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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ㅣ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평점 :
별 생각없이 집어든 이 책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다. 평소에 소설을 주로 읽고, 이름도 첨 듣는 작가님이고, 그냥 표지와 제목이 예뻐서 끌리듯이 산 책인데 산문집도 이렇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첨 알았다.
여자이며 딸이며 아내이고 엄마이지만 소설가이기도 한 작가님의 평범함 속의 비범한 이야기. 문학을 꿈꿨으나, 직장 생활도 해봤고, 실직도 당해 보고, 결혼하여 아이도 키워본 작가님의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문학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돋보이는 산문집이다.
그 속엔 어릴 적 유년의 추억, 젊은 시절의 패기,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형제 이야기, 남편 이야기, 아이 이야기가 있다. 또 사회와 사람 사이에 대한 조용하지만 정확한 인식이 있다. 부드럽지만 날카로운 비판정신도 있다. 어린시절의 가난한 이야기가 추억으로 피어난다. 잔잔한 문장 속에 요란하지는 않지만 빛나는 메세지가 있다.
'숨어있기 좋은 책'에서는 권선징악을 말하지 않는 현실세계에 대한 깨달음과 동화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들어섰을 때에 대한 고백이 있다. 소설이 아닌 산문의 진실성, 그 내밀함이 아름다웠다.
'내가 살던 골목에는'. 읽다보니 내 어린 시절의 골목, 그 구멍가게, 그 집이 그대로 제현되는 듯해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작가님의 어릴적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 나의 시절이다. 숨바꼭질,다방구,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 얼마나 오랜만에 들어본는 정겨운 놀이들인가. 어릴적 미로처럼 얽히고 섥힌 좁은 골목에서는 길을 잃은 적이 없는데 넓은 대로와 잘 구획된 요즘길에서 오히려 길을 잃는다는 작가님의 말, 무척 공감이 가며 서글픔이 밀려왔다.
'나는 너를 모른다'. 타인에 대해 어설프게 아는 척하지 말라는, 그것은 오만이라는 메세지. 맞다. 나도 그동안 얼마나 타인들에게 그래 왔는가.
'누구에게나 빛나는 한가지'. 글쓰기의 수고로움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준 단락. 글쓰기가 꿈인 모든 이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와 격려가 돋보인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 눈내리는 소리가 '괜찮다,괜찮다,괜찮다.' 라니.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시에 나온단다. 눈이 그렇게 표현된 시가 있다는 것을 첨 알았다. 한 번 찾아서 읽어 봐야겠다.
아.. 한지혜 작가님의 문장과 단어들은 참 주옥같다. '주옥같다'는 표현 참 진부하지만 더 멋진 표현을 쓰고 싶지만 딱 그 표현이 맞다. 마음에 와닺는 부분이 많아서 노트에 필사해가며 읽었는데, 글이 길어지니 여기에는 그만 써야겠다.
하루하루 지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따뜻한 위로의 문장들. 지친밤 잠들기 전 읽으면 좋은 꿈을 꿀 것 같은 글들이다. 언니처럼 친구처럼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그 숨결이 참 포근하고 안도감을 준다.
그동안 아무 성취도 없이 무의미한 삶을 산 것에 대해 의기소침해 있는 나에게 괜찮다고, 살아낸 것 만으로도 장하다고 토닥여주는 듯 하다. 공들여 완성된 이 산문집 한 권의 무게는 묵직하다.
지금은 깊은 가을날 이지만, 겨울이 오면, 눈내리는 휴일날 오후 다시 한 번 꺼내 읽어 보아도 좋겠다.
한지혜 작가님의 글을 더 읽어 보고 싶은데 출판된 책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산문이 아닌 소설도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