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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ㅣ 허밍버드 클래식 M 2
메리 셸리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19년 12월
평점 :
이 책은 무역선 선장인 윌턴이 괴물을 추적하고 있는 프랑켄슈타인이 그간 겪어온 이야기를 듣고 나서 자신의 누나인 세빌부인에게 적어보낸 편지글을 엮어 놓은 글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어린 시절 재미있게 봤던 "두치와 뿌꾸"에서 초록색 괴물이 프랑켄슈타인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나서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 프랑켄슈타인임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제네바에서 물리학자인 프랑켄슈타인은 해부실에서 죽은 시체의 뼈와 도축장의 동물뼈를 조합해 사람의 형체를 한 240cm의 피조물을 만들고 생명을 불어 넣어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한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괴기스러운 형상에 자신도 경악하며 도피해 버리고 괴물은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괴물은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추악하고 혐오스럽게 자신을 만든 창조주에 대한 증오와 자신의 흉측한 모습에 대한 사람들의 냉대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켄슈타인의 동생을 살해하기도 한다. 폐축사에 숨어서 추방자신세인 한 가족의 다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에 그들에게 애정을 갖게 되지만 자신의 끔찍한 몰골로 인해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된다. 그러면서 괴로움을 떨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죽음이라는 것도 배우게 된다.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게 단 한 명의 친구라도 얻고자 했던 소원도 자신의 흉측한 모습 때문에 모두에게 버림받게 됨으로써 세상에 대한 복수심과 분노가 폭발한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좋은 일을 했건만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의지하거나 어울려 살아갈 사람도 없어서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창조주 프랑켄슈타인을 비롯 괴물이 마주했던 사람 중 어느 한 명이라도 괴물에게 따듯한 손길을 내밀었더라면 무고한 희생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세상과 괴물을 이어주는 유일한 고리가 깨짐으로 복수심과 증오심은 더욱 가득 차게 되고 진심을 알아주지도 고마워할 줄도 모르는 인간을 향한 설움이 복받쳐 괴물의 고통은 배가 된다.
각고의 노력 끝에 빚어낸 끔찍한 존재,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일념으로 2년간의 시간 동안 꼬박 매진해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들어 낸 괴물! 자신의 저주받은 손이 만들어 낸 부정한 피조물의 제물이 된 사랑하는 가족을 보면서 프랑켄슈타인은 얼마나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로워했을까? 창조주인 자신조차도 고개를 돌린 흉측한 괴물을 왜 빚었을까? 괴물은 자신과 함께 서로 교감하며 지낼 여인은 만들어 달라 요구하고, 프랑켄슈타인은 작업에 착수하지만 새로운 피조물이 또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까 하는 공포에 질려 만들던 괴물을 찢어버리고 약속을 어기게 된다. 그러자 괴물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마저 죽이게 되고, 사랑하는 동생과, 소중한 벗, 신부를 잃은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괴물을 쫓아 북극까지 가다가 극도로 몸이 쇠약해져 탐험대의 배 안에서 괴물보다 먼저 비참하게 죽고, 프랑켄슈타인의 죽음을 확인한 괴물은 스스로 몸을 불태우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지며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책에 등장하는 괴물을 괴생명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다른 인종으로 본다면 현재 인류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 문제가 그와 유사하도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도 과거 교과서에 단일민족이라고 자부 아닌 자부(?)를 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현재는 유학, 취업, 국제결혼 등으로 수많은 인종, 국적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함께 꾸려가고 있다. 특히나 농어촌 지역은 70~80% 이상이 동남아시아 이주 결혼 여성들과 그들의 다문화 아이들로 이루어진 만큼 이들에 대한 무시와 차별도 많은 사회적 문제를 발생할 수 있을 것 같아 사회적, 국가적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끊임없이 진보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보면, 머지않은 미래에 책 속의 괴물처럼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이 실현 가능한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암을 비롯하여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던 병들도 모두 완치 가능한 치료법이 등장하여 인간의 영생이 가능하게 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식과 능력을 뛰어넘어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는 일도 시간문제일 것 같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도 있으나, 맹목적인 과학기술 맹신은 그러한 윤택한 기술이 인류를 파멸로 몰아갈지 그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기에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