를.
그놈은 알고 있을까?
벌써부터 지윤이가 장난스럽게 누군가와 결혼하겠다 말할 때면 못내 아쉽고 서운한 감정이 밀려들어옴을.
그놈은 알고 있을까?
세게 안으면 부서질까, 혹여 숨이 막히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있는 힘껏 안아주지 못하고, 자신보다 더 키가 클 때만을 기다리던 엄마의 마음을.
그놈은 알고 있을까?
엄마라는 말이 듣고 싶어 이도 제대로 나지 않은 지윤이에게 하루에 수만 번도 더 엄마라는 소리를 듣게 했음을. 지윤이에게서 엄마라는 소리가 나오는 그 순간을 수첩에 적어놓고 평생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환희의 순간을.' (61쪽)
"인연은 운명이 정하는 거야. 각자의 길이 따로 있는 법이지."
당신 이 대사를 듣고 내게 말했어. 인연은 운명이 정하고 우리는 그 운명으로 가족이 되었다고. 각자의 길이 있는 사람들 중에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람을 우리는 운 좋게 만나 함께하게 된 희박한 확률의 사람들이라고. (177쪽)
'이것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그것이 이루어진 뒤 우리는 얼마나 감사를 했을까?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고 살아가지는 않았을까? 타인에게, 자신에게 감사가 부족한 우리였다. (183쪽)
"파도가 잠잠해지면 배는 다시 출항해요. 그이도 그렇다 믿어요. 잠시 이성이 항구에 정박한 것이라고. 파도가 잠잠해지면 다시 바다로 돌아올 거라고. 나는 믿어요. 지윤아빠를, 지윤이를, 우리 가족을." (184쪽)
'

작가분이 서인국 닮으셨다. 엄청 잘생기셔서 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