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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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유명한 유수의 소설들은 독특한 인물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일상, 그리고 우연이 포함되지 않은 필연과 논리의 세상은 그 자체로도 따분하고 독자들의 흥미 유발에는 더할 나위 없는 악재인가 보다. 데미안, 안나 카레리나, 마담 보바리, 달과 식스펜스 등등 재밌게 읽었던 소설들의 주인공들을 생각해본다면 이 사실은 더욱 확실해 진다. 독특한 인물의 등장은 어떻게 보면 저자로서 벗어날 수 없는 필수의 재료인 것이다. 여러 책을 읽다보면 이러한 인물들의 독특한 사상과 행동들이 한데 섞여 머리 속에 남으면서 미묘한 클리셰를 만들기 마련이다. 처음 스트릭랜드를 만났을 때의 감명과 충격 그리고 스트릭랜드를 보면서 다졌던 각오는 이제는 다른 인물들을 만날 때의 식상함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의 출생과 생애 속에 실존했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는 실제로 광산 사업을 하러 크레타 섬에 갔었으며 그 곳에서 조르바라는 사람을 만났다고 한다. 이 점이 소설의 독특한 식상함을 변호해준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소설은 식상했다.) 자유와 실존을 중요시하는 그에게 조르바가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소설의 서술자의 회고적인 문체와 서술자의 성격과 행동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나만 믿지. 내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나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나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나뿐이기 때문이오.
-그리스인 조르바 中, 니코스 차잔차키스
˝터질 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생각해 봐요, 두목.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그리스인 조르바 中, 니코스 차잔차키스

다시 글의 서두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조르바는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조르바라는 인물은 그-소설의 서술자. 소설의 저자 혹은 독자로 까지 확장해도 무방할-가 정작 실천하지 못했던, 할 수 없었던 욕망과 사상적인 이상을 나타내는 인물로 그려진다. 우리는 조르바의 괴팍한 사상과 행동에 공감을 하고 몰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소설의 주인공의 행동과 사상에 공감을 하면서 몰입하게 된다. 우리는 결국 조르바가 될 수 없기에 조르바의 행동들에 동경을 보낸다. 진정한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방구석의 한심한 책벌레로서. 이러한 특징이 데미안의 싱클레어와 미묘하게 겹친다. 하지만 조르바는 데미안과 다르게 자신의 고상한 신념보다는 일차원적이고 마쵸적인 본능에만 충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본능과 욕망은 모든 윤리적인, 종교적인 것들을 뛰어넘어 오히려 그것들을 멸시하기까지 한다.

단순히 인물들간의, 크레타 섬의 작은 마을의 차원을 넘어서 그가 목격해왔던 격동의 시기들이 담겨있기 때문에 이 소설을 단순한 조르바의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민들의 시선과 종교적인 편견 때문에 할 수 없는 수많은 행동들을, 보통 사람이라면 고뇌하고 그 실천을 결국 기꺼이 포기해야 했을 그런 행동들을 조르바는 스스럼없이 행한다. 서로에게 강요하는, 어쩌면 인간들끼리 만들어버린 굴레에 우리가 스스로 갖혀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을 그는 `자유`라는 단어보다는 `조르바`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계1,2차 대전과 그리스에서의 격동 등을 겪으면서 그는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의 답을 조르바를 통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굴레에 의해 진짜 중요한 단순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소설은 꽤나 두껍다만 읽고 나면 두꺼운 양 만큼의 생각이나 줄거리가 머리 속에 남아있지는 않았다. 저자가 글을 멋들어지고 아름답게 쓴편도 아니거니와 소설 자체는 매우 평면적이고 어쩌면 따분하고 지루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이 소설이 재밌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점은 저자의 역량 때문인지 아니면 저자가 정말로 실화 그대로를 가져오기 위해 노력을 한 결과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라고 남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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