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광장에서
윤은성 지음 / 빠마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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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성을 보면 시인보다는 활동가가 먼저 떠오른다. 시를 어느 순간부터 읽지 않게 된 나로서는, 연대의 장에서 늘 윤은성을 먼저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활동가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 항상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숨기지 않는다. 그의 첫 번째 시집 '주소를 쥐고' 역시 그렇게 만나게 된 작품이다.

사실, '주소를 쥐고'는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새 자신의 감정에서 배제되고, 정화된 뒤 기억과 분석으로 자리 잡는 과정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그 사랑(첫사랑)이 남아 있지 않지만, 아니, 사실은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자신의 성장을 위한 거름이었다는 성찰이 시인의 언어로 표현된다. 그 시들을 읽으며 윤은성이 얼마나 깊이 사랑했고, 애틋하게 그리워했는지 느꼈다. 나는 오히려 그가 어떻게 그 아픔과 그리움을 극복하고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 마치 또 다른 사랑을 포기한 사람처럼 느끼며 몰입해서 읽었다.

양남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누구도 줍지 않는 작은 동전 같고

어느 날 뚫려 있는 주머니 속 구멍 같고

이사에 사용한 트렁크의 덜컹이는 바퀴 같은

애인을 보았다고

켄트 씨가 말한다

 

시인의 청년 시절, 지금도 청년이지만 더 젊었던 시절, 이 집 저 집 월셋집을 전전하던 애절한 자신의 모습을 기억해 준 켄트 씨의 마음을 이제야 깨달은 듯한 순간이었다. 그 장면은 영화처럼 담담하게 읽혔다.

 

먼 곳의 나를 보았다고 켄트 씨가 말한다.

 

내가 그의 첫 시집을 읽는 동안에도 윤은성은 언제나 현장에 있었다. 언제 시를 쓸지 궁금할 정도로, 특히 생명이 파괴되고 유린되는 곳에는 늘 그가 있었고, 그의 손으로 만든 피켓이 바람에 나부꼈다.

'유리 광장에서'는 그의 두 번째 시집으로, 이번에는 죽어가는 생명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을 글만으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어서 활동가가 된 그의 정체성을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한 시인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자신의 시의 모티브가 되는 모든 생명들에 대한 감정을 결코 무단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언어보다 그들을 통해 알아챈 말들이 더 시적이고 절대적인 언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래서 알아챈 말에는 힘을 주지만, 자신의 언어에는 늘 겸손을 숨기지 않는다.

윤은성의 시에는 관점이 교차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나는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활동 모습을 보며 마침내 공부하듯 시를 읽어나갔다. 특히 '유리 광장에서'가 그러했다. 이 시에서는 세상에 살면서 뭔가를 깨달은 독자의 관점과, 기꺼이 자신을 드러내는 시인의 관점이 묘하게 교차한다. 은유가 곧 자신이 되고, 시간과 공간, 슬픔과 좌절,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라는 주제가 얽혀 있다. 유리와 안개, 벽은 모두 자신의 한계 또는 단절되어가는 우리의 관계를 상징하며, 세상에 대한 분노를 끝까지 표출하지 못하는 내면에 억눌린 개인적인 감정들이 서려 있다.

이는 그의 내적 분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분노를 발휘할 기회조차 아직 오지 않았고, 그는 그 분노가 단순한 시적 표현으로 전해지길 원하지 않는 듯했다. 더불어, 그 아픔의 당사자들의 마음을 감히 자신이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겸손이 엿보인다. 그러나 윤은성은 용기 내어 기꺼이 시로 그 시간과 기억과 감정을 남겨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이나마 그의 시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슬프지만 공감하게 되고, 결코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끝까지 나를 성찰하게 만드는 시인의 언어였다. 그리고 그 언어가 비로소 이해되었을 때, 참을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속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유리 광장에서

.

.

.

우리는 함께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노래를 들으면서도

날아가지 못했어

날개 같은 게 쉽게 얻어지지 않는단 걸 확인해

 

대신

그때 우리가 느꼈던 건 옥상에 있어도

잠겨가는 기분

 

또 때론

빼곡한 책상에 엎드렸던 아이들이

목말라 창밖으로 나가려고 유리를 두드리는 장면

 

그때도 그걸 느꼈다면

여기서 이제 우리는 무엇을 더 느끼고

어떤 희망을 적으며 한 해를 마감하고 나이를 더 먹어야 해?

.

.

.

 

이 구절이 세월호 희생자들의 나이로 돌아간 시인의 독백임을 알았을 때 더욱 그러했다.

 

 

 

'유리광장 에서'는 내가 한동안 끊었던 시를 다시 구매하기 시작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이 글 또한 오래 방치했던 나의 ''에 대한 감정과 시간을 되돌려준 윤은성 시인, 그리고 활동가에게 보내는 감사의 표현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몇 마디 더 덧붙인다. 윤은성은 자신이 알아챈 뭔가를 누군가에게 가르치려 하지 않으며, 그의 언어가 단순한 구호로 전락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광장의 구호는 '유리 광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처절하지만, 그 구호는 서로를 구원하기 위한 기도처럼 다가온다. 그는 동지와 생명에 대한 연민을 느끼며, 미래에 등을 돌린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기도가 부족했음을 자책한다. 더 힘을 내야 한다는 자기 성찰적인 언어로 자신의 외침을 가둔다.

시인과 활동가라는 두 정체성을 지닌 윤은성은 활동가의 구호가 시적 언어로, 은유의 언어로 사람들과 어떻게 하나 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그는 끝없는 겸손의 말로 스스로를 성찰하며, 연대의 손을 잡아간다. 그의 시집은 시대적 짐과 책임을 짊어진 예술가의 고뇌를 담고 있으며, 그 아픔과 연민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게 연대와 위로의 말을 전한다. 시인이자 활동가로서 윤은성의 고민은, 시에서 비롯된 가장 큰 외침이자, 나에게 가장 강력한 소용돌이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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