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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4
선자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8월
평점 :

주문을 외우자 돌이킬 수 없는 계약이 시작되었다!
계약자에게 제시할 내용은 처음부터 이 녀석으로 정해져 있었다.
이 애를 없애 주세요!
아주 자극적인 띠지 카피 문구가 눈에 띤다. 나름 청소년문학인데 대놓고 없애 달라니. 당혹스럽기도 했다. 뭐 '없애다'라는 표현이 꼭 죽인다는 뜻만 있는 것은 아니니 넘어가기로 했다. 만약 내가 청소년이었다면 딱 좋아할만한 스타일의 소설 장르였다.
이 작품은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인 소희와 알음이 귀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폐가에 들어가는 것에서 시작된다. 짝사랑하는 남자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폐가에 들어가 귀신과 계약을 맺을 생각하는 소희를 알음은 어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이없고 어려운 부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알음은 소희의 부탁을 들어준다. 소희는 소중한 친구이기 때문에 '그깟 의식. 같이 서 있기만 하는 건데 내가 못 도와줄까.' 라고 생각하는 알음음 참 속이 넓은 아이였다.
이야기는 소희와 알음이 친구 관계라는 팽팽한 줄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게끔 만든다. 실은 모두 알음을 둘러싼 세계가 그 줄을 잡아 당기고 있는 것인데, 이를테면 알음을 둘러싼 그 세계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로 이뤄져 있다.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고 친절하다 못해 오지랖이 넓어 가족에게는 자연스레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아빠, 너무 착하기만 해서 아빠의 잘못을 매번 용서하고 받아주며 아빠의 결정을 따르는 엄마, 이기적인 아빠가 데려온 어린 남자아이, 소희의 짝사랑 상대이자 알음이 갖고 싶어하는 신율, 알음이 동경하는 같은 반 일진 나비.
소희와의 폐가 의식 이후 알음에게는 밤마다 끈적하고 징그러운, 때로는 거미같고 때로는 데이브릭 피규어같고, 때로는 사람의 형상을 한 계약자가 나타난다. 알음은 계약자때문에 괴로워하지만 조건없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계약자의 조언을 받아들여 행동을 한다. 사실 알음이 원했던 것은 단 하나, 아빠가 데려온 어린 남자 아이를 없애는 데에 있었다. 같은 집에 살게 된 것이 영 못마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린 남자 아이만을 향했던 알음의 원망과 나쁜 마음가짐은 의식하지 못한 새에 많은 사람에게까지 흘러나갔다. 늘 마음이 여유롭고 사람들의 잘못에 너그러웠던, 초등학생 때에는 반에서 착한 아이를 뽑는 투표에서 1등을 하기도 했던 홍알음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에게 가시를 세우기 시작했다. 단짝인 소희의 모든 점이 아니꼽게 보이고, 할머니와 아빠에게도 상처를 주는 날카로운 말만 골라서 한다. 어느 순간부터 착했던 알음은 아주 잔인하고 섬뜩하고 무서운 아이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충동적으로 못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이내 사라지고 그 생각에 죄책감을 갖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알음의 변화가 무섭고도 걱정되었던 것은, 알음에게서 일말의 죄책감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음은 점점 뻔뻔해져 가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작품의 인물 구도가 참 재미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저마다 엉뚱해 보이는 것들이 모두 맞물린다는 점 때문이었다. 복잡한 가정 문제와 단짝 친구와의 권태기 문제, 사랑과 우정 사이의 삼각 관계, 왕따 문제,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들은 알음의 안에서 미친듯 소용돌이 쳤다. 좋지 않은 욕망은 내면에서 끊임없이 커져만 갔다.
꼬여만 가는 모든 일의 원흉, 계약자가 알음에게 한 조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 보려는 대로 보이는 것이다
- 가지고 싶을 것을 가져라
- 거짓말은 나쁘지 않다
- 내 것이 될 수 없다면 남의 것도 될 수 없다
- 사라진 것을 찾지 마라
- 혼자가 되어야 원하는 것을 얻는다
뭐 같이 어리석음 대회라도 나가자는 것일까. 어른인 나는 저 말들을 모두 반대로 행할 때 삶이 훨씬 수월하고 편안하다는 것을 아는데, 알음이는 그걸 몰랐을까. 나도 저 나이대에는 정말 그랬을까.
알음이는 단지 아직 어렸고, 인간 관계에 있어 배우지 못한 것들, 겪지 못한 것들이 많았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니 나도 그렇게 겪고 아파하며 그 시절을 지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생각이 아니고 그랬던 기억을 확인했다.
계약자의 정체따위는 점차 궁금하지 않게 된다. 계약자보다는 알음의, 자신의 내면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고, 무의식적으로라도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 모든 것은 알음의 몫이었다. 자신의 몫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지켜내는 일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면서도 얼마나 값진 일인가. 도움의 손길 하나 없는 매정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나, 그만큼 솔직한 시선을 지닌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