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들리는 순간 - 인디 음악의 풍경들
정강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내가 인디음악에 알게 된 건 언제부터 였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처음 인디 뮤지션을 접한 당시에도 나는 인디의 개념은 잘 몰랐다. 그저 가수는 가수인데 TV에 나오는 가수는 아니구나, TV에 나오는 가수들보다 인기가 없는 사람들이구나,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이 좋아 음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이구나, 했다.

 

 

 1. 고 2 여름방학, 백화점 앞 작은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밴드를 봤다. 밴드공연을 눈 앞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하나같이 개성 가득한 사람들 집단이었다. 나는 혼자서는 밥도 못먹고, 영화도 못보는 사람인데 그날은 혼자서 팔 흔들고 소리지르고 노래를 따라부르면서 공연을 봤다. 어느덧 맨 앞까지 나가 있었다. 그날 이후 그 밴드에 푹 빠져서 인터넷 검색하고, 싸이 일촌맺고, 몇 곡 없는 노래 다 찾아서 들었다. 하루 4시간만 자면서 공부하던 고등학생 시절, 가득 쌓인 스트레스를 속 시원히 날려 줄 유일한 음악이었고, 그래서 더 빠졌던 듯하다. 그 밴드는 '슈퍼키드'다. 슬프게도 이 책에는 소개되어있지 않네.

 

 

 

 2.  2010인가 2011인가. 나를 다시 미치게 만들었고, 내 삶을 엄청나게 변화시킨 것이 틀림없는 인디 뮤지션을 만난 때는. 보컬의 노래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야한 영화 한 편은 족히 본 것처럼 느껴졌다. 온갖 기계음에 지쳐있던 내 귀에 갑자기 휴식이 되어 찾아왔다. 새벽 한 시, 불 끄고 방 안 침대에 누워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세상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고,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일 수가 없었다. 음악을 듣다보면 '새벽 4시'는 금방 다가와 있었다. 어쿠스틱의 매력에 빠져 쭈뼛쭈뼛 기타 학원으로 내 발걸음을 옮기게 한 장본인들, '십센치' . <새벽 4시>, <Good Night>, <그게 아니고>,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우정, 그 씁쓸함에 대하여>, <Healing>, <Nothing Without You>... 특히나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노래들. 지금 들어도 좋네. 밤도, 별도, 진득한 날씨도 다 내것 같고. 잊고있던 기억도 불러 일으키고.     

 

 

 

 3.  내게 '청춘'이라는 단어와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 두 개를 툭, 던져 놓고, 떠오르는 뮤지션을 대라고 하면 내가 단박에 떠올릴 유일한 언니들.    

  사랑할 때,  쓸쓸할 때, 추억팔이 하고 싶을 때 십센티의 노래를 들으며 일부러 더 쓸쓸해지게 만들었다면, 의도하여 센치해졌다면,

  힘들고, 벅차고, 슬프고, 아프고, 쓸 데 없는 생각에 괴롭고, 미칠 것 같은 때는 옥상달빛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다. 힘을 얻었다. 치유됐다.   

 

p. 176 - 옥상달빛이란 이름은 아무렇게나 붙인 이름이다. 김윤주와 박세진이 밴드를 꾸리기로 하고, 각자 좋아하는 걸 늘어놓기로 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다 보니 '옥상'과 '달빛'에서 일치를 봤다. 해서 이 두 단어를 나란히 붙여봤는데, 은근히 근사했던 것이다. 옥상달빛은 흔히 옥상에서 바라보는 달빛으로 이해되지만, 이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그 반대가 돼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컨대 '달빛옥상'은 어떤가. 깜깜한 밤하늘에 홀로 내리쬐는 달빛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달빛의 옥상에 다다르지 않을까.

 

 어쩜, 책의 저자가 대중음악 분야 취재기자 아니랄까봐 말하는 센스가 장난 아니다.

 

 

 

 4. 구걸하지 않아도 '한'이 저절로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담담해서 더 눈물짓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들을 때마다 날 미치게 만드는 노래가 있다. 과거의 한 순간으로, 가슴이 아릿하던 순간으로 타임머신 태워 보내는 노래가 있다. 어쩜 그렇게 당시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게 하는지, 저릿함이 불러오는 소름까지 닮게 하는지. <International Love song>, <젊은 우리 사랑>가 그렇다. 검정치마, 본명 조휴일.

 

 p. 203 - 저 사랑의 노래들을 발라드라고 불러도 좋을까. 그렇게는 안 되겠다. 우리에게 '발라드'란 감정 과잉의 노래들이다. 슬픈 것을 더 슬프게, 행복한 것을 더 행복하게 과장하는 힘이 한국식 발라드에 있다. 그러나 검정치마는 사랑의 사태를 과장하여 노래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도 누구의 버림을 받겠지/ 그래도 나는 아무 상관 없는 걸"이라며 담담하게 뱉어버린다.   

 

 

 


 

 

 인디를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운 책이 될 수 있겠다. '뭐 별거 있을까?' 하고 읽어봤는데 읽는 내내 음악을 찾아 듣게 만들었다. 관심있고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인생담, 경험담, 고생담도 재미있었고.

 

 한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책 제목이 『당신이 들리는 순간』인데, 들리는 게 없다. 음악적 예술성보다는 뮤지션들의 이야기나 곡의 가사를 통한 문학적 예술성을 다룬 부분이 주가 됐다. 저자가 책에 수록된 인디 뮤지션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을텐데, 그를 이용해 OR코드를 넣어 곡이나 공연 영상 하나씩만 보여주었어도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다. 재즈 가수 윤희정이 지은 『이 노래, 아세요?』(출판사 '나비')에서는 글 읽으면서 바로 OR코드 이용하여 재즈 공연 영상 보고 그랬는데, 그때 워낙 좋았어서 음악관련 많은 책들이 그렇게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나만의 아쉬움이랄까.  

 

 

 

 

자음과 모음 공식 리뷰단 1기 강정민.

마지막 도서 『당신이 들리는 순간』

책은 지원받아 읽었지만 서평 내용은 온전히 저만의 생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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