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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는 수호지 - 난세가 만들어낸 영웅들의 통쾌하면서도 슬픈 반란 ㅣ 교양으로 읽는 시리즈
시내암 지음, 장순필 옮김 / 탐나는책 / 2021년 6월
평점 :
난세가 만들어낸 영웅들의 통쾌하면서도 슬픈 반란이란 주제어로 송나라 말기를 배경으로 송강 등 108명의 호걸들에 대해 혼란한 시대 상황 속에서 민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결합한 중국 4대 기서 중의 하나인 <수호지>는 북송 말, 휘종의 선화 3년 회남에서 송강 등이 난을 일으켜 세력을 크게 떨치다가 조정에 귀화한 사실이 <송사宋史>에 기록된 것을 소재로 한 야담이 차츰 발전하여 원말 명초에 시내암이 어느 정도의 소설의 형태를 갖추어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송강이 심양루에 올라 홀로 술을 마시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지은 시 중에서 “만약 뒷날 뜻을 이룰 때가 되면, 비웃으리라, 황소는 대장부가 아님을.” 이 마지막 구절에서 당나라에 난을 일으킨 황소보다 더한 역적이 되겠노라는 야심을 품었다는 오해를 사, 죽을 고비를 넘기며 양산박에 들고 송강을 전후로 하여 양산박에는 백팔 명의 호걸이 모이게 되는데, 이들은 서른여섯의 천강성과 일흔둘의 지살성으로 부패한 세상에 백성들을 위해 내려온 하늘의 별들이라고 한다. 하늘의 뜻으로 양산박에 모인 백팔 명의 호걸들은 조정의 부패와 관료들의 비행에 대항하여, ‘체천행도替天行道(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한다)’를 내세워 민중들의 한을 풀어 주고, 조정에 대항하는 그들의 의기투합에 정당성을 이끌어내다가 마침내는 조정과 백성을 위해 일하게 된다는 역사소설이다.
<수호지>에는 백팔 명의 영웅호걸들이 모이기까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다른 호걸들과 합류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며, 그 과정에서 권력에 기대 선량한 백성들을 조롱하고 탄압하는 벼슬아치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가 긴장과 쾌감을 느끼게 한다. 자신들의 안위와 부귀가 아닌 백성과 하늘의 뜻에 따르며, 목숨보다 의義를 중요하게 여기는 백팔 호걸들의 활약과 무용담은 <수호지>의 배경이 된 그때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불공평하며, 정의를 이루기란 쉽지 않음을 생각하게 한다. 이에 부패와 부조리에 대항하는 그들의 모습에 오늘날의 우리 역시 대리만족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수호지>는 단순히 고전 소설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의 불합리에 통탄하는 민중들의 여전히 있기에 긴 세월에도 두고두고 읽히는 것이라는 옮긴이의 판단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어렸을 때 책을 읽은 기억 중에서 동생 무송이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형 무대의 원한을 되갚은 장면이 사필귀정이란 단어로 떠오른다. 황문병이란 자가 송강宋江을 역모로 몰기 위해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부르고 다니는 노래가 있다고 적어 올린 것을 채태사가 조정에 전한 노래로 “나라를 좀먹는 건 가家와 목木이요, 싸움을 하려는 자는 수水와 공工이라. 종횡무진 삼십육 방을 휘두르니 난리가 퍼지는 곳은 산동 땅이로네.”는 宋江을 풀어놓은 노래다. 우리 역사에서 조광조를 귀양 보내고 사약을 내리기 위하여 주초지왕走肖之王이란 굴레를 씌우고 모함했던 조선 역사 얘기와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어느 나라나 권력을 위한 모함과 죽음은 비슷한 듯 다르게 역사 속에 존재하는 듯하다.
<수호지>는 “송강 등은 삼가 대의로써 알리노라! 우리 양산박 호걸들은 지금껏 산채에 무리지어 살면서 여러 고을의 백성들에게 많은 피해를 끼쳤노라! 그러나 이제 다행히 너그럽고 어지신 천자께서 조서를 내리시어 우리들의 죄를 사면하고 불러 주셨다. 이제 우리는 조정에 나아가 나라를 위하여 힘을 다해 천자의 은혜에 보답할 것이다. 조정에 들게 되면 가까운 백성들에게 보답할 길이 없을 터인즉, 이에 열흘 동안 장을 열어 백성들에게 보답고자 조금도 의심치 말고 양산박으로 와주기 바라노라!”라는 告示文을 끝으로 대단원을 마감한다.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수호지를 드디어 읽어볼 기회가 되어 좋았고, 앞으로도 나머지 4대 기서 읽기에 도전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