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워드의 선물 (Howard's Gift)』
에릭 시노웨이, 메릴 미도우 지음
김명철, 유지연 옮김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출간일 : 201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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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는 지팡이를 짚은 한 노인의 뒷모습이 나타나있다. 그는 아마 하워드일 것이다.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노인들의 지혜란 마땅히 배우고 따라야 할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책의 표지가 그 뜻을 아주 잘 전달해준 것 같다.
이 책의 뿌리가 되는 인물인 '하워드 스티븐슨'은 40년 넘게 재직한 하버드 경영대학원 최고의 교수이다. '기업가 정신'을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개척자라고 한다. '경영'과 '기업'이라니. 책을 읽기도 전에 어려운 내용에 머리가 아플까 걱정이 됐다. 책 제목인 『하워드의 선물』에서 '선물'이란 그가 기업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구구절절 전략을 제시하는건 아닐까 하고도 잠시 생각했다. 그렇지만 '선물'의 어감이란 아무래도 그런 차갑고 딱딱한 것이 아니니, 더 지켜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선물'이란 것이 내가 잠시 걱정했던 종류의 오만함이나 잘난체의 종류가 아니었다. 이 책의 제목으로 '선물'이란 단어가 적합했던 것은 바로, 하워드가 심장마비로 인한 죽을 고비를 기적적으로 넘긴 후 새 삶을 선물받았기 때문이고, 하워드를 인생의 아버지로 여기는 제자 에릭 시노웨이(저자)에게도 하워드는 선물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제멋대로 추측해본다.
이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는 크게 12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이렇게 파트별 제목만 쭉 읽다보면 명령조가 많아서 그런지 조금 딱딱한 느낌이 없지않아 있다. 그러나 책을 쭉 읽다보면 하워드식 말하기, 그가 사람을 바라보는 통찰력과 주의력, 깊은 지혜, 정감있는 대화, 정곡 찌르기 등에 놀라게 된다. 저런 많은 것들과 더불어 제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하워드의 마음과, 스승을 한없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에릭의 마음까지 드러나서 훈훈하다 못해 부럽기까지 하다.
하워드와 에릭의 산책속 대화를 읽고 있자니 덩달아 산책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들의 깊은 사유와 인생의 지혜 속에서 나의 마음에도 와닿은 것들이 꽤나 있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세상에 숨겨진 전환점이라는 것을 기회로 만들어 후회 없는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목표이다. 그 전환점을 얼마나 잘 '나의 기회'로 끌어올 것이냐 하는 지혜를 담은 책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PART 3. 위대한 도전자들은 용감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용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_p. 76 ; "용기란 원래부터 있어왔던 게 아니라 매순간 우리가 선택하는거야. 역사상 위대했던 도전자들도 초인적인 용기를 지녔던 건 아니었어. 단지 그들은 용기를 선택했을 뿐이지."
'용감한 것'과 '용기'는 비슷한 듯 하지만 조금 다르다. 용감한 것은 어쩌면 선천적인 습성일 지 모르나, 용기는 용감하지 않은 사람도 기꺼이 낼 수 있는 일종의 기운이다. 나는 원래 용감한 사람은 아니다. 겉보기와는 달리 은근 겁이 많다. 돌아보니 나는 매번 속으로 진땀 흘리면서도 용기는 내왔던 사람이었다. 요즈음의 내가 자주 시들시들한 것은 실패가 두려워 애초에 시도할 용기조차 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PART 4. 인생은 어려울 때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_p. 91 ; 하워드는 '더이상 노력하지 않는 상황'이야말로 실패라고 말했다.
_p. 99 ; 지금 자신의 위치와 내일 자신이 도달하고 싶은 위치에서 성공과 실패를 바라보아야 한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어렵다고 해서 내가 지금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할 수 있을까? 다만 괜히 남들의 시선에 맞추어 나의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실패라고 몰고가며 나 자신을 낙오자로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기준에서 나만의 성공과 실패를 정해둘 필요가 있다.
PART 7. 당신을 노리고 있는 달콤한 착각들
다만 대책없이 낙관주의만 하기엔 내가 동심가득한 나이가 아니다. 그러니 따질 것은 따지고, 주의할 점도 숙지해두자.
_p. 162-163 ;
노력의 오류 : 무조건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단점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엄청난 시간 낭비를 불러올 수 있다.
우등생 오류 : 이것은 마치 '나는 뛰어난 헤비급 레슬링 선수니까 분명 장대높이뛰기도 거뜬히 해낼 수 이쓸 거야'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확대해석의 오류 :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이 그 일에 절실히 필요할 것이라 넘겨짚는 것.
'표적도 없이 화살을 쏜 뒤 화살이 꽂힌 지점에다 과녁을 그려 넣는 사람'
즐거움과 열정의 오류 : 마냥 즐겁고 열정이 솟기 때문에 실제로 일을 잘하고 있는 거라 믿는 것.
요술램프의 오류 : 노력의 오류와 정반대. 이미 성공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간절히 상상하기만 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음.
PART 8. 당신의 능력은 '세상의 평가'보다 더 높은 곳에 있다
_p. 175 ; "타인의 겉모습은 자신의 속모습보다 더 좋아 보이는 법이라네."
"...사람은 겉으로 드러난 타인의 강점과 재능만 중시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약점은 보려고 하지 않거든.
반대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강점은 축소하고 약점은 확대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
사실 책 속에서는 '필생의 일'을 강조했지만, 난 필생의 일에 대한 해답까지는 찾지 못했다. '전진하는 삶을 살아라.'라고 했지만 후진을 하면 왜 안되는 지에 대한 이유도 찾지 못했다. 사람을 사귈 때에 롤모델과 멘토를 머릿속으로 헤아리고 따져가며 만나야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나는 '내가 남들에게 못나고 도움 안되는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으로 롤모델과 멘토는 내 인생에서 찾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자리'를 찾기로 한다. 지금 나의 위치, 그리고 앞으로 내가 있을 곳을 찾기로 한다. 자존감(자아존중감)을 높이기로 한다. 무작정 내가 유능하다고 믿겠다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나 자신을 존중하겠다는 것이다. 선물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선물을 누군가에게 주고 싶어서.
내 인생은 어렵지만, 그렇다고 쉬운 방향만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렵긴하지만 실패한 것은 아니고, 때로 실패는 하지만 조금 더 훗날 뒤돌아봤을 때 그 실패가 마냥 싫지만은 않다. 어쩌면 하워드가 내게 전해준 선물이란 '둔화되기'가 아닐까? 순간순간, 시시때때 욱하면서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몇 분 후, 몇 시간 후, 며칠 후, 몇 달 후, 몇 년 후에 지금의 이 순간을 뒤돌아본다고 생각하면, 웬만한 일에는 '둔화되기' 그거, 어렵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짜잔! 노란색 표지를 벗기면 등장하는 속 표지. 훨씬 분위기있다. 어딘가 끊임없이 길을 걸어야 할 것 같다.)
지팡이를 든 노인.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생각이 계속 났다. 중풍에 걸리신 이후 항상 지팡이를 들고 나가 산책을 하셨었는데. 돌아가신지도 어언 십년이 다 되어가지만 날 그렇게나 예뻐하고 사랑해주시던 할아버지를 잊을 수가 없다. 점잖고, 지적이고, 교양있으셨던 우리 할아버지에게 필생의 일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멋지게 나이 든다는 것, 이것만큼은 이미 아주 오래전에 배웠다. 우리 할아버지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