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의 목적
다나베 세이코 지음, 조찬희 옮김 / 단숨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침대는 어땠어?"

 "혼자 자기엔 너무 넓지?"

 

 서른한 살 동갑내기 싱글 두 여자의 노골적인 멘트로 시작되는 올드미스의 은밀한 이야기!  

 

 

 

 개인적으로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영화를 먼저 접한 경우, 원작인 책은 읽지 않는 편이라 소설로 읽으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 원작 소설의 작가가 이 『침대의 목적』을 쓴 다나베 세이코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든 첫 느낌은, '아, 역시 일본 소설같네. 일본 느낌이 물씬 나네.' 였다. 그 생각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변함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저 일본 소설 특유의, 고유의 감성이 있다고 해야할까.

 

 제목만 읽고 정말 순수하게 '침대의 목적'을 생각하기에는, 맨 첫 페이지부터 사람 당혹스럽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부모에게서 독립해서 나온, 나이는 먹을만큼 먹은 여성이 마음에 쏙 드는 침대를, 그것도 1인용이 아닌 더블 침대를 샀다는 것을 그저 '편안하게 잠을 자기 위해서' 라고만 생각할 수 있을까?  모 침대 광고 멘트처럼 '침대는 가구가 아닌 과학이니까' 신중하게 골라본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에이- 뭐 그런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다만 적어도 주인공 와다 아카리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여성에게는 나름의 로망이 있다. 성인이 되면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립하겠다는 로망, 독립된 공간 내에서 남에게 침해받지 않는 성역을 만들겠다는 로망, 백마탄 왕자와 사귀고 내 성역 안에서 즐기겠다는 로망, 그리고 여자로서 아직 예쁠 때 백마탄 왕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로망. 나 또한 모두 가지고 있는 로망이다. 그러나 꿈과 현실이 다르듯, 로망이 로망으로 그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요시코는 엄한 부모님덕에 자립은 꿈조차 못꾼다. 그 나이에 이른 시각 통금이 있을 정도면 말 다했다. 아카리는 자립은 했지만 남자가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주위를 맴도는 몇몇의 남자는 있지만 백마탄 왕자가 없는 거다.

 

 

 여자들도 실은 다 알고있다. 백마탄 왕자는 개뿔. 내 자신이 가만히 누워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백설공주라고 생각하는 여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실은 모두가 암암리에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조용히 외쳐본다. 남자들은 왜 이걸 몰라주는거지? 왜 매번 '여자들, 정말 이해 안가'하고 말하는 거지? 싶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수다를 떨자면, 여자끼리는 밤이 새도록 열띤 토론을 할 수 있다. 뭐 주로 그렇다는 거지. 

 

 

 와카리에게 엄청난 감정이입을 하며 책을 읽었다. 실은 감정이입을 넘어서서 와카리에 몇년 후의 내 모습을 대입해서 보고 있었달까. 뭐랄까 성격도, 상황도 비슷한 것 같다. 그녀의 자유분방한 연애관까지 닮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내가 서른 한 살에 저런 모습의 올드미스가 되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면서 얼른 맨 뒷페이지를 읽고싶어지는 것이었다. 이미 머릿속은 침대의 목적이고 뭐고 다 사라지고 오로지 '결혼'과 '올드미스' 단 두개의 단어만이 지배하고 있었다. 와카리 자신은 이것저것 사소한 것까지 재면서도, 막상 남자가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무척이나 싫어한다. 남자에게 '그럴 마음'이 들지도, 남자와 '그럴(갈) 생각'이 들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주위에 묶어두고 싶어하는 본심을 드러낸다면 남자도 그리 대놓고 비난할텐데.

 

 

 남자와 여자는 왜이렇게 다를까.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에게 맞춰가며 함께 앞날을 꿈꿀 수 있을까. 아무리 상대적인 개념의 백마탄 왕자라지만, 왜 내 주위에는 없을까. 결혼에 골인한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데 왜 내겐 그 일이 사막에서 바늘찾기보다 힘들까. 주위사람 모두 짝을 찾아가는데 유독 나만 그 일이 어려운 거라면 내 문제는 아닐까, 그렇다면 그 치명적인 문제는 도대체 무엇일까.

 

 

 머릿속에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 생겨난다. 일단 저런 생각은 한 번 시작되면 멈추기가 힘든데, 동시에 점점 우울해지고 자신감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간달까. 도무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조차, 모두 내 문제로 끌어안아버린다. 마음이 한결 여유로울 수 있으면 좋을텐데, 여자에게 나이라는 것은 적어도 결혼에 있어서만은 무시 못할 사안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나만의 '백마탄 왕자'에 대한 로망만큼은 버리지 말자. 남들이 도무지 '그럴 마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에게 어느 날, 문득, '그럴 마음'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건, 왕자의 이렇고 저렇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내 마음이 제일 중요시되는 로망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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