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섬옥수
이나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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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섬옥수[纖纖玉手] : 가녀리고 가녀린 옥같은 손이라는 말로, 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섬섬옥수'라는 말의 뜻은 위와 같이 아주 가늘고 여린, 아름다운 여자의 손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이 책 제목으로 쓰인 섬섬옥수는 표기법이 무언가 이상하다. 평소 알고있던 뜻이 아닌 모양이다.



 섬, 섬옥수[纖獄囚] 

 앞의 섬은 제주도의 부속 도서중 하나인 땅끝섬을 뜻한다. 뒤의 섬옥수는 가늘 섬, 옥(감옥) 옥, 가둘 수의 한자로 구성된 합성어이다. 탈옥수는 익히 들었지만 섬옥수라니, 생소하기 그지없다. '섬, 섬옥수'라... 섬이라는 섬세한 옥에 갇혔다는 뜻일까? 








 섬이라는 공간이 갖는 폐쇄성과 고립감은 무기력을 동반한다. 섬이라는 것이 사방이 바다에 막힌 지역을 뜻하기는 하나 그 면적에 따라서 같은 섬이라 할지라도 저마다 느낌이 다르지 않나 싶다. 당장에 제주도 본섬과 땅끝섬을 비교해봐도 분위기의 차이를 바로 느낄 수 있다. 면적이 좁은 곳일수록, 뭍과의 차이가 커진다. 고립이나 폐쇄의 정도도 훨씬 커지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섬을 다룬 작품들이 여럿 있긴 하지만 이 작품은 보다 더 섬세하다. 섬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방향적이지 않다. 그저 섬사람들의 자기네 삶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그리고 있는 땅끝섬은 그저 작은 섬 하나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곳에는 인류가 담겨있고 더 나아가 섬은 자연 생태를 끌어안는다.


 

 섬 원주민, 관광사업을 위해 들어온 반쪽자리 섬 생활민, 낙오된 인생의 밑바닥에서 찾아 들어온 타지인, 뭍 출신인 외지인, 평생을 양심과 도덕의 경계를 넘지않고 최소한의 생계만을 위해 일해 온 잠녀(해녀)들, 해상 천연 보호구역의 자연을 즐기러 온 관광객들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으로 땅끝섬을 바라보고 가슴으로 느껴 그 감정이 고스란히 독자인 내게 전달되는 듯하다. 실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이 섬에서 살아가는 개들의 생존방식과 서글픈 삶또한 무척이나 자세하게 그려져있다. (글 초반, 개 얘기는 끝없이 나오고 더불어 제주도 사투리는 쉽게 읽히지 않아 읽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늘 바닷가에서 오지 않는 어멍, 아방을 기다리며 가슴앓이했던 사춘기를 보내고 나서 막순은 

어렴풋하게 삶과 죽음이 꿈과 생시처럼 혹은 밤과 아침처럼 붙어 다니는 것이라 

두려울 것도 반가울 것도 없는 담담한 무엇처럼 여겨졌다.' (118쪽)




 '비로소 블루코너 해역을 빠져나왔는지 배가 평온하다. 

이제 그녀는 삶의 멀미를 멈추고 싶다. 진정으로. 

십여 미터의 수심이 평탄하게 지속되다가 느닷없이 푹 꺼지는 허방처럼, 

매복한 거대한 벼랑이 인생이라고 없겠는가. 

평생 거센 풍파와 격랑의 바다를 온몸으로 겪으며 죽을 때까지 떠나지 않겠다는 고래상군 할망들처럼 

그녀는 건강한 생명력을 갖고 다시 태어나고 싶다.' (251쪽)



 
 섬에 살아본 적이 없어 섬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굳이 섬사람과 뭍사람을 구분해가며 무시하거나 배척하는 행위도 실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천혜의 자연 유산은 뒤로하고 관광객 유치에만 혈안이 된 모습도 안쓰럽고, 작은 동네에서 왜그렇게 싸우고 편가르며 감투 하나 쓰려고 안달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곳에서의 생활도 뭍에서의 생활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규모는 현격히 작을지 모르나, 권력이 있고 위계 서열이 생기며 항상 강한자와 약한자 사이의 대립구도가 형성된다는 것, 섬사람들이라 해도 물욕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 생과 죽음이 있고 그 사이에 사랑이 존재하며, 배신역시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것.

 다만 그 모든 관계의 사이가 너무도 좁아 감정이라는 것이 훨씬 격하게 발현된다. 미친듯 답답하고, 한없이 쓸쓸하고 고독하며, 해소할 길 없이 억울하고 화가 난다. 그러나 아주 작은 파동으로 조금씩 회복되고 정화되는 것 같기도 하다. 







 긴 결혼 생활에도 아이를 갖지 못해 당연한 수순처럼 남편과의 불화를 겪은 자애. 절망 가득한 삶에서 끝을 생각하고 섬에 들어가 희망 비슷한 것을 가지고 나온다. 어쩌면 쓸 데 없는 집착을 버리고, 체념과 단념을 들고 나온 것이 자애에게는 또다른 류의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의 말미에서 자애는 한층 밝아진 모습으로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남편과 함께 여행길에 오른다. 





 '어쩜 우린 둘 다 인생의 가장자리에서 참 고달픈 인생을 살아내는,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한때는 당신이 내 편인 줄 믿었고 나도 당연히 당신 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아름다운 줄 모르니 당신과 나 모두 청맹과니야. 

모두 당신 탓으로 돌리진 않아. 두 청맹과니의 지혜롭지 못한 처신으로 돌려야겠지. 

골짜기에 눈이 켜켜이 쌓이고, 봄꽃이 아름다이 피고, 녹음이 짙어진들…… 

그것이 아름다운 줄 보지 못하는 청맹과니들은 내내 투덜거리겠지. 대체 삶이 왜 이러냐고…….' (44쪽)





 '본섬으로 향하는 관문인 모슬포 항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러나 땅끝섬 사람들 마음속에는 고립감이 뿌리 깊어 스스로를 유폐시키며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산다. 

섬이라는 단절되고 폐쇄된 공간에서 거친 바다와 싸우고 또 순응하면서 체득된 오랜 정서 탓인지도 모른다. ' (263쪽)


   



 그래, 어쩌면 섬이란, 삶이란 일종의 감옥일까. 누군가는 그 곳에서 끝없는 고립감에 어찌할 줄 모른채 병들어가고, 누군가는 그 곳에서 나쁜 짓만 배워 오고, 누군가는 포기와 단념, 순응을 배워오며, 누군가는 자연 정화되듯 그렇게 교화된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 아름다운 자연 경관은 지워지고 잿빛의 두꺼운 벽에 둘러싸여가는 작은 땅끝섬. 인류는 과연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잃은 것 이상의 희망을 짊어지고 나올 수 있을까.



『섬,섬옥수』, 고립된 공간, 인류와 자연생태의 축소판.

 읽을 때는 참 어려웠는데, 읽고나니 마음에 드는 책. 책을 읽고 할 얘기를 쏟아내자면 밤이 새도록 그치지 않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모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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