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자본론 1~3, 부록 - 전6권 - 2015년 개역판, 정치경제학비판 자본론
카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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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바가바드 기타
함석헌 옮김, 길희성 해설 / 한길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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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 기타'는 힌두교의 경전이다. 경전이라는 것이 현실성 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므로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이상을 현실로 승화시키는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무조건적으로 이상만을 추구한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내가 읽은 '바가바드 기타'는 함석헌 선생이 주석을 달아 기독교, 불교, 유교를 넘나든다. 힌두교의 경전에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싯다르타를 말하며 노자, 공자, 맹자, 묵가도 같이 한다는 것이 매력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제 신이 아닌 다른 신을 거부한다. 저들의 자기 신에 집착하는 마음이 눈을 어둡게 하여 신성의 보다 큰 통일성을 못 보게 한다. 이것은 종교적인 생각 속에 남아 있는 이기주의의 결과로 오는 것이다.'고 선생은 이야기한다.

'바가바드 기타'는 거룩한 자(Bhagavad)의 노래(Gita)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인도의 유명한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제6권의 일부였다. 그러나 학자마다 일부가 아니었다는 입장과 일부라는 입장으로 나뉘기는 하지만 서사시라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는 역사서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설사 전후의 상황이 실제와 다소 거리가 있다 해도 그리 문제될 것이 없다.

전통적으로 '베다'는 하층민들이 들을 수 없는 경전으로 받아 들여져왔고, '우파니샤드' 또한 전문 지식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비전이었으니 '베다'와 '우파니샤드'는 자신의 삶과 동떨어진 저편의 세계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하여 '바가바드 기타'는 언제나 서민 대중의 삶 속에서 호흡해온, 대중의 경전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쿠루크셰트라 전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무대로 한다. 하스티나푸라에 자리 잡은 쿠루족의 두 형제 가문, 즉 카우라바 형제들과 판다바 형제들이 쿠루크셰트라 들판 양편에 군대를 대치시키고 왕권을 차지하기 위하여 살육전을 벌이려는 극적인 상황에서 '바가바드 기타'의 가르침이 시작된다. 원래 바라타 왕국의 정당한 후계자였던 유디슈티라가 카우라바 형제들 가운데 맏형 두료다나와 도박을 하여 그 결과로 그는 왕국을 읽고 네 형제들과 함께 13년 동안 숲속에 유배되었다. 약속한 기한이 되어 유디슈티라가 두료나다에게 자신의 왕국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그의 요구는 거절되고 결국 두 가문 간에 전쟁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바가바드 기타'는 바로 이 전쟁이 벌어지려고 하는 찰나에 판다바 가문의 다섯 형제 중 셋째인 아르주나와 크리슈나 사이에 오간 대화를 적은 것이다.

크리슈나는 신으로 아르주나를 태우고 말고삐를 잡는다. '말고삐'는 인간을 안내한다는 의미로, 아르주나의 고민에 크리슈나가 가르침을 준다는 의미이다. 크리슈나는 이곳에서 여러 요가(Yoga)를 이야기한다. 요가는 우리의 지성을 명료하게 하고, 마음이 미혹에서 벗어나게 하며, 실재에 대한 직접적인 지각을 얻게 하는 심리적인 단련체계이다. '바가바드 기타'에서 설해지는 요가는 크게 세 가지로 즈나나(지식의 길), 카르마(행위의 길), 바크띠(믿음의 길)로 나눈다.

아르주나는 적의 진영에 가족과 스승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활과 화살을 내려놓으며 말한다.
"이들 존경할 스승들을 죽이기보다 차라리 이 세상에서 빌어먹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비록 그들이 자기네 이익을 원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제 스승입니다. 저는 그들을 죽임으로써 이 세상에서 피에 물든 복락을 누릴 뿐이옵니다. 또 우리가 그들을 정복하든 그들이 우리를 정복하든 그 어느 것이 과연 나은지를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죽인다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없는 드리타라슈트라 왕의 아들들이 저기 진을 벌이고 서 있습니다. 제 목숨은 슬픈 심정에 오금이 저리고, 제 마음은 어지러워 제 할 의무를 가려낼 수 없습니다. 당신께 묻자옵니다. 확실한 말씀으로 일러주옵소서. 어느 것이 합당하옵니까? 저는 당신의 제자이옵니다. 당신께로 피하여 돌아왔사오니 가르쳐주옵소서. 저는 비록 이 땅 위에서 비길 수 없이 부요한 왕국을 얻으며 천신들까지도 다르실 수 있는 권세를 얻는다 할지라도 제 오감을 다 말리어버리고야 말 이 고뇌를 무엇으로 몰아낼 수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크리슈나가 말하기를
"너는 슬퍼할 수 없는 자를 위하여 슬퍼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혜의 말을 했다. 어진 이는 죽은 자를 위해서도 슬퍼 않고 산 자를 위해서도 슬퍼 않는다. 나는 일찍이 있지 않았던 때가 없으며, 너도 저 왕들도, 또 이 앞으로도 우리가 있지 않게 될 때는 없을 것이다. 이 몸의 주인은 여기서 어린이와 청년과 어른의 시대를 지내듯이, 그렇듯이 또 다른 몸을 가지는 날이 온다. 어진 이는 그 때문에 당혹하지 않는다. 아르주나야, 감관이 대상과 접촉하면 차고 덥고 즐겁고 괴로움이 일어난다. 그것은 오고 가는 것이어서 덧이 없다. 그것을 견디어라. 오, 바라타의 족속아."

'바가바드 기타'의 사상은
순환하는 우주의 삶 - 까르마 (업)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삶 - 다르마 (달마)
해탈의 추구와 달성 방법 이다.

어떤 행위 대하여 결과는 무의미한 것이다.
인간의 행위에 대한 욕망이 없는 행위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은 있지만 목적 없는 행위를 추구한다. 노자의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 도를 말할 수 있다면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다. -- 와 같이 동양철학은 무언가 심오한 맛이 있다.
['행위'라는 의미는 '행동'과는 다른 것이다. '행동'은 생각 없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고 '행위'는 생각하여 행하는 것이다.]

간디는 "'바가바드 기타'를 늘 옆에 두고 끊지 않고 읽고, 스스로 어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읽노라."고 했습니다.

글을 쓰고 그 글을 읽다보면 살을 붙이게 되고 다시 읽다보면 살을 자르게 되고 이런 반복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이런 행위 또한 ('바가바드 기타'를 알리려는)목적에 (잘 쓰려는)욕망을 더하는 것이다.
'목적 없는 목적'
'욕망 없는 욕망'
다시 한번 혼자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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