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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평점 :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장면이 생각났다. 하나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영화 <아바타> 이후에 찍은 기후 변화를 내용으로 한 다큐멘터리 <Years of Living Dangerously> 이었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한 시리아 편이었는데, 시리아내전이 종교나 민족 간의 갈등만이 아니라 그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놀라운 이야기였다. 그들에 따르면 몇 년째 이어진 가뭄에 농사를 짓지 못한 농민들이 정부에 도움을 요청해도 군부 정권이 들어주지 않아 내전에 가담하거나 터키 등으로 망명을 떠난다는 것이었다. 내전에 가담한 사람들이 모두 친구, 아들, 친구의 아들, 친척들이라고 설명한 한 남자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starving makes you do anything” 배고픔이 당신을 무엇이라도 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말이다.
두 번째 장면은 1994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이다. 쓰러져 있는 소녀를 잡아먹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를 Kevin Carter가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수단 남부에 들어간 Carter가 식량센터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찍은 것이라고 한다. 이 사진 한 장은 어떤 글이나 문장보다 더 끔찍하고 불편한 진실을 말해주었다. 그것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말해준 보이지 않는 진실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던 논리는 '개인/국가의 가난은 능력과 노력이 부족한 탓이기에 지원과 원조는 그를 제도에 의존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는 서구중심의 관점이었다. 그것은 국가의 개입이 없는 시장만이 개인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낼 것이라는 시장만능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로도 이어진다. 그러나 자연도태나 적자생존의 논리에 바탕을 둔 이러한 시선은 ‘능력이 없는 사람은 살릴 가치가 없다’는 인종차별과 위계구조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논리다. 무엇보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현재 벌어지는 기아와 극단적인 굶주림의 문제가 구조, 정치, 사회의 문제 때문에 벌어지는 불평등한 분배문제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현상 이면의 보이지 않는 구조에 도달하는 것. 표면에 나타난 증상만을 가지고 이에 대응하여 치료하는 대증요법이 아닌 질병 원인의 완전 제거를 목적으로 하는 원인 요법을 따르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당장 원조를 하는 것도 좋지만, 그러한 지원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나라가 처한 상황을 개혁하는 것이다.
물론 한 나라의 사회나 정치구조인 거시적인 분야의 개혁과 혁신만큼이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기아와 굶주림이 나와 상관없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연대와 관심을 갖는 것이다. 알면 알수록 불편하고 마음은 무겁지만,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는 것은 더 큰 악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모인다면, 근본적인 변화의 움직임에 소극적이던 국제기구나 선진국을 변화시키는 날갯짓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