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 고려의 흥망성쇠를 결정한 34인의 왕 이야기
이동연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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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은 그림자가 없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자기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고려 왕 34명도 각자 내면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었다. 삶을 좌우하는 것은 내면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작은지가 아니고 그 그림자를 수용하고 받아들여 어떻게 삶의 동력으로 삼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인간은 무조건 선하거나 무조건 악한 존재가 아니다. 때에 따라 존재의 상태가 달라진다. 겉으론 당당하고 평화롭더라도 그 모습 뒤에 있는 동물적 욕구, 공격성 등이 나타날 수 있는데, 그러한 자신의 본모습을 직시하고 다스릴 때 비로소 내면의 그림자를 삶의 생산적 도구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상반되는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상적인 승화 방식을 택할 줄 알고, 자아 통합의 핵심은 과거의 경험을 재조직하고 자신의 모든 것과 화해하는 데 있다고 한다.



왕건의 신화는 궁예나 견훤처럼 주인공의 존엄성을 과시하는데 치중하지 않았다. 왕건의 탄생을 예언한 도선 대사는 왕건을 “삼이 아니라 기장”이라 했다. 삼, 곧 마는 뿌리를 약용과 식용으로 먹기도 하지만 주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기장은 쌀, 보리, 조, 콩과 더불어 오곡 중의 하나다. 당시 신라는 지배층의 사치와 향락으로 백성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신화에서 왕건을 두고 마가 아니라 기장이라고 한 것은 그가 배고픈 백성에게 먹을 것을 준다는 의미다. 왕건에게는 있으나 궁예에게는 없었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조화와 융합의 리더십이었다. 불안을 외부에 즉각 투사하는 궁예와 달리 왕건은 사고 과정을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찾았다.


왕건의 아버지 왕륭은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생각을 접고 아들에게 그 꿈을 물려주었다. 왕륭은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멀리 내다보며 꿈을 품었으나 실제 행동은 소처럼 신중하고 우직하게 했다. 이런 회시우보(虎視牛步)의 마음 자세를 심리학적으로는 ‘만족 지연 능력’ 즉, 미래를 위해 현재의 쾌락을 억누르고 고통마저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한다고 한다. 2대 혜종은 왕이 되고 나서도 물이 담긴 세숫대야를 참전에 두고 수시로 들여다보았다. 이런 행동은 현실을 직시하기 싫어하고 자기만의 세계로 퇴행해 자기만족에 빠지는 ‘피터 팬 증후군’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 증후군은 겉으로 관대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심 모든 책임을 외부에 떠넘기고, 무기력증이 동반되며, 그런 자신에게조차 싫증을 내는 증상을 보인다.



제4대 광종은 혜종, 정종에 비해 비교적 안정되고 통합된 자아를 갖춰 자신의 우수한 자질을 충분히 발휘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사자의 가슴’과 ‘여우의 머리’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광종이 바로 그런 왕이었으며 행동주의 심리학의 충실한 이행자라 평가할 수 있다. 광종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이었다. 초자아에 휘둘린 정종이나 전능 환상에 빠진 혜종과 달리 비교적 탄탄한 자아를 형성한 자아 중심적인 왕이었다. 재위 기간 26년 2개월 동안 탐색기, 왕권 강화기, 숙청기를 거쳤다. 즉위 초기에는 여우처럼 조용히 지내며 친위 세력을 길렀고 후에는 사자처럼 호족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쌍기는 후주 태조의 개혁 작업을 도운 인물로 광종은 호족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귀화시키고 벼슬을 주어 ‘노비안검법과 과거제’ 도입을 추진하여 호족세력을 혁파하였다. 역사 관련 시험에서 고려 시대의 왕 중의 왕건 못지않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왕에 꼽힐 정도로 광종은 노비안건법, 황제칭호, 광덕, 준풍 등 독자 연호 사용, 불교 정비 등 수많은 정치 경제 사회적 업적이 있다.


학창 시절 역사 교과서와 역사 수업에서는 시험 빈출 왕, 주요 사건, 시대별 수취 제도 등의 연도를 외우는 등 역사를 단답형 위주로 공부하며 역사 공부에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이 책은 시험 문제와 전혀 상관없이 고려 시대의 왕들의 심리, 고려 시대 주요 사건인 무신 정권과 여몽항쟁들을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함께 심리적인 측면에서 스토리의 형식으로 고려사를 이해할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고,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역사를 비롯하여 아시아 역사, 세계사 등 역사 관련 다양한 관점에서 출간된 다양한 책들을 탐독하며 교양 지식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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