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함께 사는 법 - 오늘을 살리는 과거 청산의 현대사
김지방 지음 / 이야기나무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 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진상규명조사가 한창 이뤄지고 있을 당시, 그가 이런 말을 한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 '역사는 평가의 대상이 될 지언정, 심판의 대상은 될 수 없다.' 한 언론매체에 쓰여진 이 말을 보고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쉽게 분을 삭히지 못했다. 역사는 단순히 그 시대적 상황이 있었고, 지나버린 과거이기에 심판할 수 없다는 것은 그 당시에 가해자이고 힘을 가진 자가 펼치는 오만한 자기방어 논리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과거청산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청산은 그냥 묻고 지나가야할 '남의' 문제가 아니라, 한 국가가 전진하기 위해 반드시 풀고지나가야 할 '우리'들의 역사이다. <적과 함께 사는 법>은 여러 국가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조명하면서, 각기 어떤 방식으로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진정한 역사는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가 알고있고 배우는 역사는 말 그대로 승자의 역사일 수도 있고, 많은 부분이 각색되고 다듬어진 불편한 진실일 수도 있다. 가능하면 객관적인 진술과 사실을 토대로 작성되었다고 하지만, 결국은 사람을 통해 쓰여지고 전해내려온 자료이기에 그 한계는 인정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 역사의 진실 속에서 묻혀버린 피해자의 고통과 슬픔, 과거청산이란 미명을 내세우지만 진심어린 사죄에 따른 용서는 이루어지지 않기에 그로인해 피해자의 아픈 상처는 심해져만 간다.

 

 책의 남아프리카의 인종 갈등 청산에서부터 한국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7가지 과거청산 현대사에 대한 가슴아픈 이야기에 쉽게 몰입되었다.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 관한 내용을 읽을 때는 인간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존재인지 다시 한 번 느꼈고, 프랑스의 나치부역자 청산을 보면서 맹목적인 증오는 모두를 더 깊은 고통의 수렁으로 빠뜨린다는 것을 깨달았고, 여순사건을 읽으면서는 그 가슴아픈 내용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역사의 피해자에게 용서와 망각을 강요하여서도 안되고, 가해자에 대한 형식적인 처벌나 무조건적인 증오는 진정한 과거청산에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 철저한 진상규명에 따른 단죄를 통해 피해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그들의 자존심과 자아가 회복되어야 사회적인 용서와 화해가 가능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바람직한 과거청산이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다.

 

 책에 몰입할 수 있었고, 각 국의 현대사를 배울 수 있었으며, 과거청산이란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과거청산이 그 시대를 겪은 사람들만의 문제라 치부되지 않고, 전 국민의 깊은 관심과 이해가 있어야 피해자들이 과거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적이라 여겼던 그들에 대한 대립과 갈등을 넘어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