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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ㅣ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평점 :

작가정신 소설 향 시리즈의 두 번째 책, 윤이형
작가의 소설 『붕대
감기』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가 서로 매듭지어 이어지듯이 흘러간다. 그 사이의 우정과 감정들은 단단한 연대의 서사를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이 모든 것이
아주 타인의 이야기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지현이든, 세연이든, 진경이든. 모두가 나를 비롯한 여성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소설 『붕대 감기』는 각기 계층, 연령, 직업의 여성들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직면하는 문제들과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보여준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여성들 내부의 입장 차이와 다양한 시선이 그대로 드러난다.
육아, 코르셋, 불법
촬영, 2차 가해, 성폭력 등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봤고 여러 번 두려워했던 사건들.
또 한편에서 이뤄지고 있는 여성과 여성의 대립.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페미니즘을 두고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 속 지현이 페미니즘을 접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가장 눈에 띄었다.
미용사를 꿈꿔왔던 지현은‘여자들은 머리에 많은 돈을 썼다. 너무 많은 돈을 쓰고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너무 심하게, 아름다워지고 싶어 했다’(38p)고 생각하면서 코르셋과 탈코르셋
사이에서 자기혐오를 느낀다.
내적 모순을 겪는 지현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나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다. 페미니즘을
받아들인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현과 같은 자기혐오 등의 감정을 느끼면서 다른 친구들과 논쟁도 했다. 행동과 생각의 괴리를 느끼며 진짜 페미니스트와 가짜 페미니스트의 구도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방향을 잃기도 하고 마음이 몹시 힘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얻은 결론은 '여성은
여성에게 너무 쉽게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고 서로를 그렇게 적대할 이유가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이었다. 이분법적으로 선을 그을 이유도, 가짜
페미니스트는 없었다. 좁혀지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결국엔 서로를 돕고 어찌 됐든우리는 같은
목표, 같은 세상, 같은 방향을 꿈꾸고 있다.
심진경 문학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여성들이
서로 갈등하면서도 공존하게 하는 힘’이 중심에 있는 것 같다.
연대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름을 받아들이고 상처를 입을 준비를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당시엔 아프기만 한 상처라도 시간이 흐르고 보면 잘 아문, 그때의 흔적이지 않을까,
세연과 진경의 관계, 그리고 마지막
대화에서 느낄 수 있는 연대의 따뜻함으로 오늘 하루를 나아갈 힘을 얻었다.
나는 잘못된 게 아니다. 지현은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다음에는 또 다시 내가 이 업계에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강박처럼 따라붙는 것이었다. 여자들은 머리에 많은 돈을 썼다.
너무 많은 돈을 쓰고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너무 심하게, 아름다워지고 싶어 했다. 그것이 자신의 직업인데도, 지현은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38p
세연은 단지 자신이 진경을 아주 많은 순간에 몹시 외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전혀 모를 뿐이었다. 악의가 아니라면, 놀랄 만큼의 둔감함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진경에게는 이국에서 건너온 이상한 전통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했다.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등을 바라봅니다.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등을 바라봅니다. 절대 돌아서서 마주보지 않습니다. 진경은
이 춤이 정말 싫었다. 하지만 진경이 알기도, 친구라는 듣기
좋은 이름을 한 이 춤을 가끔씩, 조금씩이라도 추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69p
그런 말을 들으면 형은은 되묻곤 했다. 그럼 우리의 역사는 왜 아무도 기록해주지 않아서 이렇게 흩날리기만 하죠? 왜
우리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서 항상 우리뿐인데요? 아무도
우리에게 힘을 주지 않으니까 우린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경쟁할 것도 고통밖에 없잖아요.
- 시간이
지나야 해. 서로를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고 그 일에는 시간이 걸려.
선배들은 그렇게만 말했고, 형은의 귀에 그 말은 공허한 꼰대질로만 들렸다.
111p
이게 버스라면 나 역시 운전자는 아니야. 난 면허도 없고, 그러니 운전대를 잡을 일도 아마 없을 거야. 그건 우리보다 젊은 사람들이 할 일이야. 하지만 우리 이제 어른이잖아. 언제까지나 무임승차만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나는 최소한의 공부는
하는 걸로 운임을 내고 싶을 뿐이야. 어떻게 운전을 하는 건지, 응급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정도는 배워둬야 운전자가 지쳤을 때 교대할
수 있잖아. 너는 네가 버스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버스 안에 있다고 믿어. 우린 결국 같이 가야 하고 서로를 도와야 해. 그래서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 남자들에게는 하지 않는 기대를.
15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