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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
윤대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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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대녕 작가의 소설은 10년 전 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가 마지막이었다. 비단 좋아했던 그의 소설 뿐 아니라 소설이라는 장르자체를 멀리해왔다. 물론 소설이 가진 매력도 다양하지만, 그보단 인생을 살고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데 현실적으로 더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책들만 탐닉해왔다. 그런 생각도 차차 옅어지고 있는 요즘 우연히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듣고 오랜기간 기억 한 켠에 묻혀있었던 그의 이름이 떠올랐고, 그의 책을 찾기 시작했다. 마침맞게 올해 2월 간만에 윤대녕작가의 장편소설이 출간된 것을 알게되었고, 20대 때 첫사랑을 만나는 기분으로 책을  펴들었다.

 한 때 어느정도 인정받는 연극배우, 극작가 및 연출자였으니 삐뚤어진 감정 하에 제작한 작품으로 연극계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고, 심각한 알콜의존증까지 겪게되는 '김명우'의 시선으로 소설은 전개된다. 명우는 한 노인의 의뢰(?)로 아몬드나무 하우스의 북카페를 맡으며 거주하게 된다. 그 집에는 각기 다른 이유의 상처와 아픔을 가진 현주, 윤태, 정민, 윤정 그리고 집의 주인이자 명우를 집사(소설 속 표현)로 고용한 마마가 살고 있다. 같은 집에 살지만 가슴에 박힌 가시로 타인처럼 서로에게 무덤덤했던 그들이 명우의 입주와 북카페 개업을 계기로 서서히 생겨나는 관계의 변화를 윤대녕 작가 특유의 문체로 끌어간다.

 책을 읽는 내내 두가지 질문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책 제목인 '피에로'와 '왜 명우였을까?' 에 대한 것이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피에로는 소설 속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사는 인물들과 같이 가슴 깊숙한 곳에 난 생채기를 변화없는 표정으로 가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까다로운 마마가 명우에게 북카페를 맡기는 조건으로 입주를 권유한 것은, 마마는 알고있기 때문이었으리라. 타인의 삶을 쓰고, 연기하고, 연출하기 위해서는 누구보다 타자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하며, 명우 또한 치유하지 못한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에 누구보다 잘 아몬드나무 하우스 가족들의 상처를 조심히 어루만지고 위로해 나갈 것이라는 것을.

 이 소설은 윤대녕 작가의 주된 모티브인 삶의 생태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타인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서서히 가족으로 받아들여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것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각 종 사회적 폐해 속에서 '가족'과 '공동체'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치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상처받은 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 가족이 살고 있는 아몬드나무 하우스에도 꽃이 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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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 위대한 인문과학자들의 공부법을 통해 본
노규식 지음 / 알투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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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이든 사업이든, 자신의직업을 가진 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공부와 멀어진다. 일을 하다보면 시간적 여유도 많지않고 여러가지 변수로 꾸준히 공부하기 힘든 상황도 있지만, 무엇보다 강한 목표의식의 결여를 가장 큰 이유로 들 수 있다. 알다시피 그 동안은 대학과 취업이라는 강력한 목표가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소소한 목표의식들이 자신의 나태함을 극복하기란 쉽지않다. 나같은 경우는 열성적이라고까지 말하긴 무엇하지만 평생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공부를 하기위해 노력한다. 언제나 더 효율적인 공부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던 차에 우연히 기관에서 소개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아니 반가울 수 없었다.

우선 <현대인들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의 주제는 쉽게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자이다. 사람들이 다 다르듯이, 각각의 사람에게 맞는 공부방법 또한 모두 다를 것이다. 생각해보자. 학창시절 반 학생들이 같은 수업을 듣지만, 공부하는 방식은 학생 개개인이 스스로에 맞게 만들어간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갈고 닦으며 체득해온 자신만의 공부법이 있을텐데 이 책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 전에 책에서 공부를 해야하는 강한 동기부여를 얻긴 힘들다. 1장에서 '현대인들은 왜 공부해야 하는가'란 타이틀로 내용을 열고 있긴 하지만 현실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는다. 물론 공부이유와 목적은 누구보다 본인이 정하고 절실하게 느껴야 하는 부분이므로 저자는 입장에서 깊게 파고들긴 어려움이 있었으리라.
이 책은 과학적인 방법으로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알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를통해 현재 본인의 공부법을 되짚어보고, 좀 더 효과적인 공부법으로 발전시킬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책의 3장에서 공부두뇌유형에 따른 특징을 통해 자신이 어떤 '형'인지, 또 위인들 중 그 '형'에 속하는 위인이 누구인지 파악한다. 그리고 2장에서 소개하는 그 7명의 위인들 중 자신과 같은 '형'을 가진 위인의 공부법을 참고하면 되는 것이다.

기관에서 소개하는 내용을 보고 많은 기대를 품었던 탓일까? 제목도, 주제도 공부하는 방법, 즉 How를 내세우고 있지만 아쉽게도 그 내용이 빈약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위인들의 공부법을 각 유형으로 분류한 것까진 좋았지만, 그 분류하여 설명한 방법들이 원론적이다보니 적용하기엔 너무 멀어보인다. 비교하여 말하면 얼마 전에 모티머J.애들러(외)의 <독서의 기술>을 읽은 후엔 독서를 할 때 실천해야 할 여러 사항들이 머리에 뚜렷이 남았는데, 이 책은 그런 부분이 없었다. 즉 방법론에 대한 구체성이나 실례적인 측면이 아쉬웠다. 그래도 나의 공부 방법을 다시 한 번 고찰하고, 위인들의 업적뒤에는 치열한 공부가 있었다는 자극을 받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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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기술
모티머 J.애들러 외 지음, 민병덕 옮김 / 범우사 / 199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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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독서의 질보단 양을 강조하는 '다독', 한권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정독, 숙독', 그 외에도 '재독', '간독', '속독' 등등 모두 독서를 하는 방법의 한 가지인데 옳고 그름을 따지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기술이 필요하다. 즉, 모든 책을 천편일률적인 방법으로 읽는 것이 아닌, 책을 분류하고 구조를 파악하고 방법을 정한다음 저자가 전달하려는 주제를 귀기울려 듣고 비평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모티머J.애들러의 <독서의 기술>은 이런 측면에서 뜬구름 잡는 식이 아닌 명확한 지침을 통해 단계별로 실천할 수 있는 적극적인 독서의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고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잘못된 독서습관을 분명히 파악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를 2가지만 들자면, 첫번째로 책의 내용에 질문을 하지도 않고 비평을 하지도 않았다. 책에 씌여진 활자만 타박타박 읽으며, 그게 세상 하나밖에 없는 진리인 것처럼 의문이나 비평없이 수용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가장 훌륭한 비평가야말로 가장 좋은 독자'라는 책 속의 말을 빌리면 나는 가장 나쁜 독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니 책을 읽은 후에 관련한 지식의 축적이나 사고의 수립이 미비했고 그 지속성 또한 짧을 수 밖에 없었다. 덧붙이자면 '대답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왜 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 때 문득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제목은 떠오르지 않지만) 책에서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 그 때부터 뇌는 의식 중에든 무의식 중에든 그 문제를 풀기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내용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질문에 대한 답이 저자가 의도한 바와 적확하지는 않을 지라도 그 과정에서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사고의 깊이도 깊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는 어떤 책에서 어려운 내용에 막히면 두세번 읽어보고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으면 쉬이 넘어가버렸다. 운동에 비유하자면 힘이 들 정도로, 땀이 날 정도로 역기를 들거나, 뛰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힘이 들고 땀이 나지 않으면 근육이 생기지도 지방이 빠지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독서도 끝없이 묻고, 답을 구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단순한 자기만족일 뿐 책에서 진정한 통찰을 얻을 수가 없다. 어려운 부분은 몇 번이고 읽고 고민하고, 의미를 물어야 독서에도 근육이 생겨 참다운 독서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나의 독서수준이 걸음마 단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책에서 말하는 독서의 최종목표인 '신토피칼 독서'를 할 수 있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 그래도 잘못된 독서습관이 더 고착화되기 전에 이 책을 접해 다행이다. 우선은 책에서 강조하는 독서의 규칙들을 따라가며, 내게 적합한 독서법을 수립하고 습관화 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다. 최종적으로는 책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저자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며, 논리적인 비평을 함으로써 진정한 독서가가 될 것이고,그 때까지 이 책은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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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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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월든호수가 있는 숲으로 갔을까?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가지 머릿 속을 맴돌았던 질문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 들어가 살기 시작한 것은 1845년 3월 그의 나이 27세 때이다. 그가 숲으로 들어갔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던 자료로만 추정을 해본다면 첫번째는 그가 사랑했던 형 존의 죽음(1842년)과 에머슨의 큰 아들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과 우울증이 아니었나 싶다. 연보를 보면 친형 존은 어려서부터 소로우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고 소로우가 설립한 사설 학교의 운영에도 동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랠프 월도 에머슨은 초월주의 사상가로 그의 수필집 <자연>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은 소로우는 20세 때 에머슨을 만나 깊은 사상적 영향을 받고, 평생에 걸친 교분을 맺게 된다(후에는 사상적 차이가 점차 벌어지긴 했지만). 이런 관계의 에머슨에게 병약한 큰 아들이 있었는데, 소로우는 그를 평소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돌봐주고 대했던 것이다. 두번째는 소로우는 직접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과 다르지 않게 당시에도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는 몇 십년을 일해야 하고, 그래도 큰 빚을져야 했던 당시의 하우스 푸어(house poor)들에게, 이렇게 해도 충분히 집을 가질 수 있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집(물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없이, 주위 사람들이 소유하는 정도의 집은 나도 가져야 겠다는 생각아래, 평생을 가난에 쪼들리며 사는 사람들에게 자립적이며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함으로써 경종을 울리고 싶었으리라. 세번째는 그의 사상, 철학의 저변에 있는 자연에 대한 사랑이라 생각된다. 이는 굳이 따로 말하지 않아도 '월든'을 읽어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이는 말했듯이 책을 읽고 저자의 삶에 대해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정리한 생각이고, 이에 대한 답은 책에 저자가 분명히 밝히고 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으며,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은 살지 않으려고 했으니, 삶은 그처럼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불가피하게 되지 않는 한 체념의 철학을 따르기는 원치 않았다.


내용이 담아내는 그 깊이 때문에 긴 호흡으로 읽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섬세한 관찰력, 풍부한 상상력과 은유적인 표현들, 다양한 분야의 학식에 위축되고 부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 무엇을 얼마나 사랑해야 그런 관심을 가지고 관찰할 수 있을까. 그는 월든 호수가 숨쉬는 자연 안에서 동물 및 식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매 순간 아름답게 변화해가는 그들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 소로우는 이 <월든>을 통해,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책의 상당 부분은 그가 숲에서의 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떠올렸던 생각들이나 철학들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이 자연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깨워주고 싶었을 것이다. 자연은 욕심내지 않으며, 사치를 부리지도 않고, 낭비하지도 않는다. 저자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각 종 허례허식을 버리고, 삶이 아닌 것은 때려 엎음으로써, 깊이 있고 진실된 생을 살라는 충고가 귀에 들리는 듯 했다.

<월든>이 쓰여진지 150년이 지났지만 바로 어제 쓰여진 것처럼 그 내용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는 이야기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 당시보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 꼭 더 필요한 내용일 것이다. 사람들을 점점 생각하는 법을 잊어가고 있다. 키보드를 누르면 모든 것이 나오고, 거기서 보여지는 것이 마치 내 생각인 듯 그렇게 자기의 생각은 지워지고 있다. 그리고 타인에게 투영된 자신의 모습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 즉 자신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월든>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전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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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색 - 빛의 파편을 줍다
게리 반 하스 지음, 김유미 옮김 / 시드페이퍼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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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말쯤 대구 EXCO에서 피카소재단에서 25주년 기념으로 [피카소 고향으로부터의 방문]란 이름으로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미술, 음악 분야로는 문외한이지만, 그래서인가. 최근들어 그 쪽 방면으로의 지적욕구는 더 강하게 자극되었고, 마침 피카소 전시회 소식이 좋은 기회처럼 와닿았다. 학창시절 친구들이 그린 알 수 없는 그림들을 보고 "네가 피카소냐?"라고 장난쳤을 정도로 익숙한 이름이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화가라는 타이틀 외에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였다. 피카소의 생(生)과 연관된 사건, 시대적 배경을 알고가면, 그의 난해한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거란 생각에서 <피카소의 색>을 비롯한 여러 책들을 보게 되었다.

 

우선 <피카소의 색>은 배경연도나 등장인물은 실제와 비슷하고, 세부적인 대화나 사건등은 픽션의 형식으로 쓰여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즉, 소설처럼 쉽게 읽으면서 피카소 삶의 일부를 들여다보고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피카소의 연인들>이나 <ArtBook 피카소>를 접했는데, 큰 줄거리를 알고 보다 세밀한 내용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들어 책에 더 강한 몰입감과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연도별 챕터마다 피카소의 작품들을 QR코드를 이용해 감상할 수 있어, 당시의 배경과 사건들과 연계해 이해, 해석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참고로 모든 책을 읽기 힘들다면 최승규가 쓴 <피카소의 연인들>만 읽은 후에, 이 책을 접해도 그 재미는 배가 될 것이다. 비록 작품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연인관계에 대해서는 그의 공식적인 첫사랑인 페르낭드와의 스토리밖에 소개되지 않지만, 그의 소중한 친구 카사헤마스의 죽음(<피카소의 색>에서는 카사헤마스가 자신의 애인이 피카소와의 관계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아 자살하는데 이것이 사실여부는 잘 알지 못하겠다.)에 따른 청색시기, 페르낭드를 만나부터 시작된 장미빛시기 및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주요 인물과의 조우에 관한 내용들은 표현되고 있다. 

 

피카소는 브라크와 함께 19세기 새로운 현대미술의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큐비즘의 창시자이다. 또한 그가 생전에 남긴 작품의 수만 무려 50,000여점에 이르는데, 이는 그가 얼마나 뜨거운 예술혼과 창조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한 방증이다. 그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신체의 불확실하고 은유적인 왜곡과 변형, 형태와 측량법 및 원근법을 무시한 표현세계는 "나에게 있어 그림은 파괴의 결과물이다."라고 말한 파카소만의 철학을 가지고 치열하게 몰두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다보니 <피카소의 책>에 대한 내용보다는 다른 쪽으로 이야기가 새어나갔다. 하지만 그의 전반적인 삶이나 작품, 인간관계에 대한 이해없이 단순히 이 책만 읽는 것은 말그대로 재미있는 소설 책 한 권을 읽는다는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서말한 <피카소의 연인들>이나 <ArtBook 피카소> 정도는 대략적으로 보고, 이 <피카소의 색>을 읽어보길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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