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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인류 최초의 직업이 매춘, 그 다음이 소매치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의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그 두 가지를 결합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소매치기 이야기를 먼저 쓰게 됐고, 『쓰리』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바로 『왕국』이다.'
이 책, 『왕국』의 저자인 나카무라 후미노리가 한 말이다. 매춘과 창녀라고 하는 소재가 워낙 흥미로워서 얼른 손이 갔다. 일본의 유신회가 '위안부가 전쟁의 매춘부'라느니 마느니 하는 헛소리를 계속해서 해대는 요즈음, 매춘의 '매'자만 들어도 화가 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매춘이라고 하는 것이 인류 최초의 직업이라고는 하지만, 성을 사고 파는 것이 불법이고, 떳떳한 것이 아닌만큼, 직업이지만 직업이 될 수 없는 업종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매춘'이라고 하는 직업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나라마다 매춘의 역사는 각기 다르겠지만, 성을 사고 판다는 것은 모두 거부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 중 하나, 성욕때문일 것이다. 필요로 하는 이들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생겨나고 하나의 직업적 수단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종종 어떤 이들은 매춘이 사회의 '필요惡'이라고 한다. 좋지않은 것이라는 인식은 기저에 깔려있지만, 저 단어에는 '필요하다'는 인식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매춘의 행위는 어디까지로 정의할 수 있을까. 쉽게 말하자면 몸을 파는 것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생식과 관련한 성행위를 돈을 주고 하는 것을 매춘이라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점점 좋지 않은 쪽으로 참 다양하게 발전해간다. 요즈음에는 '키스방'이라고 하는 것까지 생겨서는 매춘의 정의를 점점 모호하게 만들고 있달까.
이 작품 『왕국 』속 주인공인 유리카는 매춘부로 보기에는 약간 무리도 있다. 그 이유는 그가 자신의 성적 매력을 팔고 그것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몸을 팔지는 않는다는(구체적 성행위는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실은 매춘부보다는 '사기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이 작품이 남성의 성적 욕구와 윤리적으로 잘못된 해소 방식을 꼬집고 있지만, 그런 점을 완벽하게 이용해 짜릿하게 속여버리고 마는, 영악한 여성을 역시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성이고 여성이고에 상관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속의 은밀한 욕망을 표면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작품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성적 욕구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과 매춘이라고 하는 것에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 그 속에는 꽁꽁 숨겨져있어 보이지 않는 어둠의 권력이 자리한다. 실은 그 어둠의 권력이 누군가의 운명을 조작하고, 지배하고, 누군가의 인생을 빼앗거나 다시 새로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매우 공포적으로 잘 표현해낸 것이 이 작품의 묘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계속해서 드러나는 이미지로 '달'이 있다. 달은 주인공인 유리카의 매혹적이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잘 드러내주는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인생 전반을 비추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태양은 항상 같은 모습이지만, 달은 매번 모양이 달라진다. 작아졌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차 오르기도 한다. 달을 통해 자연스레 인간의 운명을 떠올려보게 된다.
_p. 230~231 ; 그때의 달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멍하니 생각한다. 나의 망상일까. 공포와 피로에 휩싸인 몸에 느닷없이 찾아온 환상. 그게 아니면 뭔가 나를 찾아왔고 나는 그것을 거부했던 것일까. 내가 줄곧 보았던 달, 그 빛은 선인지 악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중 어느 쪽도 아닌 것이리라, 하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달은 혼돈의 빛을 내뿜고 있을 뿐이다. 요요하게, 강하게. 그것은 분명 선도 악도 아니다. 이 세계의 법칙이 선만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부터 날이 갈수록 조금씩 기울다가 달은 이윽고 자취를 감춘다. 마치 스스로의 에너지를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것처럼. 옛사람들은 달이 사라질 때마다 불안해하며 재생을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달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초승달보다 더 가늘게, 하지만 확실하게 반짝이는 빛으로. 그래도 옛사람들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그 여린 빛이 하루 하루 가득 차는 것과는 반대로, 다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래서 다시 제를 올렸다. 자신들이 안도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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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공식 리뷰단 1기 강정민.
일곱 번째 도서 『왕국』
책은 지원받아 읽었지만 서평 내용은 온전히 저만의 생각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