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양장) - 유년의 기억 ㅣ 소설로 그린 자화상 1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전 읽은 책을 다시 한 번 펼쳤다. 좋았었다는 느낌만 남았지 내용은 까마득히 잊어버려 첫 페이지부터 새롭다. 첨 읽는 책 같으면서도 완전히 낯설지는 않은 느낌. 오래전 다녀간 추억의 장소를 다시 찾아간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주한 박완서 선생님의 글.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 애잔해진다. 집에 있는 박완서 선생님의 다른 책도 모두 읽어 보아야겠다. 마음이 마구 설렌다.
이 책을 언제 읽었더라. 삼십대 초반 같기도 하고 전혀 기억이 안 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라는 제목 자체가 서울 토박이에 삼십대 초반인 나에게는 생소했다. 싱아? 그게 먹는 건가? 그런게 아직도 들판에 있나? 아님 멸종 식물인가?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선생님의 책 속의 싱아는 산에서 자라는 싱아, 까치수영이라는 것이고 신맛이 나는 식물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진짜 실물은 한 번도 못 봤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마디마디를 관통해서 살아낸 박완서 선생님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1930년대와 40년대, 즉 일제 강점기 말기와 해방, 육이오전쟁 등을 직접 격은 작가가 개풍군에서의 유년시절, 현저동에서 시작한 서울살이의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찰진 언어로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진실하게 순수 기억 그대로 증언하고자 한 박완서 선생님의 인간적 고뇌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서울 사대문 안팎으로의 시간여행,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생생한 그 시절 이야기들. 우리네 할머니 시절 이야기 이지만 전혀 고리타분하지 않았고 흥미진진해서 읽다보면 그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박완서 작가님의 송도 개풍군에서의 유년시절 묘사는 시골 벽촌의 생활풍습과 날것 그대로의 자연에 대한 예찬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있다. 도시 출신인 나는 가져보지 못한 그 어떤 판타지보다도 신명나고 흥겨운 정경들이다. 조찰떡을 빚는 뒷간의 도깨비 이야기는 해학적이었고, 짱꼴라라는 말이 일제시대의 잔재임을 첨 알았다. 그중 제일 백미이자 절정은 시골아이 똥누기를 쓴 작가 이상을 비판한 부분이 아니었을까. 도시에서 태어나 외가든 친가든 깡그리 도시라서 시골에서의 추억이 없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시골 아이의 권태와 별게 다 놀이이고 즐거움인 그 순수한 열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 할 수 없다. 그저 짐작만 할뿐이다. 나와 반대로 남편은 시골출신이라 형제들끼리 모이면 어릴 적 시골집에서의 추억담으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수박서리, 미꾸리지 잡기, 난 듣도 보도 못한 으름이며 삐삐 같은 먹을거리들. 도시 사람은 절대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이고, 아무리 대단한 필력의 작가라도 직접 체험하지 않고서는 묘사할 수 없는 유년기의 부러운 추억들이다. 박완서 작가님에게 유년기 시골 대자연의 품에서 뛰놀던 추억은 다 자란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속 든든한 뒷심이 되어 주는 평생의 풍요로운 자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박적골을 떠나 현저동 서울살이가 시작 되고 박완서 선생님에게는 추억이 없다. 추억과 그냥 기억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추억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게 되는 것이고, 기억은 그냥 기억인 것이다. 선생님도 나와 똑같은 서울내기가 되어간다. 서울에서의 모습들은 박완서 선생님과 나 사이에 몇 십 년 간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낯설지가 않다. 선생님의 현저동 시절처럼 수도가 없어 물장수에게 물을 사먹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초등학교 때 봉천동 달동네에서 살아봤고, 남의 집 셋방살이도 해봤고, 먹을게 궁하지는 않았는데 엄마 지갑에서 몰래 동전을 꺼내 구멍가게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먹은 적이 있다. 당연히 아카시아꽃도 먹어봤다. 세월 흘러도 서울살이의 고단함, 척박함, 남루함은 저 밑바닦에 늘 존재하고, 가난은 어느 시대이든 어느 정도의 비율로 도시의 이면을 차지하기 마련인 듯하다. 그렇지만 유년을 가득 채운 든든한 뒷배가 작가님에게는 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나와 다른 점이다.
무악재 넘어 홍제동에서 태어나 봉천동, 그리고 지금까지도 친정엄마가 살고 계신 방화동, 서울이지만 서울 아닌 사대문 밖의 변두리의 삶. 중학교시절 가끔 학교를 빼먹고 혼자 버스를 타고 광화문까지 가서 교보문고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왔더랬다. 그러다가 갑갑하면 종로 을지로 남대문 일대를, 더 멀리는 혜화동까지 하염없이 걸어 다녔다. 평일 낮의 일탈은 다음날 등교를 생각하면 두려우면서도 그만큼 큰 달콤함과 자유로움을 주었다. 직장을 다니시는 엄마는 늘 저녁에 들어오셨고 집안은 적막했고 괜히 외로웠고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고 학교가 재미없어서 우울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의 나에게 사대문 안은 내가 속하지 못한 곳, 오래전부터 유지되어온 나라의 중심으로서의 어떤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 시절 근거를 알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이 어디서부터 솟았을까 스스로 의아했는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알 것도 같다. 사대문 안을 향한 동경은 서울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이라면 자연스레 갖게 되는 본능에 가까운 감각이라는 것. 지금은 그 의미가 희미해졌지만 옛 부터 간직되어온 어떤 귀함이라는 것. 성인이 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그 시절 내 뜻 모를 감성은 잊혀 졌고, 내가 그러고 다녔다는 것도 기억 못한 채 살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그 시절 나만의 추억이라면 추억일 수 있는 장소들이 곳곳에 나온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서울역에서 내려 무악재를 지나 현저동으로 가는 어린 박완서 선생님, 중학교 때 친구 복순이와 처음 가본 도서관이 현 소공동 롯데백화점 자리이고, 복순이와 이별의식을 치루기 위해 눈길을 뚫고 찾아간 신사가 남산에 있었고, 혜화동은 지금보다 복개되기 전의 서울대 교정이 있던 그 시절이 더 운치있고 아름다웠다는 것을. 박완서 선생님의 사대문안 추억이 내 사대문안 추억과 시절은 다르지만 그 거리 그 장소에서 조우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의 어린 시절은 나의 어린 시절을 불러왔다. 숫기 없고 책 읽는 걸 좋아했던, 늘 외로웠던 그 시절의 안쓰러운 나. 그 아이를 다시 소환하며 추억에 젖는다. 초라하고 못났지만 그 아이, 내가 그립다. 과거는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냥 소중하고 아픈 것 같다.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읽다보면 소설이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소설인가, 아니면 완전히 새로이 창조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소설인가. 그냥 내 기억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 재밌게만 이야기를 풀어 가면 그만인 것인가. 선생님의 그 다음 이야기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와 '그 남자네 집'을 내처 읽어보며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단풍 붉은 이 가을, 박완서 선생님의 시원시원하고 명료한 문장들의 향연에 빠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