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 비룡소의 그림동화 4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 비룡소 / 199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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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닝햄의 그림책은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를 아이가 무척 좋아하여 또 고르게 되었다. 이책 역시 하루에도 네번 다섯번 책꽂이에서 들락달락 사랑받는 책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작가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데 타고 난 재주가 있는것 같다. 돌아앉은 아이에게 부드러운 말로 불러 마주 앉히는 능력말이다. 첫장을 펼치지 두 팔을 벌려 손녀를 환영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보는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나게 한다. 함께 화원을 가꾸고 노래를 부르고 인형을 안고 소꿉놀이를 하는 모습, 폭우 내리는 날에 나란히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아이들에게는 가장 일상적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그러면서도 아이는 놀이 중간중간에 '할아버지하고는 말이 안 통해'라고 한다. 그런 날도 있는 것이다. 작가는 놓치지 않고 이런 모습도 그려 넣었다. 정원에서 화단을 가꾸다가 작은 화분에 흙을 담아 숟가락으로 먹는 시늉을 하는 할아버지 옆에 부지런히 흙으로 요리를 하는 아이의 모습이 모척 분주해 보인다.참 한가로운 한때이다. 아이가 참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할아버지가 아이처럼 낮아져 순수해 보이고 아이의 놀이에 주인이 아닌 손님이 된 모습이 참 마음 푸근하게 한다. 20개월인 아들은 이 장면에 등장하는 자전거나 바닥 다지는 기계나 다리를 좍 벌리고 앉아 있는 인형과 강아지를 태운 수레등의 소품을 아주 좋아한다. 이런 작은 물건들까지 아이들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것으로 고를 줄 아는 존 버닝햄의 섬세함이 돋보이다.

할아버지, 이 막대사탕 먹고 나서 또 먹어도 되죠? 내가 뭐 만드는데, 이 막대가 있어야 되거든요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날 여자아이느 할아버지와 바닷가에 가서 모래 놀이를 한다. 편안하게 쉬고 있는 할아버지 뒤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모래놀이 하는 아이의 모습.그리고 오른편엔 아이가 만들어 놓은 작품이 간단한 연필스케치로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과거의 일이나 상상,계획등을 단색 연필스케치로 표현하고 현재는 부드러운 색을 씀으로써 책 속에 더 많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작가의 역량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아지고 결국 빈 의자만 남기고 만다. 가슴이 찡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 수는 없다, 헤어짐이 있음을 그것을 받아들여야 함을 이야기하는 할아버지의 텅빈 의자가 어찌나 커 보이는지! 할아버지의 의자를 바라보는 소녀의 모습과 빈 의자가 보는 이의 가슴에 선명하게 느낌표를 찍는다. 아이를 위해 그림책을 골라 준다지만 사실 날마다 그림책을 통해 설레이고 행복하고 눈물 흘리는 건 삼십이 넘은 바로 나. 엄마라는 이름의 작은 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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