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피탈
존 란체스터 지음, 이순미 옮김 / 서울문화사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이름 없이 산다는 것!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존재감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큰 압박감인지 런던 시민들의 심리적인 내면 묘사가 스토리 전반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전 세계에서 수명이 가장 긴 나라! 차갑고 단절된 곳, 나쁜 것이라곤 사람들의 불친절, 우중충한 날씨, 추위와 비뿐인 곳이 바로 소설의 주 무대인 영국 런던이다. 책을 읽으면서 몇 년 전 영국 여행 당시가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영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영국 출신 가수들의 음악을 좋아했던 탓에 영국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젠틀(?) 한 이미지로 여행에 앞서 상당히 기대했었다. 하지만, 막상 영국에 도착해보니 종잡을 수없이 변덕이 심한 날씨, 젠틀함의 대명사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새치기 시전, 웃음기 쫙 빠진 무표정한 사람들을 보고 영국에 대해 가지고 있던 본래 이미지와 달라 당황했었는데, 이 소설은 내가 당시 느꼈던 감정이 영국의 진짜 감성이자 현실임을 런던의 어느 한마을의 이야기로서 표현하고 있어 쉽게 공감하며 읽었다.


남편을 떠나보낸 늙은 82살 과부, 부유한 은행원과 쇼핑중독 아내, 파키스탄 출신의 상점 주인과 그의 동생들, 정치학 석사를 따고도 불법으로 취업하여 주차를 발부하는 유령 같은 존재의 여자, 세네갈 출신 축구 신동, 인테리어 업자 등 다양한 인종과 여러 사람들이 모여사는 런던의 부유한 동네 피프스로드 42번지! 처음에는 가볍게 글을 읽기 시작했었는데, 등장인물들이 쏟아져 나와서 초반에는 종이에 등장인물을 써가며 읽었더니 그제서야 스토리의 흐름과 인물들 간의 관계 등이 잡혀서 소설을 읽는 것이 수월했다.


부동산 가격이 최대 고민거리였던 이곳 주민들에게 정체불명의 “우리는 당신이 가진 것을 원한다”라고 쓰인 엽서가 배달되면서 피프스로드 42번지를 둘러싼 각각의 사연을 가진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들을 풀어나간다. “우리는 당신이 가진 것을 원한다”라는 이 한 문장과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을 찍은 사진이 담긴 엽서와 블랙버드 시체가 함께 동봉되어 오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며 평화로웠던 피프스로드에 재앙이 발생하게 된다. 누군가 어떤 목적으로 이 거리를 감시하는 것인지, 이 동네 집집마다 일거수일투족을 아주 자세히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주민들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는 상황이 익명성이 최대로 보장되어 이웃 간의 왕래도 없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마을, 동네에도 충분히 일어날 법한 이야기라서 이야기에 더 삐져들기 쉬웠다.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도 범인 같고 저 사람도 범인 같아서 빨리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서 마지막까지 집중해서 읽느라 책이 상당히 두꺼웠음에도 그다지 지루하지는 않았다.


런던이라는 인종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보다 더 사실적인 픽션으로 묘사하여 언젠가 나에게도, 사회 구성원 누구에게나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실직, 죽음, 범죄 사건에의 연루, 직/간접적 인종차별, 사회에서 받는 불공정한 대우, 물질만능주의의 씁쓸함 등 우리 사회 전반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복합적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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